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프랭크 시내트라부터 비욘세, 위켄드까지
2015-03-02
글 : 김봉현 (음악비평가)
음악으로 먼저 주목받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O.S.T

일단 전체적인 느낌은 들어보기 전에 무작정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몽환적이고 어두운 질감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간혹 리듬감 있는 트랙이 섞여 있을지언정 경쾌하고 밝은 음악은 보이지 않는다. 소설로 유추할 수 있는 영화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질 법한 선곡이다. 또 <Ana and Christian>처럼 제목에서 이미 두 주인공의 이름을 담고 있는 트랙의 경우, 영화의 특정 장면에서 핵심 무드로 쓰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기도 하다.

음반 전체를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아무래도 위켄드다. 위켄드는 캐나다 출신의 1990년생 알앤비(R&B) 보컬리스트다. 2011년경부터 무료로 공개한 몇몇 믹스테이프가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위켄드와 관련해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그가 알앤비의 서브 장르이자 최근 몇년 사이 가장 두드러진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피비알앤비’(PBR&B)의 대표주자라는 사실이다.

피비알앤비란 쉽게 말해 정통 알앤비보다 한층 더 몽환적이고 전자음이 가미된 알앤비의 한 경향인데, 결론적으로 위켄드와 이 영화의 만남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충 엮는 게 아니다. 수많은 피비알앤비 뮤지션 중에서도 위켄드가 단연코 이 영화와 가장 잘 어울린다. 위켄드 특유의 사운드 스타일과 영화 분위기가 맞아떨어짐은 물론, 위켄드가 그동안 선보여온 음울하고 퇴폐적이며 때로는 도착적인 가사가 영화 주제와 완벽하게 부합하기 때문이다. 비록 <Earned It>은 이런 기대(?)보다는 조금 얌전한 감도 있지만 뮤직비디오를 본다면 또 생각이 달라지리라 확신한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이름은 역시 비욘세다. 거두절미하고, <Crazy in Love>가 이렇게 리믹스되어 재탄생할 줄 누가 예상했을까? <Crazy in Love>는 모두가 아는 비욘세 최고의 히트곡으로서, 흥행 성적 말고도 음악적인 의미를 논할 수 있는 곡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기승전결이라는 용어가 무색하게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터뜨리는’ 이 곡의 폭발력은 당시로서는 그 구성의 맥락에서 어떤 ‘상징성’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앞 문장이 무색하게 <Crazy in Love(2014 Remix)>는 원곡을 완전히 해체한 후 다시 만들어버렸다. 흡사 위켄드의 정체성처럼 피비알앤비 스타일로 거듭난 것이다. 사운드가 완전히 바뀜에 따라 가사 역시 새로운 맥락에서 또 다른 의미를 담게 되었고, 더 나아가 영화 장면들과 결합하며 더 극적인 효과가 가능하게 되었다. 완전한 리믹스, 혹은 그냥 별개의 새로운 노래. 어느 쪽으로 불러도 좋다. 이 음반의 베스트 트랙으로 꼽고 싶다. 이 밖에도 음반에는 롤링스톤스나 프랭크 시내트라 같은 옛 이름도 보이고, 에미넴과의 작업으로 유명해진 스카일라 그레이의 음악도 담겨 있다. 영화와 함께 감상하는 것이 정석이라지만 음반만 따로 즐겨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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