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드나들던 남자들 모두가 민자영을 흠모한다. 첫사랑의 아이콘이자 쎄시봉 친구들의 뮤즈인 민자영은 그러니 단번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배우여야 했다. 한효주가 민자영의 옷을 입었다. 솔직 발랄함을 무기로 남자들의 마음을 녹이는 민자영과 한효주는 어느 순간 스크린에서 한몸이 되어 뛰어논다. 민자영은 <감시자들> <반창꼬>의 털털하고 괄괄한 미녀,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드라마 <동이>의 단아한 사극 여인보다 더 한효주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 보이는 캐릭터다. 2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한효주는 여전히 스무살의 싱그러움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녀의 환한 미소와 솔직한 태도는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게끔 만들기에 손색없었다.
-<감시자들> 이후 일본영화 <미라클 데비쿠로군의 사랑과 마법>, 단편영화 <묘향산관>을 찍었다.
=좋아하는 일본영화들이 좀 있다. 이누도 잇신,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같은. 기회가 되면 일본영화에도 출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누도 잇신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작업이었다. 외국배우로 촬영하는 건데 혹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부담도 됐고 외국어로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만큼 열정을 쏟아부었더니 촬영 끝나는 날 울음이 나더라.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단편영화는, 좋아하는 미술작가님들이 단편 작업을 한다기에 그들의 전작 비주얼 아트를 찾아봤다. 작품에 고집이 담겨 있는 게 느껴졌고 같이 해보고 싶어졌다. 단편에선 북한 여자로 나오는데, 일본어에 치이자 또다시 북한말에 치이고…. 그래도 재밌는 작업이었다.
-그에 비하면 <쎄시봉>은 한결 수월한 작품이었겠다.
=그냥 즐겼다. 마음껏 사랑받으며. 역할이 뮤즈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도 뮤즈 대접을 해주더라. 원래는 현장에서 남자 선배님들과 형 동생처럼 털털하게 지내는데 이번엔 공주 대접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말투도 달라지고.
-사랑을 듬뿍 받는 캐릭터를 연기해보니 어떻던가.
=사랑받는 캐릭터에 욕심은 없었다. 오히려 주변에서 이런 건 쉽게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적극 권했다. 확실히 영화 홍보할 때 되니 알겠더라. 뮤즈라는 게 정말 좋은 역할이구나. (웃음)
-민자영에게선 어떤 매력을 보았나.
=당차고, 솔직하고, 감정을 에두르지 않고, 한편으론 흔들리는 청춘이고. 그래서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민자영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솔직함 때문인 것 같다. 근태가 “나 너 좋아해”라고 고백했을 때 보통의 여자들은 하하하 웃으며 뺄 텐데 자영은 “알아” 그런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민자영의 매력 아닐까.
-순진한 근태의 마음을 알고 장난도 치고.
=그래서 나쁜 년이다. (웃음) 영화를 본 여성 관객이 민자영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민자영을 미워할지, 이해할지. 보편적으로 여자들이 한번쯤은 해봤을 법한 태도인데도 그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나면 사람들은 나쁜 년이라 그러지 않나.
-자칫 잘못하면 남자 관객에게도 욕먹고 여자 관객에게도 욕먹을 수 있는 캐릭터다.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움은 잃지 않아야 하고.
=어려웠다. 정말. 그렇다고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 쓰며 연기하진 않았다. 민자영의 감정에 충실했다. 욕먹으면 어떤가. 나는 민자영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으니, 그걸로 됐다.
-민자영의 마음이 확실히 이해됐던 장면 혹은 순간은 언제였나.
=촬영 들어가기 전에 의견이 분분했다. 감독님과 촬영감독님이 물어보더라. “민자영은 오근태를 사랑했을까요?” 바로 대답했죠. “아니요. 그냥 썸 탄 거죠.” (웃음) 그렇게 민자영은 나쁜 년이라 생각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6월15일, 아직 날짜까지 기억하는 그날 느꼈다. 근태가 자영에게 “나 너 좋아해”라고 고백하는 신을 찍을 때였다. 처음이었다. 연기하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 건. 시나리오를 읽으며 준비했던 감정, 민자영은 이렇게 느낄 거야라고 생각해둔 감정의 노선이 완전히 뒤바뀐 날이었다. 민자영은 오근태를 좋아하는구나. 진심으로 좋아했구나. (웃음) 그러면서 민자영이 더 이해되기 시작했다. 연기할 때의 감정도 더 깊어졌고. 감정 노선을 갈아타게 한 데는 정우 오빠의 힘이 컸다. 오빠의 연기를 보고 내 마음이 움직였다. 정말이지 그런 경험 처음 해봤다. 그날을 ‘6•15의 난’이라 이름 붙였다. 촬영 끝나고는 ‘오늘 술 마시러 갑시다’ 그랬고. (웃음)
-<쎄시봉> 이후 <뷰티 인사이드>를 찍었다. <해어화>에도 캐스팅됐는데, 참 다작 하는 배우다.
=연기하는 거 좋아한다. 영화 일 하는 걸 사랑한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면 지금은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 영화 찍는 게 제일 재밌고 즐겁고 행복하다.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그 마음은 최근 들어 더 커진 건가.
=점점 커지더니 어느 날은 너무 벅차더라. 내가 영화를 한다는 게. 너무 벅차서 눈물이 고였다. 이 일을 하는 게 감사해서. 아직도 매번 새롭다. 매번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고.
-그 스케줄을 다 소화할 체력은 되나. 이렇게나 말랐는데.
=별의별 걸 다 먹는다. 한약은 기본이다. 거기에 각종 비타민과 영양제도 챙겨 먹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