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엄친아’라는 말의 유래를 아십니까
2014-07-24
글 : 송경원
글 : 윤혜지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웹툰 10년 지식백과

어느덧 10년이 훌쩍 지났다. 아니 고작 10년이다.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했던 웹툰이 만화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덴 그 정도면 충분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웹툰의 역사를 되짚어 오늘의 웹툰을 만들어낸 보석 같은 순간들을 찾아봤다. 재밌어도 재미없어도 그저 만화 한편, 하지만 그 시간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소중한 이야기들. 재미나고 신기한 순간들 속에서 언젠가 당신에게 미소를 선물했던 당신만의 웹툰을 떠올려보시라.

일상툰에서 스토리툰으로

웹툰 이전의 웹툰들이 있었다. 간단한 스토리에 플래시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더해진 웹애니메이션 <마시마로>(2000)나 개인 홈페이지에 만화일기 형식으로 연재하며 귀차니즘을 유행시킨 일상툰 <스노우캣>(1999), 해산물을 의인화한 성게군, 불가사리군 등 캐릭터들의 생활을 그린 캐릭터툰 <마린블루스>(2000). 캐릭터를 바탕으로 유머와 일상을 짧은 이야기 형식으로 보여준 이들 작품은 주로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와 만났고 감성툰, 만화일기, 만화에세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웹툰의 초기 형태를 보여줬다. 짧고 가볍게 소비되던 웹툰이 스토리툰 형태로 자리잡기 시작한 건 2003년 다음 ‘만화속세상’에 연재를 시작한 강풀의 <순정만화>부터다. 서사를 강조한 긴 호흡의 만화는 웹툰에 새로운 가능성과 깊이를 더해줬다. 밤새 계속되는 스크롤 내리는 손가락 소리. 즐거운 스크롤의 압박. 웹툰의 끝나지 않는 천일야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킬러콘텐츠의 등장

강풀, 강도하, 곽백수, 양영순, 조석, 김규삼, 윤태호. 만화를 찾아보진 않았어도 들어봤을 이름들. 한국에서 포털을 통해 인터넷을 하는 한 이들 이름을 피해 다니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웹툰 붐과 함께 포털 사이트의 간판으로 내걸린 웹툰 작가들은 이제 믿고 보는 신뢰의 이름이 됐다. 인기 있는 웹툰 한편이 그 어떤 홍보 전략보다 효과적이었다. 포털에 들렀다 잠깐 머리 식히러 보는 게 아니라 만화를 보기 위해 일부러 포털을 찾게 만드는 웹툰들. 강풀 만화를 보기 위해 다음을 방문하고 조석 만화에 출근도장 찍듯 네이버 창을 연다. 웹툰 시대를 연 강풀의 <순정만화>를 필두로 직장인과 어른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윤태호의 <미생>, 독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밀당의 고수 양영순의 <1001> <덴마>, 네이버 최장기 연재, 지각 결석 한번 없는 우등생(?) 조석의 일상개그만화 <마음의 소리> 등 대형 화제작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이자 브랜드다.

원작의보고

이제 웹툰 없는 한국영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할리우드영화가 코믹스와 슈퍼히어로에 매달리듯 한국영화도 소재가 필요할 땐 일단 웹툰부터 뒤진다. <이끼>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 <전설의 주먹> <은밀하게 위대하게> <더 파이브> 등 이미 영화화된 작품은 물론이고 앞으로 영화화를 기다리는 작품들까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웹툰 양강 중 하나인 다음은 ‘영화의 다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다음 웹툰, 한국영화의 힘이 되다!”라는 이벤트 배너를 내걸기도 했다. 서사성이 강한 작품을 주로 연재하는 다음에서 영화, 드라마화되는 웹툰이 자주 나온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작품이 많은 네이버는 <놓지마 정신줄> <미호 이야기> 등이 애니메이션으로, <와라 편의점>이 게임으로 제작되는 등 다른 플랫폼으로의 확장도 활발하다. 물론 <목욕의 신> <신과 함께>처럼 영화화 대기 중인 기대작도 있다. 현재 인터넷에 게재 중인 웹툰만 1200편이 넘는다니(2014년 5월 기준) 이야기의 무한동력 웹툰의 샘이 마를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웹툰 생태계의 토양, 인큐베이팅 시스템

웹툰 작가가 되는 법? 일단 그린다. 올린다. 반응을 본다. 인기 만화가 등극! 농담 같지만 진짜다. 포털 중심의 웹툰 시장에서 포털들이 내놓은 인큐베이팅 시스템은 신인 작가들이 웹툰을 정식 연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아마추어 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은 다음의 ‘나도 만화가’(현 웹툰 리그), 네이버의 ‘도전만화/베스트도전’ 등 포털에서 제공한 공간에 작품을 올리고 그 반응에 따라 정식 연재작가가 될 수 있다. <놓지마 정신줄>의 신태훈/나승훈, <연옥님이 보고계셔>의 억수씨 등 다수의 인기 작가들이 이 길을 거쳤다. 네이버 베스트도전에서 주목받은 뒤 다음에 연재 중인 <어쿠스틱 라이프>처럼 일단 이름만 알리면 길은 의외로 넓게 열려 있다. 디시인사이드, 루리웹에서부터 인지도를 쌓은 원조병맛 이말년 같은 경우도 있다. 아마추어 작가들의 무임금 희망노동을 조장한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신작 공급을 통해 웹툰 생태계의 밑바탕을 받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병맛계의 전설 아닌 레전드

