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소리가 너무 큰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직접 움직이는 게 제일 빠르다”며 인터뷰를 하다 말고 강동원이 벌떡 일어나 오디오로 향한다. 그래도 주변 소음이 가시지 않자 강동원은 “좀더 인터뷰하기 좋은 곳을 찾아보자”며 자리를 살핀다. 스스로가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는 적극적이고 세심한 모습을 보니, 강동원을 두고 ‘디테일한 사나이’(<씨네21> 963호)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장소를 재정비하고 한결 편안해진 걸까. 강동원은 어느새 뭉근한 농담과 느긋한 말투로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일할 때는 까다로운 게 있지만 평소에는 좀 얼빠진(?) 멍청한 구석이 많다”면서 “개구지고 산만하다”는 소리깨나 듣고 자란 어린 시절까지 되짚는다. 그렇다면 강동원 스스로가 평소의 자신과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하는 <두근두근 내 인생>의 한대수도 이런 모습이란 말인가. 강동원 옆에 한대수를 슬쩍 세워본다.
대수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열일곱살에 아빠가 된 서른세살 먹은 가장이다. ‘선천성 조로증’을 앓는 아들 아름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즐겁게 하는 아들 바보이기도 하다. 걸그룹을 보며 헤벌쭉 웃을 땐 영락없는 철부지지만 사실 대수는 누구보다도 뜨거운 남자다. “나도 그런 기질이 있다. 아직까지도 잘 타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뭐 하나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편이고. (송혜교씨는 나더러) 본인 그대로만 하라고 하더라. (좌중 웃음) 지인들도 대수 역에 내가 딱이라고 하고.” 이번 작품에서 강동원은 새롭게 무엇을 덧붙이기보다는 자기 안에 있는 기질과 성정을 모아서 자연스레 그림을 완성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강동원이 현실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아빠 역을 연기한다는 건 좀처럼 상상해보지 못한 그림이었다. 비현실적인 외모로 현실 너머의 세계에서 막 튀어나왔을 법한 극화된 인물들(<형사 Duelist> <M> <전우치> <초능력자>)을 연기해온 전작들 때문일까. 게다가 얼마 전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에서는 아버지를 향해 서자의 비감(悲感)을 토해냈으니까. “사람들이 ‘어울릴까?’ 의문을 가질 때 잘해낸다면, 거기에서 오는 쾌감이 더 있을 거다. 보란 듯이 잘해내면 되니까.” 의심을 믿음으로 바꿀 자신은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가장 늙은 아이와 가장 젊은 부모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야기를 푸는 게 좋았다. 아이는 너무 빨리 늙어가고 어린 부모는 자신들의 꿈을 다 버린 채 너무 빨리 고생을 시작하고. 가족의 희생을 어둡게만 푸는 게 아니라 경쾌하게 접근한 것도 좋고. 대수가 이 영화를 밝게 만드는 인물이라 그런 쪽으로 캐릭터를 잡아갔다.”
아름에게서 나이든 자신의 모습을 미리 보는 대수와, 대수에게서 젊음의 싱그러움을 꿈꿔보는 아름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그래서인지 강동원은 “관객이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게 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자연스레 자신의 지난 시간을 더듬어본다. “돌아보니 일한 기억밖에 없더라. (웃음)”라고 말하지만 그건 아쉬움보다는 지치지 않고 달려온 자신에 대한 격려의 의미로 읽힌다. “연기를 하지 못한 (공익근무요원일 때의) 시간이 힘들었다”, “올해 안에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고 싶다”고 전할 만큼 연기를 향한 그의 애정의 온도는 여전히 뜨겁다. 그러니 지난 한해를 온전히 쏟아부은, 자식 같은 두 작품(<군도> <두근두근 내 인생>)이 연이어 관객을 만나는 지금 그의 심장은 또 얼마나 뛰고 있을까.
“<군도>는 뼈아팠다. 정말 다 올인해서 만든 영화인데, 생각보다 관객 반응이 좋지 않더라. 관객의 선택을 의심하면 안 된다는 쪽이다 보니 반성도 많이 했다. 잘 만든 영화이지만 결과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이니까. 하기는 진짜 열심히 했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많이 했다.” 그만큼 <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한 그의 바람은 확실하다. “논란의 여지없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길. 욕 좀 덜 먹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