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김희애] ‘김희애’라는 우아한 심지
2014-03-10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김희애

우아하다. 식상하지만 달리 적합한 단어를 찾을 길이 없다. 배우 김희애는 고지식한 시골처녀에서 화려한 팜므파탈까지 천변만화의 다채로운 연기를 펼쳐왔지만 어떤 역할을 맡을 때도 ‘김희애’라는 심지를 잃지 않는다.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긴장감과는 사뭇 다르다. 오랜 시간 층층이 몸에 밴 꼿꼿함이랄까. 성긴 언어의 그물로는 그저 ‘우아함’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분위기는 긴 시간 동안 배우로 쌓아올린 마음의 결기다. “작품에 임할 때 마음을 다하지 않은 적 없는” 진심, “작품을 고를 때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여유, “주어진 여건하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태도는 ‘김희애스러운’ 공기로 그녀 주변을 맴돌고 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이제는 전부 팀장급이 되거나 다른 일을 하는지 대부분 찾아볼 수 없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영화판은 빠르게 변해간다. 하지만 세월이 모든 걸 바꾼다 해도 변치 않는 것들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계에서 일하는 젊은 친구들은 기운차다. 열정과 꿈이 느껴진다.” 그녀가 선배로서 스탭들을 흐뭇하게 바라볼 때 스탭들도 그녀를 든든하게 쳐다본다. 그녀 역시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년 만의 스크린 귀환이지만 전혀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는 건 단지 자신감 때문만은 아니다. 30년 연기경력이 그녀에게 남긴 것이 있다면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줄 아는 마음의 여유다. “드라마를 보면 늘 꼬이지 않나. 꼬여야 인생이다. 계획한다고 그대로 가는 것도 아니고 찾아온 순간에 감사하며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작품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만날 작품은 결국 만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1993년 <101번째 프로포즈>의 이상형 여인이 20년의 세월을 건너 엄마로 관객을 찾아오기까지 특별한 운명이 있을 것 같지만 그녀의 말대로 운명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지는 것이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영화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드라마쪽에서 꾸준히 일이 있었고 한번 작품을 고사하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TV쪽에 집중하게 됐다. <완득이>를 재밌게 봤던 차에 <우아한 거짓말> 시나리오가 들어왔는데 마침 책도 인상 깊게 읽었던지라 꼼꼼히 보게 됐다.” 거창한 의미부여할 것 없이 만나야 할 때 필요한 배역과 만난 것뿐이다. 그 당연함이 <우아한 거짓말> 속 굳센 엄마 현숙으로 활짝 꽃피웠다. “평범한 엄마지만 그동안 봐왔던 엄마의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자식을 잃은 슬픔 앞에서도 인생을 받아들일 줄 알고 한편으론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 ‘조금 다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김희애는 일상처럼 건조하게 연기하는 배우는 아니다. 강렬한 존재감으로 관객을 설득시키는 쪽에 가깝다. <우아한 거짓말>의 현숙처럼 일상적이면서도 평범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의 캐릭터는 극적인 힘을 발한다. 이한 감독이 시나리오 단계부터 그녀를 캐스팅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벌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를 통해 소탈한 성격을 보여줬지만 ‘털털하다’는 말이 원래의 모습과 다른 면모를 드러냈다는 의미라면, 오해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밝게 빛나는 민낯으로 서 있었다. 단지 아름다운 얼굴이 쌓아올린 고정관념이 이를 가려 보지 못했을 뿐, 카메라 뒤에서는 촬영 내내 스탭들을 챙기고 말을 거는 배려심 깊은 누나가 앉아 있다. 동시에 편하고 소박하게 다가와도 지울 수 없는 단아함도 두르고 있다. 어느 쪽도 분리되지 않는, 분리할 필요 없는 ‘진짜’ 김희애다. 순간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넉넉함.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결코 꺾이지도 빛바래지도 않는 심지. 그걸 우아함이라고 할까보다. 아니 김희애스러움이라고 불러야겠다.

헤어 서은미 부원장(Jacqueline)/메이크업 박정민 원장(D by SUSUNG)/의상 최아름 실장(INTREND)/의상협찬 PUBLICKA(블랙 튜브 드레스&레드 슬릿 디테일 드레스, 화이트 원숄더슬리브 드레스), 캘빈클라인 주얼리(골드 이어링&브레슬릿), 스튜어트 와이츠먼(누디 오픈토 슬링백 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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