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설원을 가르는 흰 돌고래처럼
2013-08-13
글 : 씨네21 취재팀
컨셉아트로 다시 보는 <설국열차>

생명이 얼어붙은 대지 위를 홀로 달리는 설국열차. 그 열차의 첫 탄생을 이끌어낸 사람들이 있다. 눈 덮인 순백의 세계처럼 아무것도 없는 종이 위에 최초의 이미지를 탄생시킨 사람들, <설국열차>의 컨셉아티스트 3인의 입을 빌려 꼬리칸에서 엔진칸까지 설국열차를 해부해본다.

1 조민수_관건이었던 엔진실 디자인은 원자력 발전소를 모티브로 했다. 시체처럼 서 있는 아이들이 빛 속으로 빨려들 듯 걸어들어간다. 그 앞에 차갑고 당당하게 서 있는 윌포드가 인상적이다.

2 조민수_세계를 일주하는 기차인 만큼 바닷속, 사막 등 다양한 지형 위의 선로를 그렸다. 많은 지형 중에 굳이 협곡 위의 장면을 선택한 건 설국의 불안한 느낌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3 지효근_꼬리칸은 인구 밀집도가 높다. 그 속에서 마치 가구처럼 사람들이 포개지는 상황을 나타내려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쌓이는 생활의 흔적들, 예를 들어 화면 오른쪽 상단에 보면 냄비를 생활 공간으로 전용하는 식으로 곳곳에 디테일들을 남겨두려 노력했다. 기차 안을 지나는 카메라의 앵글보다는 전체 상황을 설명해주는 정보에 중점을 둔 그림이다. 이런 자잘한 아이디어들이 모여 좀더 구체적인 장면으로 반영이 된다.

조민수_이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곳에서 생활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지효근_온전히 혼자만의 아이디어라기보다 감독님이나 다른 스탭들이 지나가면서 한두 마디씩 한 말을 잊지 않고 써먹었다.

4 지효근_사진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꼬리칸의 화가인데 남보다는 조금 여유있는 폐쇄적인 공간을 그려봤다. 화가가 사용할 도구가 멸종되었을 기차 안에서 무엇을 사용해 그릴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그런데 실제 영화 속 화가 역할을 한 배우가 훨씬 사실적이고 존재감있더라. 다행이다. (웃음)

5 장희철_수없이 그렸던 열차의 시안 중 하나다. 큰 모티브는 설원을 가르는 고래다. 하단에 드러난 부분이 동물의 갈비뼈를 연상시킨다. 포경에 쓰일 만한 무기와 장비들을 섞어서 하얀 설원을 베고 도륙하는 이미지로, 야만적인 느낌과 폭력성이 도드라지길 원했다.

조민수_원작에서는 러시아 옛날 느낌의 투박한 디자인이었고 그걸 지켜주고 싶었다. 어마어마한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앞칸만큼은 튼튼해 보였으면 했다. 마치 통째로 주물을 뜬 것처럼 투박하게. 그런데 중간에 모든 게 뒤집어졌다. (최종적으로 낙점된 디자인은 6번이다.-편집자)

장희철_대재앙이었지. 박찬욱 감독님의 지나가는 한마디에 수백장이 날아갔다. (웃음)

6 조민수_마치 요트처럼 세련되고 매끈한 디자인으로 방향을 바꿨다. 계속 수정하는 와중에 채택된 것이 결국 흰 돌고래를 모티브로 한 한장의 스케치였다. 은색의 단단한 느낌에 앞서 나왔던 동물적인 느낌도 함께 섞었다.

지효근_장희철과 조민수씨의 기차 디자인이 전혀 달랐는데 오래 함께 작업하다보니 마지막엔 서로 닮아갔다. 직관적인 아이디어와 현실적인 디자인이 합쳐지며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랄까.

7 장희철_군인들이 플래시 라이트를 밝히고 점호하는 장면이다. 시나리오상의 첫 장면이었기에 깊은 인상과 함께 무게감을 남기고 싶었다.

지효근_그림의 완성도도 그렇지만 광원의 사용이 인상적인 그림이다. 이미 있었던 구조를 활용해서 단조롭지 않고 존재감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8 지효근_좁은 공간에서 수납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깡통 등을 활용했을 거란 감독님의 의견에 따라 빠르게 드로잉한 그림이다. 감독님의 의도와는 달랐겠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어린아이들이 밑에 산다는 등의 구체적인 상황들도 생각했다. 더 밀도가 높게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 보니 약간은 헐렁한 것 같다.

9 장희철_시나리오상의 장면을 그대로 묘사한 장면이다. 몇 미터의 길이에 얼마만큼의 높이 등등 워낙 구체적으로 상황을 정해놓아서 그대로 옮기는 데 충실했다. 이 그림을 비롯한 모든 그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기차의 진행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다.

10 지효근_경비병이 꼬리칸의 불순분자들을 고문한다는 상황 설정하에 그려본 건데 너무 노골적이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차 안이지만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컷을 하나쯤 넣고 싶었다.

13 지효근_윌포드가 식사하는 뜨거운 장면을 묘사하려 했다. 엔진칸 자체가 더운 느낌이 있는데 그 안에서 굳이 또 지글거리는 스테이크를 구워 먹는 의외로 초췌한 아저씨. 빨간 공간에 빨간 옷을 입혀 더운 느낌을 강화하는 한편 기계 공간에 나무 탁자 같은 상반된 소품도 함께 배치했다.

11 12 14 지효근_기계 속의 기계를 숨기자는 컨셉하에 고독하고 정돈된 느낌의 윌포드의 성격이 드러나도록 신경 썼다. 앞쪽 생활공간에 윌포드의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소품들을 배치했는데, 사슴머리는 장희철씨 그림에서 빌려왔다.

장희철_감사한다. (웃음) 11번이 거의 최종에 가까운 그림이라면 12번은 초반에 날것의 느낌으로 그렸다.

지효근_11번에 나오는 윌포드가 공장장이라면, 12번의 윌포드는 가마를 지키는 고집 센 노인 같은 인상을 준다.

조민수_전반적으로는 구나 원의 디자인을 중심에 놓고 그렸다. 엔진 디자인의 포인트는 역시 불안감이다. 엔진이 튀어나와 아이들이 이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위압감이 있는 동시에 불안도 표현하고 싶었다. 고민하는 와중에 연필을 깎다가 연필깎이의 톱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티브를 활용해 징그럽고 위험해 보이는 엔진 내부 디자인을 완성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