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호빗> 시리즈 흥행 및 수상실적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2001년 12월31일 개봉 / 165분 / 390만 관객 2002 아카데미 촬영상, 시각효과상, 분장상, 음악상 수상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2002년 12월19일 개봉 / 177분 / 518만 관객 아카데미 특수효과상, 음향편집상 수상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2003년 12월17일 개봉 / 199분 / 596만 관객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주제가상, 편집상, 작곡상, 미술상, 시각효과상, 의상상, 분장상, 음향믹싱상 수상
<호빗: 뜻밖의 여정> 2012년 12월13일 개봉 / 169분 / 280만 관객 아카데미 미술상, 시각효과상, 분장상 노미네이트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2013년 12월12일 개봉 / 161분 / 228만 관객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음향편집상 노미네이트
“땅속 어느 굴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에 시험 채점을 하던 옥스퍼드대학 앵글로 색슨어 교수 톨킨은 답안지 중 하나를 들었는데, 한 페이지가 백지로 남아 있다는 것을 모르고 추가 점수 5점을 줄 뻔했다. 그러고는 읽을 것이 없는 그 답안지 위에 그가 말하길,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호빗이 등장하는 저 유명한 첫 문장을 휘갈겨 썼다. <반지의 제왕>과 <실마릴리온>에 앞서 1937년 출간한 <호빗>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80여년 뒤, 피터 잭슨을 통해 영화화된 <반지의 제왕> 3부작을 경유하여 <호빗> 3부작 또한 대장정을 마쳤다. 그 장대한 6부작의 순환구조 안에서 <호빗: 다섯 군대 전투>(이하 <다섯 군대 전투>)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2001, 이하 <반지원정대>)로 이어지는 흥미로운 전사(前事)이자, 그처럼 <반지의 제왕> 이전 이야기임에도 전체 6부작이라는 관점에서 길고 긴 여정을 매듭지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작품이다.
1인칭 게임처럼 느껴지는 이유
용 스마우그가 죽고 새로운 전투가 시작된다. 지난 1, 2편에서 빌보 배긴스(마틴 프리먼)와 참나무방패 소린(리처드 아미티지), 그리고 간달프(이안 매켈런)가 이끄는 난쟁이족 원정대는 에레보르에 있는 엄청난 보물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는 3편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용 스마우그(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호수 마을의 무기력한 주민들을 공격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참나무방패 소린은 탐욕에 서서히 눈이 멀어 우정과 명예를 저버린 채 왕의 보물 아르켄스톤을 찾는다. 그러던 와중에 암흑의 군주 사우론은 오크 군대를 보내 공격을 감행하고 난쟁이, 엘프, 인간은 단합할 것인지 말살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 모두 각각 1편부터 3편까지 동시에 촬영된 것은 워낙 유명한 일이다. 그래서 DVD 스페셜 피처에 실린 마틴 프리먼의 인터뷰를 보면 “1편 얘기해야 돼요? 아니면 2편 얘기?”라며 되물을 정도로 배우들조차 헷갈려한다. 보통 1편 개봉 후 그 성패에 따라 속편이 계획되는 것이 관례지만 이를 깨고 매번 1편부터 3편까지 동시에 촬영됐으며, 그 촬영기간은 매번 1년을 훌쩍 넘겼다. 그럼에도 매 시리즈의 시작은 마치 새로운 독립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시작했다. 가령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마무리짓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 이하 <왕의 귀환>)은 골룸이 반지를 얻게 되는 과거를 담은 플래시백으로 시작했다. 3부작을 이어가며 시공간의 배치를 자유롭게 했다는 얘기다.
