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성우가 되고 싶다면?
A 성우의 길에 왕도는 없습니다. 일단, 무조건, 각 방송사 성우 공채 모집에 지원하세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물론 성우를 뽑는 방송사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채용도 매년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게 함정이긴 합니다. 진입장벽이 높다보니 재수, 삼수는 기본이고요. 하지만 ‘넘사벽’의 문턱만 넘으면 그야말로 대한민국 공식 ‘성우님’이 되시는 겁니다. 공채 시험을 보지 않고 활동하는 인디 성우도 있긴 합니다만 공식 성우 타이틀 없이 걷는 성우의 길이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Q 한국에는 성우가 몇명 정도 있나요?
A 한국성우협회 신성호 부이사장의 말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된 성우는 700여명인데요. 방송국 공채에 합격한 성우는 입사와 동시에 협회의 준회원이 되고 2년 전속 성우 생활이 끝나면 프리랜서 성우이자 협회의 정회원이 됩니다. 하지만 실제 성우로 밥벌이를 하는 수는 이보다 훨씬 적은 200~300명 정도로 예상됩니다. <토이 스토리>의 우디, <라이온 킹>의 심바 역의 김승준 성우에 따르면 원로 성우도 많고 등록만 돼 있고 성우계를 아예 떠난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하니까요. 인디 성우의 수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신 부이사장은 대략 1만명으로 예상하지만 김승준 성우는 넓게 보면 100여명이고 그중 활동이 활발한 성우는 스무명 내외라고 합니다.
Q 어떤 목소리가 성우로서 좋은 목소리인가요?
A 목소리가 독보적으로 아름답거나 개성이 강하다면 행운에 가깝습니다. 성우 지망생 중 자신은 그 행운아가 아닌 것 같다 생각돼도 낙담하진 마세요. <쿵푸팬더>의 포 엄상현 성우는 최근 성우 시장 환경의 특징을 짚으며 좋은 목소리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해왔는데요. TV나 영화 더빙, 광고, 내레이션 등 성우의 활동 영역별로 요구하는 목소리 톤이나 캐릭터가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다양한 목소리를 구사할 수 있는 목소리가 좋은 목소리라는 겁니다. 본인의 목소리가 어떤 상태이고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는지부터 정확히 아는 게 우선이겠네요.
Q 목 관리 비법은?
A 보이스 액터인 성우에게 목 관리야말로 지상 최대의 과업일 텐데요. ‘목의 그린벨트화’를 위한 성우들만의 명약이나 특별 보양식이 분명 있을 것 같긴 합니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케로로 양정화 성우는 “약에 절어 산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겼습니다. 감기의 기운만 보인다 싶으면 사전 예방 차원에서 미리미리 약을 챙기다보니 약물과다복용이 의심된다는 웃지 못할 사연입니다. 뽀로로의 이선 성우는 지나치게 맵고 짠 음식, 탄산음료는 가급적 자제하고 미지근한 물을 많이 마신다는데요. 연예인만 식단 관리 하는 게 아니었군요. 술, 담배를 하지 않거나 최대한 멀리한다는 것도 일관된 답변이었습니다. 건강 기본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걸 보니 목 관리에도 왕도는 없나 봅니다.
Q 성우가 갖춰야 할 자질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잊지 말아야 할 건 성우도 연기자라는 겁니다. 감정을 표현할 때 정극 배우는 얼굴과 몸을 쓰지만 성우는 목소리만으로 모든 걸 해내야 하니 결코 쉽지 않겠죠. 그만큼 풍부한 연기력은 기본입니다. 여기에 타고난 순발력까지 더해진다면 성우로서 최상의 조건을 갖춘 셈인데요. 특히 더빙은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과 대본을 동시에 보면서 연기해야 하고 입 길이도 맞춰야 하기에 순발력 없이는 힘든 작업입니다. 물론 발음, 발성, 표준어 구사도 굉장히 중요하죠. 이 부분은 본인의 꾸준한 연습이 뒤따른다면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순발력과 언어 감각은 연습한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재능과 노력,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지가 관건이겠군요.
