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떡몽둥이 들고 엔진칸으로 전진!
2015-02-19
글 : 주성철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떡국열차> 촬영현장 공개

<설국열차>(2013)의 틸다 스윈튼과 실로 놀라운 싱크로율을 뽐내는 배우 이영진을 보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패러디한 <떡국열차>가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다. <떡국열차>는 지난 2013년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봉만대 감독이 출연했을 당시 MC 김구라가 제안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설국열차>의 ‘커티스’ (크리스 에반스)가 아닌 ‘커져쓰’로 출연하는 주인공 김구라 외에 윤형빈, 박휘순 등이 참여한다. 인류의 마지막 열차인 ‘떡국열차’에서, 먹는 ‘떡’과 진정한 의미의 ‘떡’을 찾아 마지막 엔진칸으로 향하는 꼬리칸 사람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진다. 경기도 의왕시 철도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비둘기호에서 촬영을 시작한 <떡국열차> 현장을 찾았다.

“떡을 치자 떡/ 맛이 좋은 떡/ 콩떡 쑥떡 찰떡 개떡/ 떡을 쳐보자/ 자나 깨나 떡/ 개나 소나 떡…. (후략)” 현실이 된 농담이랄까. 지난 1월30일과 31일 주말, 경기도 의왕시 철도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비둘기호 안에서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내내 <떡국열차> 송(시나리오에는 <개떡군가>라고 쓰여 있다)이 울려 퍼졌다. <레미제라블>(2012)에서 거대한 함선을 끄는 교도소 수감자 노예들이 <Look Down>을 부르며 노를 젓던 장면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이미 <레밀리터리블>이라는 패러디 뮤직비디오를 낳기도 했던 것처럼, <설국열차> 아니 <떡국열차>에 탑승한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들 또한 그 <개떡군가>를 부르면서 각양각색의 일을하며 살아간다. 바로 “한국에는 왜 유쾌한 패러디 무비의 역사가 없을까” 하는 봉만대 감독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김구라, 반란의 중심 ‘커져쓰’ 되다

봉만대의 <떡국열차>는 2013년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 스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MC 김구라가 봉만대 감독에게 “같은 봉씨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패러디해서 에로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떠냐”고 제안했고 김구라는 “떡장수 역할로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떡장수 역할은 아니지만 무려 주인공인, 그러니까 <설국열차>에서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한 ‘커티스’의 패러디인 ‘커져쓰’로 출연하게 됐다. 실제로 그는 떡국열차 안에 숨겨진 음모의 실체에 접근하면서 ‘텐트가 쳐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외에도 커져쓰의 옛 연인 ‘언년이’로 타픽의 주현이 출연하고, 꼬리칸의 정신적 지주이자 점성술사로 개그맨 윤형빈이 출연한다.

칸마다 변화가 더해지는 구성과 ‘블록버스터급 티저’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꽤 규모 있는 현장에서, 그 같은 패러디가 난무하는 가운데 가장 놀라운 캐스팅은 바로 배우 이영진이다. <설국열차>의 메이슨(틸다 스윈튼)을 패러디한 인물 ‘매일선’으로 출연해 확성기를 든 그 모습은 원작 캐릭터와 지나치게 닮았다. “우리 딸이 이제 에로영화에 출연하는 것이냐며, 제 필모그래피에 <떡국열차>라는 작품을 남기는 것에 대해 부모님의 걱정이 크셨지만(웃음), 봉만대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너무 재밌어서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물론 <떡국열차>에 베드신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설국열차>를 봉만대 감독이 재해석해 한국적 19금 정서와 진하게 버무린 코믹 드라마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잘못 보도된 것처럼 장편은 아니고 총 10부작으로 기획된(한회당 5~10분 분량) 패러디 드라마다. 여기서는 또 tvN에서 만든 <미생> 패러디 드라마 <미생물>을 떠올려도 될 것이다.

“개떡 때문에 우리가 전부 안 섰단 말이야?”

