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Back to the 50’s
2013-07-16
글 : 송경원
<마스터> 제작기: 어떻게 1950년대 미국을 복원해냈는가
폴 토마스 앤더슨(왼쪽) 감독이 <마스터> 촬영 현장에서 와킨 피닉스와 함께 있다.

<마스터>의 안팎을 관통하는 화두는 시간여행이다. 코즈의 마스터인 랭카스터 도드는 사람들에게 시간여행을 제안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코즈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죽지 않는 혼이 있어 육체를 바꿔가며 긴 세월을 살아가고, 랭카스터만의 독특한 방식을 거치면 영혼이 지나온 과거를 되짚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스터>의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도 시간여행을 시도한다. 그는 관객을 영화의 무대가 되는 1950년대 미국으로 데려가 그 시대를 경험시키려 한다. 이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현과는 차원이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여타 영화들이 지금 시점을 중심으로 과거를 대상화해 현재에 재현하려 애썼다면 <마스터>는 1950년대 관객이 영화관에서 경험했을 체험, 화면의 질감, 선명하다 못해 넘쳐날 지경의 색감 등을 스크린에 옮겨놓는다.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잭 피스크의 말처럼 그것은 “50년대를 본뜬 세트를 짓는 게 아니라 50년대의 영화관을 통째로 옮겨와야” 가능할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폴 토머스 앤더슨은 이 장대한 시간여행을 성공시켰다. “이제는 물어볼 수 없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의 경험을 더 많이 이해하려 파고들었”던 폴 토머스 앤더슨의 집념은 끝내 기적을 낳았다. 40년 가까이 거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65mm용 스튜디오 카메라를 들고 말이다.

필라델피아의 코즈 본부에서 프레디가 창문과 벽 사이를 오가는 장면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의 질감을 자연광...

재현하되 조작한 느낌은 없게

65mm 필름의 과도하게 선명하고 웅장한 화면은 <마스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미세한 반응과 복잡한 줄거리의 선 굵은 윤곽을 동시에 형성해나가는 데 확실히 효과적이다. 파나비전에서 수많은 올드 렌즈로 테스트를 거친 앤더슨은 이윽고 65mm 포맷이 <마스터>의 복잡다단한 질감을 표현하는 데 최적이란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지금 와서 이 포맷을 다시 사용한다는 건 누가 봐도 무모한 고집처럼 보였다. 1950∼60년대처럼 65mm 필름 포맷이 영화시장을 주름잡던 때도 있었지만, 필름이 지나치게 비싸 이미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에게 65mm를 사용해보라 권한 파나비전의 댄 사사키마저 65mm를 뼈대로 사용하는 건 모험이라고 만류했을 정도다. 그러나 폴 토머스 앤더슨은 어렵사리 찾아낸 세대의 파나비전 카메라(그나마 한대는 고장이 나서 쓰지 못했다)로 촬영을 하면서도 끝끝내 65mm를 고집했다. 촬영감독 미하이 말라이메어 주니어는 이를 두고 50년대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50년대의 ‘보는 방식’을 재현하는” 작업이라 말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제작자 대니얼 루피는 “폴이 많은 시간 옛날 사진들을 보며 장소와 시간에 대한 감각을 다듬었다”고 회상했다. <마스터>의 디자인 핵심은 과거를 재현하되 조작된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술감독 잭 피스크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취했는데 하나는 완벽하게 제어된 실내 세트, 그리고 하나는 반대로 최대한 통제하지 않는 야외 촬영이었다. 프레디가 사진사로 근무한 백화점은 로스앤젤레스의 다운타운에 위치한 한 보험회사를 개조해 백화점의 한개 층으로 완벽하게 재탄생시켰다. 쇼룸을 포함해 스튜디오와 암실, 스튜디오 전체를 황색과 녹색의 색감을 유지하기 위해 일광 형광등과 자연 채광의 혼합 조명으로 뒤덮었다. 이는 롱테이크로 이루어진 배우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처럼 언뜻 평범해 보이는 실내 영상도 철저한 통제와 계산의 산물이다. 필라델피아의 코즈 본부에서 프레디가 창문과 벽 사이를 오가는 장면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의 질감을 자연광 대신 수십개의 크고 밝은 조명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반면 세트 촬영 대신 현장의 질감을 그대로 가져오는 쪽을 선택한 장면들도 있다. 프레디가 랭카스터의 배에 뛰어오르는 장면은 실제로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대통령 요트로 사용되던 USS 포토맥에서 촬영했다. 배가 정박한 오클랜드의 잭 런던 광장까지 가서 찍은 이 장면 이후 프레디와 랭카스터가 대면하는 장면을 위해 잭 피스크는 정교한 세트를 짓는 대신 배를 만들어 샌프란시스코 만에 띄우는 쪽을 택한다. 통제 불가능한 배의 흔들림에 맞추기 위해 배의 외곽에 거대한 성곽 같은 조명 세팅이 필수 불가결했다. 그다음으로 스탭들이 할 일이라곤 65mm라는 거대하고 선명한 바가지로 최대한 가득 카메라에 담는 것뿐이었다. 그 덕에 샌프란시스코 해변을 떠도는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해풍이 화면에 생동감있게 되살아난다.

미술감독 잭 피스크는 정교한 세트를 짓는 대신 배를 만들어 샌프란시스코 만에 띄우는 쪽을 택한다.

편집에서도 시간여행을

여전히 손으로 편집하는 몇 안되는 감독 중 한명인 폴 토머스 앤더슨은 편집에서도 시간여행을 시도한다. 영화는 65mm로 촬영이 불가능한 장면, 예를 들면 속도감있게 핸드헬드로 촬영한 장면과 65mm로 촬영한 장면을 이어 붙이기 위해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정교한 계산이 필요했다. 65mm와 35mm 두 포맷을 동시에 사용한 이번 영화에서 레슬리 존스와 피터 맥너티는 편집실에서 거의 구분이 불가능한 65mm와 35mm를 구분하고자 일일이 네거티브 필름을 자르고 화학적으로 뽑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마침내 50년대 필름영화가 구현할 수 있는 질감에 살려냈다.

특히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도 함께 작업한 음악감독 조니 그린우드와의 작업은 50년대의 재현과 현대적 감각의 재해석이라는 화두의 중심에 서 있다. 매그네틱 테이프와 마이크를 이용한 50년대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편곡한 음악들은 화면과의 불협화음을 통한 독특한 리듬감을 형성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도 한 차례 증명된 이러한 기이한 공명은 전통적인 화면 위에 덧씌워지며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을 이끌어낸다. 이는 고증이라기보다는 반응에 가까운 작업이다.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엘라 피츠제럴드의 <Get Thee Behind Me, Satan>만 해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점보다 좀더 뒤에 발표된 곡이지만 느낌을 살리기 위해 꼭 필요했기에 그린우드와 앤더슨은 디테일을 잠시 무시하기로 한다. 디자인이나 의상, 로케이션 등과 달리 이 경우에는 고증보다는 효과에 방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1950년대의 감각을 재현, 아니 체현하고자 하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의도 또한 그 시절로 완벽히 회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시점 위에 그 시절 성취한 감각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카메라도 없고 제작비는 높아지고 촬영방법도 생소하고, 심지어 70mm로 찍는다고 해도 35mm로 상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촬영감독 미하이 말라이메어 주니어의 주문처럼 “모든 것은 195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강행되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까다롭고 지난한 작업임에도 앤더슨은 이를 귀찮게 느낀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단호히 외친다. 고집스러운 영화의 마스터는 그렇게 수고를 마다않은 채 잊혀졌던 ‘마스터피스’를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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