Q 성우들의 수입은 대체로 어느 정도?
A 억대 연봉을 받는 소수의 잘나가는 스타 성우부터 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방송국 소속 1년차 성우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 프리랜서가 되면 수입은 더욱 오리무중, 둘쑥날쑥하고요. 성우 매니지먼트가 따로 없는 한국에서 프리랜서 성우들은 일종의 개인사업자로 활동하는 것이죠. 이 말은 원천징수 이후의 수입은 고스란히 성우의 몫이라는 겁니다. 단 애초에 출연료가 높지 않은 데다 시장 변수를 예측하기 어려워 몇몇 성우들에게 수입이 몰릴 수 있다는 점이 또 다른 함정입니다.
Q 성우도 정년이 있을까요?
A 인체에서 노화가 가장 늦게 진행되는 게 목소리라고 합니다. 70대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성우들도 꽤 있는데요. 목 관리나 자기계발만 잘하면 정년은 길어질 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각 방송국의 2년 전속 성우 생활이 끝나면 원하든 원치 않든 자동으로 프리랜서 성우가 되는 데서 오는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일거리가 꾸준히 들어와 인기와 인지도를 얻으면 롱런하겠지만 그 반대라면 당장 내일부터 실업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거니까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이 돼야 평생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건당 단가가 낮다보니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다”라는 엄상현 성우의 말이 성우 시장의 생리상 기우는 아닌 것 같습니다.
Q <겨울왕국>처럼 흥행 대박이 나면 더빙한 성우도 러닝 개런티를 받나요?
A 국내에서 더빙판이 흥행했다고 성우들이 추가 수입을 받은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오로지 녹음 건에 대해서만 출연료가 책정됩니다. <겨울왕국>의 한국어판 제작사쪽도 월트디즈니와 30년 넘게 일해오면서 한번도 러닝 개런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하니까요. 본사나 더빙판 제작사 모두 당분간은 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본인들에게 유리한 관행을 깨뜨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TV 더빙판의 경우는 재방, 삼방에 대한 추가 수입이 책정된다고 하네요.
Q 설마 성우도 외모를 보나요?
A 외모로 성우를 뽑지는 않겠지만 외모나 외형이 성우 연기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있다고 합니다. 190cm의 거구 시영준 성우는 워낙 소리통이 좋아 괴수, 보스, 전사처럼 크고 굵은 목소리 캐릭터를 전담하고 있으니까요. 장민혁 성우는 셜록을 연기할 때 말끔하게 단장하고 옷깃이라도 한번 더 세우면 왠지 셜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연기에 몰입하게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성우 중에는 멋쟁이 신사 역일 때는 양복을, 껄렁껄렁한 건달 역일 때는 후줄근한 추리닝을 입는 등 의상발을 받는 분도 있다고 하네요. 일종의 메소드 연기라고 보면 되겠죠. 반대로 <쿵푸팬더>의 포를 맡은 이후 자꾸만 살이 찐다는 엄상현 성우는 “포의 실사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데요. 이 정도면 역할 따라 외모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Q 성우도 직업병이 있나요?
A 물론입니다. 성우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지병이 있습니다. 바로 과민한 청각인데요. 워낙 말투와 목소리에 민감한 직업이다 보니 잘못된 발음이나 거친 어투가 들려오면 곧바로 귀가 예민해진답니다.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통화가 하도 귀에 거슬려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Y성우는 “목적지가 아닌데 내려버렸다”며 성우 되고 성격 나빠진(?)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셜록>의 장민혁 성우는 ‘빛이’와 ‘빚이’의 발음 차이를 구분 못하는 친구에게 몇 마디 했다가 “너 잘났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고요. <셜록>의 왓슨 박영재 성우는 한때 “거리의 간판을 보이는 족족 소리내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고 합니다. 직업병 한번 고약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