<아르고 황금대탐험>(1963)의 일곱 해골 병사를 기억하는가. 땅에서 솟아나온 해골병사들이 칼과 방패를 들고 스톱모션으로 공격해올 때, 실제 배우들은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이미 자신들의 운명이 다했음을 직감했다. 자연스런 움직임뿐만 아니라 한숏 내에서 실제 배우와 해골병사의 칼과 칼이 부딪치고, 방패로 칼을 가로막고 발로 걷어차며, 해골병사의 목이 뎅강 날아갔다. 그저 괴물이 등장하고 그걸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도망다니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한숏 내에서 함께 움직이며 부대꼈다. <반지의 제왕>(2001)의 골룸의 선조라 부를 만한 진짜 ‘디지털 액터’는 그렇게 태어났다. <쥬라기 공원>(1993)과 <반지의 제왕>의 원조가 바로 거기 있다. 곧 개봉할 기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의 거대한 괴물도 레이 해리하우젠이 작업한 <심해에서 온 괴물>(1953)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핵실험을 통해 태어난 괴물을 보고 이듬해 일본의 혼다 이시로가 곧장 <고질라>(1954)를 만든 일 또한 유명한 일이다.
크리처들의 아버지
동작 하나하나를 움직여 컷을 이어붙이는 스톱모션 테크닉의 일인자였던 레이 해리하우젠의 작품들은 조지 루카스나 스티븐 스필버그, 그리고 팀 버튼과 샘 레이미 등 수많은 영화 소년소녀들로 하여금 영화의 꿈을 꾸게 만들었다. 샘 레이미는 <이블데드3: 암흑의 군단>(1993)에 해골군대를 등장시켜 <아르고 황금대탐험>의 해골병사 장면(당시로서는 그 3분여의 결투장면을 만들기 위해 꼬박 3달이 걸렸다)에 직접적인 오마주를 바쳤다. 팀 버튼도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3)을 만들며 셀애니메이션이 아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방식을 고집하며 그에게 오마주를 바쳤고, <화성침공>(1996)에서는 화성인 캐릭터들을 모두 레이 해리하우젠에게 맡겨 스톱모션으로 만들려 했지만 스튜디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1992년 오스카시상식에서 톰 행크스가 그에게 특별상을 시상하며 “많은 사람들이 영화 사상 자신 의 최고작으로 <시민 케인>이나 <카사블랑카>를 꼽겠지만, 내 인생에 최고의 영화는 바로 <아르고 황금대탐험>입니다”라고 밝힌 일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192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레이 해리하우젠은 <킹콩>(1933)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미래를 직감했다. 그의 ‘절친’인 레이 브래드버리는 그들의 유년기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3살에서 15살까지의 소년들이 사랑하는 예술이란 모두 유치하다. 그리고 마술적이다. 1930년대 보았던 대부분의 영화들은 의자 아래나 형의 품속에서 봤다. 넋 놓고 스크린을 쳐다보는 나를 비웃고는 이내 코를 골며 자는 형을 보는 동안, 나는 캄캄한 계단을 내려와 거대한 거미줄을 끊지 않고 지나오는 벨라 루고시의 공포를 숨죽인 채 들이켰다. 그러다 만나게 된 <킹콩>은 나와 내 친구 레이 해리하우젠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후 독학으로 특수효과 기술을 익히고 습작을 만들던 그는, 그 <킹콩>을 만든 숨은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우상 윌리스 오브라이언 밑에서 일하게 됐고 드디어 ‘아기 킹콩’ <마이티 조 영>(1949)을 작업하게 된다. 초창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가였던 윌리스 오브라이언에게서 풍부한 표현력을 배우면서, 그는 <심해에서 온 괴물>을 통해 본격적인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 영화에서 거대한 이구아나를 연상시키는 괴물을 보고 박사가 “믿을 수가 없어! 굉장해! 전체 모습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대단해!”라며 놀라는 장면은 바로 극장을 찾은 관객의 탄성과 다를 바 없었다. 이후 <그것은 심해에서 왔다>(1955)에서는 대왕문어(제작여건상 다리를 6개밖에 만들지 못했다)를 등장시켜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무너뜨렸고, <지구 대 비행접시>(1956)에서는 이후 <인디펜던스 데이>(1996)가 오마주를 바친 국회의사당을 박살내는 장면을 만들었으며, <지구까지 2천만 마일>(1957)에서는 작았다가 커지는 초록괴물을 등장시켜 로마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들게 하고는 콜로세움에서 죽여버렸다.
이후 신화와 고전의 세계로 옮겨간 그는 <아르고 황금대탐험>, <신밧드의 대모험>(1974) 등을 만들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아르고 황금대탐험>에서는 해골병사들뿐만 아니라 크레타 섬을 지키는 청동거인 탈로스, 하늘을 날아다니는 파란색 박쥐인간들, 머리가 8개 달린 용과의 대결 등으로 압도적인 긴장감을 선사했다. 일련의 <신밧드> 시리즈 역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원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놀라운 볼거리를 선보였는데, <신밧드의 7번째 모험>(1968)에서 머리에 뿔이 나고 눈이 하나뿐인 괴물이 마치 하이힐을 신은 듯 걸어오는 장면이 압도적이었다. 그렇게 그가 만든 피조물에 관객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것은 땅에서, 바다에서, 외계에서, 그리고 동굴에서 나타났다. 그 어떤 감독도 그처럼 사각의 프레임을 넓게 쓰지 못했다.
스탭의 이름으로 작가 반열에 오르다
‘특수효과’라는 표현 자체가 생소했던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특수효과의 기초를 세운 그는, 영화가 ‘산업’의 시대로 이행하던 시기에 스탭의 이름으로 ‘작가’ 반열에 오른 거의 최초의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가 만든 수많은 작품과 캐릭터는 감독의 이름을 떠나(<아르고 황금대탐험>을 실제 연출한 감독이 돈 채피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레이 해리하우젠이라는 이름을 똑똑히 각인시켰고 바로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어쩌면 그런 원초적인 시각적 흥분이야말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영화의 근원적인 매혹일지도 모른다. <타이탄족의 멸망>(1981)을 끝으로 ‘어두운 방(작업실)에서 드디어 나오게 됐다’고 했던 그는, 바로 그 매혹의 깊은 세계를 일러준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기술자이자 몽상가였다.
우정 연대기
그의 친구 레이 브래드버리(1920~2012), 소설가
“보리스 칼로프가 산에 오를 때 나는 오줌을 쌀 것만 같았다. 킹콩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떨어질 때는 나와 내 친구 해리하우젠도 같이 깔렸다.” 레이 해리하우젠과 같은 나이이면서, 안타깝게도 그보다 한해 앞서 지난해 세상을 뜬 SF문학의 대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서로의 작품에 많은 도움을 주면서 오랜 우정을 나눴다. <노틀담의 꼽추>(1923)와 <오페라의 유령>(1925)에서 각각 ‘꼽추’와 ‘팬텀’을 연기한 전설적 배우 론 채니를 좋아했던 그 역시 해리하우젠처럼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예감했다. 스무살에 첫 단편을 발표했으며, 모두가 얘기하는 그의 최고 걸작은 역시 <화성연대기>다. <심해에서 온 괴물>과 <그들은 외계에서 왔다>(1953)의 원작자이고 존 휴스턴의 <백경>(1956)을 각색하기도 했으며 <화씨 451>(1966)은 프랑수아 트뤼포에 의해 영화화됐다. TV시리즈 <트와일라이트 존> <레이 브래드버리 극장>의 여러 에피소드의 각색 작업에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