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5일 오후 7시30분 CGV압구정에서 ‘KAFA+ 마스터클래스’ 행사가 열렸다. ‘7월의 영화 마스터’로 초청된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를 숏 바이 숏(shot by shot)으로 분석했다. <스토커>의 성격과 스타일을 밀도있게 보여주는 일부 장면을 숏 단위로 나누어 설명하는 강연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을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과정”이라던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연출론과 제작기를 미시적이고 구체적으로 들려주었다. 그 알찼던 두 시간을 지면으로 옮긴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숏과 숏 사이에 듬성듬성 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KAFA+ 마스터클래스’는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주최하고 <씨네21>, CJ CGV 무비꼴라쥬가 함께한다.
1 오프닝
애초 각본의 오프닝은 거미가 피아노에서 기어내려오는 장면이었다. 지금의 오프닝은 편집실에서 만들어졌다. 항상 각본과 스토리보드대로 영화를 만들어온 나로서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촬영시간이 짧아 많은 변수와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결말도 바뀌었다. 아버지가 삼촌 찰리(매튜 구드)를 위해 준비한 뉴욕의 아파트에 인디아가 살고 있고,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려는 듯 망원경으로 행인들을 바라보는 인디아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내려 했다. 그런데 뉴욕에서 찍을 여건이 안됐다. 또한 흰 꽃에 붉은 피가 흩뿌려지는 이미지가 나를 매혹시켰지만 관객은 난데없는 이미지에 혼란스럽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오프닝에서 이미 본 이미지가 끝날 때 다시 등장하는 설정으로 오프닝과 엔딩 신을 만들었다. 이건 똑같은 장면의 반복이 아니다. 오프닝에서 제한된 이미지가 제시되고, 끝에 가서 빠진 컷들이 채워지면서 의미가 완성된다. 일종의 내러티브상의 반전을 구축했다.
01 도로를 건너는 인디아 언뜻 한가로운 풍경처럼 보이지만 눈이 예리한 사람은 경찰차에 경광등이 켜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장면이다. 인디아가 걸어가면서 자기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간다. 이전의 정체성을 지우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느낌을 준다. 중앙선의 노란색은 색보정 때 더욱 강조해서 과장된 노랑으로 만들었다. 노랑은 인디아에게 부여된 색이다.
02 옥수수 밭 “내 귀는 남이 못 듣는 것을 듣고, 내 눈은 남이 못 보는 작고 먼 것을 봐.” 인디아의 내레이션이다. 남들보다 우월한 감각은, 스토커가의 삼촌과 조카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사춘기 소녀의 예민하고 과민한 감수성을 표현한다.
03~06 바람에 나풀거리는 치마 바람은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의 해방감을 표현해주는 요소다. 이 장면에선 자유를 얻은 사람, 자유를 찾으러 가는 사람에게 걸맞은 운동감과 청량감을 나타내려 했다. 그래서 치마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중요했다. 다른 남자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치마를 입고 바람을 맞으면 어떨까, 그 느낌이 항상 궁금했다. 한편 찰리를 연기한 배우 매튜 구드의 이름은 인디아의 치마 속에 감춰져 있다가 등장한다.
07 피로 붉게 물든 꽃 관객은 처음에 그저 빨간 꽃이라고 생각하지만, 엔딩에서 피로 물든 꽃이라는 걸 알게 되고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09~12 인디아가 정원에서 뛰어오는 장면 각본에서의 오프닝 장면이다. 불과 며칠 전이지만 이 장면에서의 인디아는 아직 소녀다. 사춘기 상태의 인디아가 요정을 찾아 숲속을 뛰어다니는 동화 속 소녀처럼 새벽에 정원을 뛰어가는 이미지다. 인디아의 어머니를 연기한 니콜 키드먼의 이름은 인디아의 손놀림에 의해 털려나가듯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