<떡국열차>에도 <설국열차>처럼 엔진칸부터 꼬리칸까지 이어지는 계급사회가 존재한다. 어느 날, 매일 배식받는 개떡으로 인해 성욕이 통제되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주인공 커져쓰(김구라)는 꼬리칸 사람들과 함께 떡국열차의 엔진칸을 점령하기로 결정한다. 그러고는 꼬리칸 사람 모두가 개떡을 몰래 먹지 않던 일주일이 지난다. 드디어 꼬리칸 전체가 발기한 어느 날 아침, 꼬리칸 사람들은 커져쓰와 그의 동생이자 오른팔인 해준대(박휘순)를 앞장 세워 떡몽둥이를 들고 비장하게 전진 준비를 마친다. 하지만 한칸 한칸 앞으로 갈수록 녹록지 않은 상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커져쓰는 떡국열차의 절대자인 (<설국열차>의 ‘윌포드’의 패러디인) 알포도(이무영)와 대면하게 된다.

그처럼 커티스, 아니 커져쓰는 <떡국열차>를 이끌어가는 중심이다. 그는 일주일치 개떡으로 자신의 팔뚝만한 떡몽둥이를 만든다. 그리고 사진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바지 위로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므흣한 ‘텐트’를 치게 된다. 이에 꼬리칸의 또 다른 동료 조루남(임승대)은 “그럼 여태 개떡 때문에 우리가 전부 안 섰단 말이야? 이런 개떡 같은 경우를 봤나”라며 분개하고, 하고파(이소희)는 “그 떡몽둥이로 뭘 어쩌자고? 그걸로 총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라며 낙심하지만, 커져쓰는 분연히 외친다. “총알은 없습니다, 여러분! 지난 혁명 때 모두 소진된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아마도 <설국열차>를 흥미롭게 봤던 관객이라면 그 모든 설정들에 배꼽을 잡을 것이다. 여기서 “뭐, 내가 정통도 아닌데”라고 멋쩍게 말하기는 하지만 연기에 임하는 김구라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반복적인 리허설과 끊임없는 수정, 그리고 모니터 앞에서 사소한 지점 하나까지 봉만대 감독과 토론하는 모습은 여느 영화 현장과 다를 바 없다.

“여러분들은 지금처럼 개떡같이 살면 되는 거야”

“이건 떡국열차를 움직이시는 위대한 알포도님의 선물. 개떡 배식!” <설국열차>에서 틸다 스윈튼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하고 등장했던 메이슨 총리의 경우처럼, 그를 패러디한 매일선(이영진)이 모피 코트에 굵은 테 안경을 쓰고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여태껏 ‘패러디물’이라며 깔깔대기만 하던 순간, 이영진이 보여주는 놀라운 싱크로율은 색다른 정서를 불어넣는 것. 게다가 메이슨 못지않게 황당하고도 기괴한 대사들을 속사포처럼 뱉어내기 시작한다. 왠지 개떡을 빼돌리는 것 같은 커져쓰를 수상하게 노려보며 “앞칸 사람들처럼 다양한 떡을 맛보게 될 거란 환상은 머리에서 싹 지워! 싹! 싹! 여러분들은 지금처럼 개떡같이 살면 되는 거야, 바이바이~”라며 엄청난 메소드 연기를 펼쳐 보이는 그를 두고, ‘언년이’를 연기한 타픽의 주현은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를 너무 좋아해서 이영진 선배의 오랜 팬이었는데 저런 모습이 너무 놀랍다”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컷 하기 전까지는 계속 떡을 외쳐주세요~.” 카메라가 꼬리칸의 구성원들의 훑고 지나갈 때, 이 모든 상황을 지휘하고 있는 봉만대 감독은 “농담으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현실이 될 줄 몰랐다”며 “요즘 하도 많은 방송을 해서 나를 방송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역시 촬영현장에서 감독의자에 앉아 디렉팅하고 모니터 들여다보는 지금이 너무 좋다. 예전부터 현장 생각이 간절했다”고 말한다. 제작사인 비퍼니스튜디오스는 세계적 에이전시인 미국의 CAA와 셀러브리티 필름 사이트인 ‘퍼니 올 다이’(Funny Or Die)가 공동설립한 합작 법인으로 프레인글로벌의 여준영 대표를 비롯해 한국쪽에서도 4명이 참여했다. 공동설립자 중 한명인 김호성 대표는 “앞으로도 할리우드 파트너들과 손잡고 해외 유명 스타와 아시아의 셀러브리티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유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1월30∼31일 양일간 촬영한 <떡국열차>는 포털 사이트 비퍼니닷컴(www.befunny.com)을 통해 설연휴 시작 전날인 2월17일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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