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창조주, 소통을 꿈꾸다
2013-08-27
글 : 송경원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혹은 왜 21세기의 신이 되었나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그가 만들어낸 애플 제품들처럼 단순명료하고 재미있다. 잡스는 이를 위해 무대를 완벽하게 통제한다. 소파에 앉아 편하게 아이패드를 만지고 있는 동작조차 수차례 연습 끝에 완성된 자연스러움이다. 심지어 물병의 위치까지 계산했다고 하니 그의 프레젠테이션을 한번 보고자 오매불망했던 잡스교도들의 심정을 알 법도 하다.

2010년 2월 <뉴욕매거진> 표지는 흥미로웠다. 팝아트 작품 속 아이콘처럼 총천연색으로 그려진 스티브 잡스의 얼굴 밑으로 큼지막하게 ‘iGod’이란 문구를 박아넣은 것이다. 같은 해 아이패드 발표 당시 <이코노미스트>의 표지는 한술 더 뜬다. ‘The Book of Jobs’라는 문구와 함께 예수의 형상을 한 잡스가 아이패드를 들고 있는 이 표지에서 잡스는 복음을 설파하는 선지자로 변신했다. ‘Book of Jobs’(잡스기)를 ‘Book of Job’(욥기)에 빗댄 재치있는 비유다. 아이패드의 발표 전후로 소개된 일련의 재미난 표지들이 그저 단순한 비유나 농담(혹은 비아냥)처럼 보이지 않는 건 그것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2001년 아이팟의 등장과 함께 잡스는 21세기의 신이 되었다. 하지만 잡스가 처음부터 화려한 승자였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생 대부분을 괴팍한 2인자로 살았다. 실리콘밸리의 신화를 쌓아올렸던 그가 라이벌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뛰어넘는 데 장장 30년의 세월이 필요했단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애플의 기업 가치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선 것은 2010년이다). 1984년 ‘미친 듯이 훌륭한’ 매킨토시를 발표하며 미친 듯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는 21세기 들어서야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한 시대와 다음 시대를 연결하며 신화가 된 스티브 잡스. 업계의 반항아였던 그가 21세기의 상징이 되기까지 무려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달리 말하자면 스티브 잡스를 신으로 만든 21세기의 정신은 무엇인가. 달변가였던 잡스의 어록을 통해 잡스의 정 신이 어떻게 21세기를 점령했는지 그 과정을 더듬어가보자.

애플의 최고 상품은 애플이다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대하는 방식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애플의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전세계 애플 매장에는 행렬이 이어지고 며칠 밤을 새운 끝에 처음으로 애플의 신제품을 손에 쥔 사람들은 감격에 겨워 환호한다. 포장을 뜯지도, 제품을 사용해보지도 않았건만 이미 만족하는 사람들. 여기에는 일반적인 기업과 고객의 거래 대신 스타와 팬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작용이 자리한다. 스티브 잡스가 초창기부터 직원들에게 누누이 강조했다는 ‘우리의 최고 상품은 애플이다’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애플 제품을 살 때는 물건이 아니라 애플의 브랜드 가치를 산다. 그리고 그 가치의 정점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다.

잡스는 스스로 하나의 아이콘이 되길 마다지 않았다. 정확히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마케팅했다. 2000년 이후 고집한 검은 티에 청바지 패션처럼 그의 프레젠테이션 하나하나가 고도로 계산되고 반복 훈련된 한편의 광고나 다름없다. 애플이 제시하는 미래의 가치, 이를테면 혁신과 진보의 정신은 종국엔 잡스 자신에게 수렴되어 그가 걸어온 인생과 결합한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이다. 잡스는 스펙 경쟁, 가격 경쟁에 매몰되어 있던 IT 업계에 이같은 문화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웠다.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미래를 이야기했던 한 인간의 드라마는 그가 만들어낸 제품들이 이뤄낸 혁신으로 이어 지고, 세상을 바꾼 제품은 곧 세상을 바꾼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애플의 성공은 이러한 ‘감정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모델이다. 애플 제품을 산다는 건 잡스로 대변되는 혁신의 가치를 사는 것이고 이때 개별 제품의 사소한 결함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느새 사람들은 애플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잡스라는 완벽주의자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신뢰를 보낸다. 그렇다. 이미 이것은 엄연히 믿음의 영역이자 종교의 세계다. 충성도 높은 ‘교인’들은 잡스교의 우수함을 적극적으로 설파하고 다녔고, 매년 진짜 혁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한다는 이미지’를 반복 판매했다. 그렇게 애플이라는 폐쇄된 생태계 안에서 애플의 모든 제품은 교인들의 믿음에 의해 혁신으로 채색된다.

해군이 되기보단 해적이 돼라

스티브 잡스는 타고난 반항아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느니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잡스의 자기중심적이고 냉정하며 이기적인 성격에 대한 일화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말 한마디를 잘못했다가 그 자리에서 해고된 직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와 함께 탔다가 내릴 때 해고당한다는 소문 때문에 아무도 타지 않는 엘리베이터가 생겨났을까. 결벽에 가까운 완벽주의는 그를 어떤 집단에도 섞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벽이었지만 그조차도 이 정도로 밀어붙이면 미덕이 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열정’이라고 불렀다.