약 빨고 만들었나! 이들의 웹툰을 본 독자라면 한번쯤 외쳐보았을 말이다. 아기자기한 일상툰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툰 사이에서 ‘괴랄한’(‘괴이하다’의 강조어 정도로 쓰이는 인터넷 은어) 존재감을 뽐내는 독보적인 그 이름, 귀귀와 이말년. 간편하고 빠른 웹툰의 인터페이스를 타고 병맛 코드가 흥하게 된 데에는 귀귀와 이말년의 ‘작가정신’이 큰 힘을 발휘했다. 그들의 가장 큰 성취는 순수하고 원초적인 방식의 유머에 날카로운 사회 비판 의식을 성공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각종 패러디로 점철된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는 토막토막 잘려 한컷짜리 ‘짤방’으로도 무척 사랑받았다. 야후 카툰세상과 네이버에서 정식 연재를 시작하기 전 그가 인터넷 사이트에 간헐적으로 올렸던 초기작들이 특히 훌륭하다. 귀귀의 <열혈초등학교>는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을 달고 <조선일보>의 헤드라인으로 실리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으며, 그 심오함을 견디지 못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연재 중단을 ‘명’받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병맛 웹툰계의 양대 산맥, 귀귀와 이말년이여 영원하라!

엄친아부터 차도남까지

웹툰이 만들어낸 유행어, 신조어의 파급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넘사벽’ 유행어로는 가장 먼저, 조석이 <마음의 소리> 242화 ‘도시남자’ 편에서 처음 사용한 ‘차도남’을 들 수 있다. “나는 차가운 도시의 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라는 뜻이다. 그 밖에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할 때 울면서 외치는 “엉엉 날 가져요”, 민망한 상황을 애써 수습하려 할 때 말하는 “됐어. 자연스러웠어”도 자주 쓰이는 유행어다. 마치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을 것 같은 ‘귀차니스트’는 스노우캣의 <스노우캣>에서 처음 쓰인 말이다. 원조 유행어 제조기 워니의 <골방환상곡> 8화 ‘우월한 자’ 편에서는 전설적인 신조어 ‘엄친아’(엄마친구아들)가 탄생했다. 자매품(?)으로 우리 아들 앞길 망치는 못난 친구를 뜻하는 ‘우아친’(우리아들친구)도 있었으나 ‘엄친아’의 활용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엄친아’는 ‘엄친딸’이라는 유사어를 낳기도 했다.

웹투니스타

특유의 개성으로 더욱 스타성을 반짝이는 작가들이 있다. 다음 ‘만화속세상’에 원조 웹투니스타 강풀이 있다면 네이버 웹툰의 조석, 이말년, 정다정 등은 그 뒤를 잇는 후속주자다. 강풀은 <26년> <이웃사람> 등 대부분의 작품이 영화화된 대중적인 스토리텔러이기도 하지만 강동구 길고양이 급식소에 1천만원을 기부하는 등 공익적 목적의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편이다. 특히 고양이 사진과 ‘먹짤’을 주로 게시하는 SNS 덕에 더욱 친근해진 타입. 조석, 이말년, 정다정 등은 특유의 개그센스와 개성으로 인기를 끈다. 네이버 웹툰을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린 일등공신 조석은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는 8년간 단 한번의 지각도, 휴재도 없었을 정도의 대단한 끈기와 성실성을 보여줬다. ‘조석간만의 차’라는 별명이 있었을 만큼 때로 작품 속 재미의 기복이 심했던 적도 있지만 대체로 따라올 자 없는 유머감각을 자랑한다.

추천, 반려동물툰

지금까지 만화에 등장하는 애완동물은 그저 보조 캐릭터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웹툰에서 ‘반려동물’은 소재가 아니라 장르다. 반려동물과 사는 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집이나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만화가들은 특히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대표적인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한다. 성향에 따라 골라보면 좋겠다. 강아지파라면, 도베르만과 토끼를 함께 키우는 만화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원진의 <개와 토끼의 주인>,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하면 틀림없이 펑펑 울고 말 초의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를 추천한다. 고양이파라면 집사로서의 올바른 행동양식을 배울 수 있는 순의 <탐묘인간>과 네 마리 통통한 고양이들의 복닥복닥한 생활을 그린 유리의 <뽀짜툰>, 집사와 고양이의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김경의 <상상고양이>를 반드시 정주행할 것. 그 밖에 골드키위새의 <우리집 새새끼>, HUN의 <그루밍 선데이>, 도도호랑의 <조조할인>도 강력 추천작! 7월22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는 제1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는 <만화가의 반려동물전>도 계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