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장혁] 나를 찾아서
2013-08-19
글 : 윤혜지
사진 : 최성열
지구 역의 장혁

“장혁은 착한데 잘생기기까지 한 동네 형 같은 사람”이라고 김성수 감독은 말했다. 오지랖 넓게 굴지 말고 자기 몸이나 잘 챙기라고 타박하고 싶을 정도로 “이타적인” <감기>의 구조대원 지구도 그렇다. 장혁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인 양 지구는 장혁에게 꼭 들어맞는다. 비번인 날 우연히 재난에 휩쓸린 지구는 아무도 그가 구조대원인 걸 모르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다. 인해(수애)가 도망칠 길을 확보했다며 얼른 가자고 채근하는데도 지구는 사람 좋게 웃으며 제 발로 재난 상황에 뛰어드는 사람이다. “내가 구조대원이잖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알잖아요. 내가”란 대사로 그 성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장장 126일에 걸친 촬영 기간 동안 장혁을 가장 힘들게 한 건 “폭염 속의 험난한 촬영”도, “어깨 부상으로 인해 재활치료를 병행”하며 분투했던 액션도, 300여명의 연기자들과 부대끼는 일도 아니었다. “너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라”는 감독의 주문이었다. “배우는 스스로를 알리기보다 캐릭터를 알리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매체에 노출된 인형을 캐릭터라 한다면, 나는 안 보이는 데서 그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다. 물론 나의 진짜 면면을 조금씩 섞어가며 캐릭터를 이해하려 하지만, 문제는 나의 어떤 모습에서부터 그 조종을 시작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이때까지 장혁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대개 평범한 삶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인물들이었다. 전국의 시청자 마음을 삽시간에 낚아챈 <추노>의 대길, 서늘한 눈빛 하나만으로 검사와 변호사보다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던 <의뢰인>의 용의자 철민, 초라한 집안에 열등감을 품은 채 펀드매니저로 악착같이 성공하려 하는 <마이더스>의 도현, 실없이 구는 모습 뒤에 뜨거운 복수심을 감춘 <뿌리깊은 나무>의 채윤이 그렇다. 하지만 <감기>의 지구는 장혁이 연기해온 많은 캐릭터들과 사뭇 다르게 현실에 한 사람쯤 틀림없이 있을 것 같은 리얼리티를 가진 캐릭터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꼼꼼히 “공부하는” 습관에 따라 구조대원의 모습을 잘 표현하는 것이 처음 그의 목표였다. 실제로 구조대원들과 어울려 함께 “감자탕에 소주를 마셔가며” 그들의 생활을 관찰했다. “예를 들어 사극을 하게 되면 그때의 시대상이나 화폐 단위 등 주변 환경에 대한 조사를 하고, 의사 역을 맡으면 의사들은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연구한다. 내가 현실에서 몸담아보지 못한 상황에 놓여야 한다면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캐릭터를 해석하는 나만의 시각을 찾아야 하는 거다. 그런데 지구는 구조대원이긴 하지만 구조대원이어서 사람들을 돕는 게 아니다. 나도 지구라는 ‘사람’을 보여줘야 했다.” 결국 “공부한 것은 모두 버려야 했던” 셈이다.

작품마다 온도 차가 있겠지만 연기도 액션도 늘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선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보여주는 장혁은 ‘참 한결같은 배우다’라는 생각을 절로 품게 한다. 연기 경력 17년차의 베테랑임에도 작품의 규모나 성격에 연연하지 않고 틈틈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성실한 배우다. <장혁의 열혈남아>의 출간 역시 의외의 행보인 것 같다가도 어쩐지 장혁이라면 그럴 만하다는 식으로 납득하게 된다. “여행을 갔다가 문득 옛날을 생각하게 됐다. 여행이란 것도 꼭 어딘가로 떠나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한달 중 하루라도 내 일상을 놓아두고 묘한 생각에 빠지게 되는, 시간의 여행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모았던 생각의 단편들을 정리한 에세이다. 책을 내기에 시기가 이르지 않냐고? 시기적으로 어떤 때가 적당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TV와 스크린에서 보아온 장혁의 여러 모습과 달리 실제의 장혁은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가볍게 던진 질문에도 심사숙고한 뒤 긴 대답을 내놓을 만큼 대단히 진지한 편이다. 군대 내 에이스, 열혈 병사 이미지를 만들어낸 <일밤-진짜 사나이>(이하 <진짜 사나이>)를 두고도 “단순하게 예능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고심해 답한다.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고 나서부터 일주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휴가 나오는 기분을 느끼게 돼 일상이 더 쉬워지고” 편안해졌단다. 정기적으로 혹독한 훈련을 거치게 된 탓인지, 아니면 한차례 독한 감기를 앓고 나서인지 “즐거운 기분으로 40대를 기다리는” 지금, 그는 몸도 마음도 훨씬 가벼워 보인다.

스타일리스트 이경/메이크업 최현희/헤어 홍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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