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정우] 울었고 또 설레었다
2015-02-16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쎄시봉> 정우

정우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어버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도 뜯어보면 순정남이었다. 잔정은 많지만 그리 내색하지 않는 경상도 순정남. 이제 막 뜨겁게 첫사랑을 통과하는 <쎄시봉>의 오근태는 쓰레기보다 풋풋하고 어수룩한 순정남이다.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어?” 라고 묻는 첫사랑 자영에게 “평생 널위해 노래할게”라고 대답하는 남자. 낯간지러운 멜로를 천연덕스러운 일상의 멜로로 탈바꿈하는 데 출중한 재주를 지닌 정우가 제대로 사랑에 빠졌다.

-<응답하라 1994> 이후 어떻게 지냈나. 불러주는 데가 많아 제대로 쉬지도 못했겠다.

=물리적으로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찾아주는 분들은 너무 많은데 그걸 다 소화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다 보니 힘든 일들이 생기더라. 20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무조건 배운다는 생각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런데 배우로서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 30대 즈음부터는 내가 진심으로 애정을 느끼고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에 집중하게 되더라.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 뜻과는 달리 상처주는 일들이 생겨서 요즘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럽다.

-<쎄시봉>의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렸나.

=전부 다. 모든 게 충족됐다. 김현석 감독님 작품도 좋아했고 시나리오도 재밌었다. 시나리오 보면서 울었고 또 설렜다. 김희애, 김윤석 선배님이 캐스팅된 상태였는데, 선배님들과 함께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영광이었다.

-어느 지점에서 설렜나.

=근태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나 역시 느낀 적이 있으니까. 그 감정들이 대사를 통해 나를 찌를 때 설레고 두근거렸다. 그러다 눈물도 흘렸고. 기뻐서 혹은 슬퍼서 혹은 아련해서. <쎄시봉>은 옛 감정을 추억하게 해주는, 추억여행 같은 영화다.

-민자영에게 첫눈에 반해 노래를 부르는 오근태는 대단한 순정남이다.

=순정남이라기보다 그냥 한 사람만 좋아하는 거다. 한 사람만. 그 친구(자영)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치고. 첫사랑의 의미가 좀 큰 인물인 거지.

-실제 정우와 근태는 얼마나 닮았나.

=분명 닮은 지점이 있다. 근태뿐만 아니라 내가 연기한 대부분의 캐릭터가 그렇다. 캐릭터에 나를 맞추려 하기보다 ‘나라면…’이란 생각으로 캐릭터를 내게 끌어오는 편이다. 그러니 군데군데 실제 내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다.

-당시의 포크 음악을 평소에도 좋아했나.

=쎄시봉 선배님들은 물론이고 김현식, 김광석, 이문세 선배님의 노래들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말할 것도 없고, <내 사랑 내 곁에> <그녀가 처음 울던 날>과 같은 정서의 곡들이 내게 잘 맞는 것 같다. 예전에 부모님이 서점을 하셨는데 서점에 라디오나 음악을 늘 틀어놓았다. 생각해보면 그걸 듣고 자란 영향 같기도 하고.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는 편인가.

=그렇지 않다. 시간이 적당히 흐르고 어색함이 없어지면 장난을 좀 치는데 처음부터 활발하게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현재 촬영 중인 이석훈 감독의 <히말라야>에선 막내다. 막내인데도 조용히 있나.

=조용~하다. (웃음) 조성하 선배님, 황정민 선배님이 워낙 재밌고 편하게 해주셔서 리액션만 열심히 하고 있다.

-<히말라야>도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선택한 작품인가.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그 말이 개인적으론 너무 무난한 느낌이 든다. 안 할 이유가 없어서 선택한 게 아니라 그 작품이 진짜 하고 싶었다.

-다시 <쎄시봉> 이야기로 돌아가면, 배우 김윤석이 40대의 근태를 연기한다. 사실 두 배우의 이미지는 꽤 다른데.

=그런가? 외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웃음) 김윤석 선배님이 아무래도 카리스마 있고 무거운 역을 많이 하셔서 그런 것 같다. 밝고 코믹한 느낌은 아니니까. 김윤석 선배님과 비교를 하는 게 아니라 내게도 분명 선배님이 가진 남성적인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이 영화 중간중간에 나올 거다. 근태라는 인물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작아지는 캐릭터지만 동성 친구들 사이에선 절대 소심한 친구가 아니다.

-<쎄시봉> 찍으면서 나의 스무살 시절과 20대를 돌아보게 됐을 것 같다.

=또래 친구들과 음악에 파묻혀 촬영한다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다. 드라마, 광고, 화보 촬영으로 많이 지쳐 있을 때였는데 <쎄시봉> 찍으면서 많이 치유받은 것 같다. 현장이 즐거웠고, 나는 즐겁게 연기만 하면 됐다.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

=<히말라야> 이후 계획은 아직 없다. 특별히 계획을 세우며 살지 않는다. 세워봐야 계획대로 안 되더라. 어렸을 땐 계획을 잘 세웠다. 올해에는 영화 몇 작품 하고 드라마 몇 작품 하고…. 그런데 어디 뜻대로 되나, 안 되지. 또 사사로운 계획이 쌓이다보니 내가 나 자신을 혹사시키는 느낌이 들더라. 물론 큰 계획은 세우기도 한다. <응답하라 1994> 끝나고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쎄시봉>과 <히말라야>를 하게 됐다.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 있다면 그게 드라마든 영화든 혹은 예능이든 가리지 않을 거다.

스타일리스트 권은정, 박상정·헤어 지경미·메이크업 요닝 엄아영·의상협찬 테크노보헤미안 by 존화이트, 티파트먼트 by 아티지, 율이에, 로드앤테일러, 리차드니콜 by 존화이트, MUNN by 커드, 에잇세컨, 프레드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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