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수애] 교차점에 서서
2013-08-19
글 : 주성철
사진 : 백종헌
인해 역의 수애

수애는 이번에도 독하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외모에 무슨 힘이라도 있을까 싶지만, 의사 인해(수애)는 하나뿐인 딸을 살려내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사실상 그것 외에는 시쳇말로 눈에 뵈는 게 없다. 영화 속 상대역 지구(장혁)의 말마따나 ‘이기적인 여자’이기도 하다. 정치가도 군인도 하다못해 병원의 동료들마저 그녀를 막지 못한다. 남편(엄태웅)을 찾으러 홀로 베트남으로 떠나는 <님은 먼 곳에>(2008)의 여인이나, 목숨이 위태로운 걸 알면서도 묵묵히 궁궐로 들어가는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의 여인이나, 언제나 수애는 불가능한 상황과 마주하며 최대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실존’의 배우였다. 늘 고독하게 자신의 운명과 싸웠던 여자랄까.

얼핏 보면 역시 싱글맘으로 출연한 전작 <심야의 FM>(2010)의 DJ 선영과도 닮아 보인다(그러고 보니 <감기>는 TV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 <천일의 약속> <야왕> 이후 무척 오랜만의 영화 출연이다). 살인마(유지태)의 지시에 따라 방송을 해야 하는 실시간의 위협 속에서도 “이건 내 방송이야. 내가 끝까지 진행할 거야”라며 의지를 굽히지 않던 고집 센 DJ였다. “<심야의 FM> 때는 아이들과 전화 통화만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만나는 설정인데, <감기>에서는 계속 딸 미르(박민하)와 호흡을 함께한다는 점이 달랐다. 위기를 겪으며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면서 말 그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딸과의 관계도 엄마라기보다는 거의 언니에 가깝다. 모성애보다는 오히려 내가 아이에게 투정을 부린다고나 할까. 못됐고 이기적인 모습도 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계속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수애는 촬영현장에 오기 전까지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그 스스로 ‘시나리오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지 않으면 불안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김성수 감독의 주문은 “시나리오를 너무 열심히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물론 정해진 대본은 있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우왕좌왕 ‘대처’하는 모습이 실감나게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기존에 했던 영화들과 다른 재난영화라는 각오를 충분히 했지만, 막상 그런 주문을 따르려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지금도 완벽하게 따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고, 이후 TV드라마 <야왕>에서도 그러지 못했다. ‘상황에 나를 맡기고 가자’는 게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더라. 그런데 어쩌면 그런 묘한 부적응 자체가 인해 캐릭터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감기>의 인해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결코 재난 상황을 헤쳐나가는 영웅이 아니다. 인해의 목표가 이뤄졌을 때 그것이 모성애나 책임감으로 보기 좋게 귀결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복합적인 캐릭터다. 착한 구조대원 지구를 이용하는 여자라고 할 수도 있고,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가족만 챙기는 못된 여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재난과 맞닥뜨린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풍경이다. 김성수 감독이 ‘촬영과 연기의 현장성’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수애가 맞닥뜨린 난관은 <비트>(1997)와 <무사>(2001) 등을 만든 ‘마초’ 김성수 감독이 이제껏 다뤄보지 않은 여자 캐릭터라는 점이기도 했다. “오히려 극적인 모성애로 강하게 나가면 쉬웠을지 모르는데, 애틋함과는 거리가 먼 모성애였다. 감독님께서도 ‘내가 남자는 뼛속까지 아는데, 여자는 잘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오히려 나에게 의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엄마 같지 않은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추가 주문까지 하시니, 좀 ‘멘붕’이 오긴 했다. (웃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수애는 <감기>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방점’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다. “내가 배우로서 좀 안일한 걸 추구하는 편인데, 동시에 진부한 것도 무척 싫어한다. (웃음) 그런 점에서 <감기>는 그 교차점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다. 새벽 4시에 ‘기술시사’라는 것도 처음 가봤다. 초반에 로맨틱코미디스러운 장면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도 궁금하더라. 그런데 연기할 때 너무 재밌었다. 나한테 이런 면이 있나, 라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조만간 로맨틱코미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처음으로 해봤다. 나 그렇게 무섭기만 한 여자 아니다. (웃음)”

스타일리스트 윤상미/메이크업 고원 메이크업 신애부원장/헤어 심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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