반면 <호빗> 3부작을 마무리짓는 <다섯 군대 전투>의 경우 <호빗:스마우그의 폐허>(2013, 이하 <스마우그의 폐허>)의 후반부에 등장한 용 스마우그가 불을 뿜으며 호수마을을 공격하는 장면부터(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표현하길 ‘울화가 치민 아이’처럼) 바로 시작한다. 말하자면 <호빗> 3부작은 거의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원정대의 이야기를, 시공간의 미학적 배치 없이 그저 시간대별로 거칠게 뚝뚝 잘라내서 붙인 느낌이다. 그만큼 전투에 전투를 거듭하는 <다섯 군대 전투>는 이전 어떤 시리즈들과 비교해도 선명하고 강력하다. 이처럼 ‘작정하고 한곳에 모아 작살내는’ 시리즈는 처음이다. 특정한 장소에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입장하고 퇴장하는, <다섯 군대 전투>가 마치 1인칭 게임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피터잭슨의 진짜 상상력
사실 <호빗>은 3부작으로 만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쉽게 말해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6권의 책을 3편으로 압축한 것이고, <호빗> 시리즈는 총 19장으로 이뤄진 1권의 책을 3개로 늘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피터 잭슨이 “톨킨의 더 큰 비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호빗>을 3부작 구조로 만드는 것이 어울린다고 판단했다”는 의견과 별개로, <호빗> 3부작은 이야기를 늘리기 위해 피터 잭슨의 ‘허구’가 많이 가미됐다. 원작에 대한 ‘가공’ 혹은 ‘훼손’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호빗> 3부작이야말로 피터 잭슨의 진짜 상상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무대였다는 얘기다. 먼저 원작과 달라진 점을 살펴보자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레골라스(올랜도 블룸)와 난쟁이 킬리(에이단 터너)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엘프 타우리엘(에반젤린 릴리)이 오직 영화를 위해 창조된 캐릭터라는 점이다. 심지어 레골라스 또한 <호빗>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는 <호빗> 원작에서 활을 쏴서 스마우그를 처치하는 인간 바르드(루크 에반스)에게 아들은 없었다. 이 두 가지만 놓고 봐도 피터 잭슨의 의도는 명쾌해진다. 바로 원작에는 없는 로맨스와 부자(父子)간의 정을 더한 것이다.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 이미 봤던 아라곤(비고 모르텐슨)과 아르웬(리브 타일러)의 로맨스, 전체 6부작을 통틀어 내내 ‘누구의 아들 누구’라며(아라손의 아들 아라곤 혹은 스라인의 아들 소린) 계속 언급되는 부자 관계의 밝은 면이 비로소 드러난다. 가령 <왕의 귀환>에서 아버지 데네소르 2세(존 노블)는 <반지원정대>에서 죽은 아들 보로미르(숀빈)만 그리워할 뿐 곁에 있는 아들 파라미르(데이비드 웬햄)는 못마땅해한다. 심지어 “형이 아니라 제가 죽었으면 좋겠죠?”라는 파라미르의 질문에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니까, 바르드와 그의 아들이 보여주는 진한 정은 신선하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할 것이다. 여기서 원작에는 없던 레골라스를 등장시켜 이전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굳이 이음새를 만들려는 피터 잭슨의 노력은 눈물겹다.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레골라스는 소린 일행을 생포하는 과정에서 글로인(피터 햄블턴)의 소지품에서 그의 어린 아들 김리의 초상화를 봤고, <다섯 군대 전투>에서는 모든 전쟁이 끝난 다음 아라곤이라는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채 아라손의 아들 ‘스트라이더’를 찾으러 떠나라는 명을 받는다.
이러한 <호빗>의 영화적 확장에는 분명 피터 잭슨의 오랜 야심이 숨어 있다. 새로운 프리퀄 3부작을 더해 총 6부작으로 완성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6부작에 맞먹는, 마찬가지로 프리퀄 격인 <호빗>을 3부작으로 만들어 총 6부작을 만드는 것 아니었을까. 게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1980)과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1983)의 경우 각각 어빈 커시너와 리처드 마퀀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을 감안하면(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 ‘조지 루카스의 세계’라 여기겠지만), <호빗>과 <반지의 제왕>으로 이어지는 이 거대한 ‘중간계 6부작’은 오직 피터 잭슨의 이름만 연출자로 올라가 있다. 할리우드 판타지 블록버스터 역사에 있어 신화의 장본인이 되고픈 그 야심은, 절대반지를 향한 영화 속 인물들의 욕망 못지않다.
