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미야자키 코드
2013-09-19
글 : 송경원
아이의 마음을 지닌 거인을 이해하기 위한 네 단어

때론 엄하게 상대를 꾸짖으며 훈계하기도 하고 때론 상대에 대해 아낌없는 애정을 선물한다. 어떨 땐 소녀처럼 새초롬했다가도 어느새 베갯머리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느긋하고 포근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는 변화무쌍한 자연과도 같다. 깊고 넓고 다양하며 생동감이 넘친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나간 거인. 아이의 마음을 지닌 할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는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 바람
아나키스트

“나의 싸구려 민족주의는 열등감 콤플렉스로 바뀌어 나는 어느샌가 일본을 싫어하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외국에서 일장기를 보면 혐오감이 드는 일본인이었다.”

<미래소년 코난>의 코난이 머물던 섬은 자급자족하며 필요한 것은 나누는 원시공동체다. 섬에 우연히 도착한 라나를 따라나선 코난은 전체주의 국가 인더스트리아에 저항하여 싸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역시 군국주의 국가 토르메니아에 저항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부해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숲을 거스리지 않고 작은 공통체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미야자키 작품 속 이상향은 대개 이처럼 소규모 원시공산주의 형태를 띠고 있다. 미야자키는 농경 이전 계급도, 전쟁도 없이 숲의 생산력에 기대 살던 조몬시대가 일본인이 가장 행복했던 시대라고 여러 차례 언급한다. 과거 공산당 지지자였다가 실망을 느낀 뒤 고대 일본에서 이상적 사회주의의 대안을 발견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기본적으로 물질문명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같은 사상이 발현된 대표적인 작품이 <붉은 돼지>인데, 국채를 구매해서 애국을 하라는 말에 돼지가 된 포르코는 “돼지에게 국가는 없다”며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비행기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전쟁의 도구였다는 자괴감이 그를 국가에 저항하는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붉은 돼지 포르코는 국가라는 억압에서 벗어나 개인의 꿈과 이상을 좇는, 완전히 자유로운 바람이다.

<미래소년 코난>
<천공의 성 라퓨타>

2 숲
생태주의

“인간의 눈으로 자연을 보지 말고 벌레가 됐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날아오른 뒤 무엇이 보일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분명 다른 세계가 보일 것이다. 인간만 살아가지 말고 짐승, 나무, 물에게도 살아갈 장소를 주어야 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가장 평화로운 장면은 이끼에 둘러싸인 거신병의 모습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전쟁도구지만 그 악의와 관계없이 숲의 일부가 된 모습은 그것 자체로 아름답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보여준 풍부한 동시에 흉포한 자연은 생존과 갈등의 공간에서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웃집 토토로>의 순수한 아이들은 숲속의 정령들과 소통하며 자연과 문명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무너뜨린다. 인간이 숲에서 나와 씨앗을 뿌리기 이전의 원시세계. 미야자키는 애니미즘이 살아 숨쉬는 그곳에서 일본의 기원과 가능성을 발견한다. <모노노케 히메>로 정점을 찍은 이같은 생태주의는 문명과 대립하는 존재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그 이전 하나였던 뿌리를 찾아가는 방식의 일환이다. “숲이 가진 근원적인 힘은 인간의 마음속에도 살아 있다”라는 미야자키의 말에서 인간의 편의 이전에 나무의 목소리에 먼저 귀기울이는 공존의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이점은 자연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15세기의 변두리 마을을 그리고, 그게 필름이 되었을 때 ‘이건 실사로 못 만든다’는 생각에 굉장히 행복했다.” 애니메이션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의 작업은 가장 사소한 곳에서도 생명의 숨결을 발견하는 애니미즘 그 자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 배달부 키키>

3 하늘
비행기

“우편비행은 시체가 첩첩이 쌓인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날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 그야 날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하늘이란 이상향과도 같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제목 그대로 하늘 위의 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며 당연히 각종 탈것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주인공의 탈것에 관한 디자인에만 몇 개월이 따로 소요되었을 정도다. 비행기가 아니더라도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하늘을 동경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용을 타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괴조를,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빗자루를 타고 도시 구석구석을 누빈다. 활강의 쾌감 자체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 당연히 그 표현에서도 여타 애니메이션과 차별된다. 미야자키는 바람의 묘사, 활강의 움직임을 통해 인물들의 자유와 해방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한다. 비행을 통해 “하늘 위에서 자유로운 존재”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미야자키는 19세기와 20세기 초 판타지 작가들이 상상했던 비행기 디자인을 수집한 것으로 유명한데, 때로는 이야기 콘티를 짜기 전에 날틀의 디자인을 먼저 그린 경우도 있었다. 비행기 회사를 경영하는 큰아버지와 공장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미야자키가 비행기를 동경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지브리’라는 회사 이름마저 ‘기블리’(Ghibli)라는 이탈리아 비행기 이름에서 따왔을까. ‘기블리’의 제작자 지아니 카프로니는 <바람이 분다>에서 주인공이 동경하는 인물로 등장하니 그 애정을 짐작할 만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

4 물
생명력의 근원

“누구나가 무의식 속 깊은 곳에 내재한 바다와 파도치는 외재적 바다가 있다. 이것은 서로 통한다. 나는 직선을 없애고 싶다. 따스하지만 비뚤어져서 마법이 존재할 수 있고, 투시도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수평선조차 불거져나와 뒤틀어지고 흔들리는 세계를 그리고 싶다.”

하늘이 동경의 대상이라면 물은 생명 그 자체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표현 두 가지는 바로 바람과 물의 묘사다. 생동감 넘치는 장면은 거의 모두 여기서 기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벼랑 위의 포뇨>가 특별했던 것은 순수한 동심에 시점을 맞춘 이야기를 넘어 ‘바다’라는 부정형의 액체 상태에 관한 표현력 때문이다. 그 어떤 애니메이션과도 궤를 달리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물’의 묘사는 넘쳐 흐르는 이미지를 통해 진한 꿀물처럼 농축된 상태의 생명력을 전달한다. 이러한 질감은 주로 곤충의 시점에서 빌려왔다고 하는데 물의 장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작은 생명체들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물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이다. 한편 물의 이미지는 성장과 진짜 이름에 관한 것이기도 한데 예를 들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직접적으로 ‘하쿠’라는 백룡(사실은 강의 이름)의 이름을 찾는 이야기이다. 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처럼 액체를 기반으로 한 부정형의 생물은 판타지 세계관을 가진 그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데, “물의 움직임이야말로 가장 환상적이면서도 익숙한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표현철학이다. 신작 <바람이 분다>에서도 중요한 요소는 바람들이지만(관동대지진으로 닥친 재해의 바람, 비행기를 무기로 쓸 수밖에 없는 시대의 바람 등) 반려자인 나호코를 만나는 순간을 굳이 샘물이 솟아오르는 장소로 고른 걸 보면 이번에도 물을 휴식과 생명력의 상징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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