문제는 자신에게 가혹한 만큼 타인에게도 쉼 없는 열정을 요구했 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은 가차없이 쳐냈다. 1997년 애플로 다시 돌아온 잡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1만7천여 명의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8천명 가까운 사원을 정리해고하면서 그가 내건 기준은 단 하나, 미래에 대한 비전과 혁신에 대한 갈망이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애매모호한 선별기준이지만 적어도 잡스 자신에게는 명확했다. 그는 직원들이 체제에 저항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존재이길 원했다. “혁신이야말로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애플을 만들 때부터 그는 직원들에게 “해군이 되기보단 해적이 돼라”고 독려하며 반항정신에서 비롯된 창의성을 강조했다. 심지어 ‘리사’ 프로젝트에서 밀려나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내부 인력을 자신의 팀으로 강제 스카우트하며 내부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 실리콘밸리 신화로 일어선 애플은 애초에 이러한 반문화(counter culture)의 반항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사실은 애플이 벤처 특유의 모험심에만 사로잡힌 집단은 아니라는 점이다. 잡스는 반항정신을 사랑한, 딱 그만큼 뛰어난 통제력을 과시했다. 자연인 잡스는 비틀스보다 밥 딜런을 사랑하는 고집 센 반항아였지만, 경영인 잡스는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군주였다. 이것은 기업이 반문화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초창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던 애플이 필요로 했던 것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반항의 에너지, 이른바 ‘반문화 마케팅’이었다. 스스로를 IBM이라는 거대 제국에 맞서는 투사로 생각했던 잡스는 자유에 대한 열망, 창조적 정신, 획일화된 대중사회에 대한 반감을 고스란히 활용하여 자신의 영역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는 순수한 반항정신이라기보다는 반항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에 가깝다. 애플을 쓰는 것만으로 참신하고 혁신적인 사람이 되는 기분, 잡스는 경제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혁신의 이미지를 팔았다. 20세기의 애플은 그렇게 반항하는 2인자로서 생존했다.

21세기에 다시 한번 애플의 CEO가 된 잡스는 이를 한층 강화하여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힙합이나 폴크스바겐 자동차(1960년 비틀 시리즈는 단지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히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등 반문화 마케팅 사례는 많았지만 잡스만큼 이를 한계까지 밀어붙인 사람은 없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문화의 핵심은 개인, 자유, 분산, 창의성에 있다. 잡스는 이 점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이젠 물리쳐야 할 골리앗을 억지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바탕으로 하는 포디즘(Fordism) 시대의 모든 가치가 혁신의 대상이었다. 그가 애플에 복귀하자마자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은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잡스는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고집을 쉽게 꺾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시대는 잡스에 맞춰 변했다. 잡스가 고수해온 가치들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도래하기도 전에 잡스는 이미 미래에 살고 있었다. 80년대 한창 매킨토시 개발에 열 올리고 있을 때 그는 무모한 도전에 대한 무수한 질문을 받아야만 했다. 잡스는 이미 그때 상시 연결되어 있는 전 지구적 네트워크, 그러니까 인터넷 환경을 상정하고 있었다. 사용자간 수평적 소통에 관한 모델도 이미 그때 완성되었다. 잡스는 인터뷰마다 개인용 컴퓨터의 멀티미디어화를 역설했지만 그로 인해 몽상가, 돈키호테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아이폰을 선보이며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말을 실천했다. 비록 시대를 앞서 갔던 매킨토시는 상품으론 실패했지만 잡스의 혁명, 저항, 반문화 마케팅의 밑거름이 된 덕분에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파이프라인이 완성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이후 잡스가 비틀스를 좋아한다고 공공연하게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업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혁명의 이미지를 팔던 애플도 이제 조화와 안정을 추구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제 21세기의 잡스는 비틀스에 빗대어 팀의 가치를, 통합에 의한 통제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같은 이율배반적인 모순의 허용이야말로 오늘날 잡스를 신의 반열에 올린 최상의 권능이다.

매킨토시는 처음엔 저가형으로 기획됐지만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 덕분에 높은 성능과 안정성을 자랑하는 모델로 거듭났다. 잡스가 CEO에서 밀려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가장 애플다운 컴퓨터이기도 했다. 잡스는 애플로 복귀하자마자 매킨토시 시리즈를 정리하여 ‘아이맥’을 발표했다.

단순한 것이 궁극의 정교함이다

잡스가 제시한 궁극적인 목표이자 철학은 ‘하나’에 의한 의사소통이다. 제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소통이 목적이란 말이다. 잡스는 그 소통을 이루는 매개가 애플의 제품이길 바랐다. 돌이켜보면 잡스가 97년 애플 CEO에 복귀한 뒤 내놓은 제품은 1998년 아이맥,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가 전부다. 물론 이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냉정히 한번 자문해보라. 과연 아이패드를 혁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서 개별 상품의 참신함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잡스에게 진정한 혁신은 애플이라는 단일 생태계에 있다. 그는 일련의 제품들을 통해 애플(혹은 잡스)이라는 단일 세계를 완성시켰다. 단일 세계, 최고의 하나, 그것이 애플이 지향하는 궁극의 가치다. 그리고 애플이야말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매장, 개발환경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업이다.

애플의 제품은 최초가 아니다. 잡스는 모방에 어떠한 금기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는 목적에 맞는 최고의 요소를 한데 뭉쳐 최적의 상태로 조합, 통제하는 데 있다.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결합을 지향하는 것이다. 점에서 점으로의 연결은 소통의 기본방식인 동시에 애플이 각 요소를 한데 합치는 방식이기도 하다. 기능에 맞춘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에 맞춘 기능, 제품을 위한 인터페이스 환경이 아니라 소통의 환경을 최적으로 구현해주는 단순한 제품. 그럼으로써 하나의 기기가 신체의 연장이 된 세상. 그것이 궁극이다. 잡스는 애플 제품군으로 이루어진 생태계를 구성하고 생산과 소비까지 전 과정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소비자는 이를 제약으로 느끼지 않는다. 잡스가 허용한 울타리 안에서의 완벽한 자유. 완전히 구획되어 있기에 비로소 완전히 자유로운 세계. 잡스는 그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고 떠났다. 아니, 어쩌면 애플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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