가장 크고 장대한 전투
<다섯 군대 전투>는 스마우그를 처치한 이후에도 곧장 전투로 이어진다. <다섯 군대 전투>를 향한 감탄 혹은 아쉬움 또한 바로 거기 있다. ‘다섯 군대 전투’라는 부제에 걸맞게 한 장소에서 시종일관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운다. 그런 점에서 <다섯 군대 전투>가 6부작 전체를 통틀어 가장 공간 이동이 적다는 사실은 가장 큰 아쉬움이다. 호수마을의 난민들이 에레보르성 앞에 당도하는 것으로 사실상 끝나, 이전 시리즈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던(그리하여 주된 촬영 로케이션 장소인 뉴질랜드를 국제적 관광지로 만들었던) 여정과 풍경의 쾌감은 영화가 보여주는 화력에 비해 많이 희생됐다. ‘세팅’ 자체에 공들인 1편을 지나 베오른과 스마우그가 등장한 2편에 이어 사실상 새로이 등장한 캐릭터도 없다고 할 수 있다. 6부작을 통틀어 그 또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피터 잭슨은 마치 그런 우려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여행 끝, 전투 시작’이라는 태도로 <다섯 군대 전투>를 만들었다.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2002, 이하 <두개의 탑>)의 헬름협곡전투와 비교해도 그 규모와 화력은 어마어마하다.
실제로 <호빗>의 다섯 군대 전투는 톨킨의 소설에 나오는 전쟁 중 가장 크고 장대하다. 엘프, 난쟁이, 인간의 군대가 에레보르 언덕에서 맞닥뜨리고 사악한 오크 군대가 이 전투에 합세한다. 오크 군대는 너른골과 갈가마귀 언덕을 빽빽하게 메운다. 온갖 생명체들이 떼로 몰려와 지상을 가로지르며 굉음을 내고 하늘을 까맣게 뒤덮는다. 성벽을 부수는 거대한 트롤처럼 힘 대 힘으로 맞서 싸우기도 하고, 엘프는 거의 무협영화의 주인공처럼 유려한 율동으로 전장을 누빈다. 상상하는 그 모든 전투의 양상이 모두 여기 담겼다. <반지의 제왕>이 시작한 트렌드를 그 스스로 마무리짓겠다는 심산이다. 여기서 이전 5편의 작품에 등장한 캐릭터들을 적당히 재활용해도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웨타 워크숍은 새로이 100가지 종류의 오크를 만들었고 엘프의 의상까지 모두 새로 디자인했다. 물론 새로운 군대도 있다. 바로 무쇠발 다인이 이끄는 철산 난쟁이 부대다. 이 당당하고 난폭한 종족의 모티브는 바로 멧돼지였는데, 실제로 다인 자신도 멧돼지를 타고 전쟁터에 등장한다. 어쨌거나 피터 잭슨은 혼란스런 전투의 와중에도 앞서 얘기한 로맨스와 부자간의 정이 자연스레 녹아들도록 치밀하게 안배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은, 톨킨이 얘기하고자 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린의 탐욕과 그로 인한 결과다.
하지만 호빗과 간달프의 관계 바깥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두 인물, 바로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아라곤과 <호빗> 3부작의 소린을 비교하면, 결과적으로 아무래도 아라곤의 향수가 더 강력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것은 피터 잭슨 또한 알고 시작한, 하지만 자기 손으로 끝내야만 했던 싸움이었을 것이다. <호빗>에서 자기가 사는 마을밖에 모르던 빌보 배긴스를 찾은 간달프는 이렇게 설득했다. “세상은 책과 지도에 있지 않다. 바로 집 밖에 있다. 우리와 함께 원정을 떠나자.” 말하자면 중간계를 둘러싼 욕망과 탐욕 그 바깥에서 <호빗>과 <반지의 제왕> 6부작은 결국 집을 떠난 호빗의 위대한 귀환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얼떨결에 모험에 나선 호빗은 갖은 시련을 겪은 후, 지혜와 용기를 갖춘 인물로 성장하여 귀환한다. 그로부터 <다섯 군대 전투>의 다음 이야기인, 하지만 우리가 이미 10년 전에 봤던 <반지원정대>는 빌보 배긴스의 111번째 생일에 간달프가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프로도(엘리야 우드)가 그를 반긴다. 시제를 떠나 6부작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봐주길 당부한 피터 잭슨은 말했다. ‘그렇게 모험은 계속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