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화인들이 활발히 활동 중인 스웨덴 영화계에서도 특별히 돋보이는 여성 제작자 집단이 있다. 여성 영화인에 의한, 여성 영화인을 위한, 여성 영화인의 영화제작을 목표로 하는 제작사 ‘도리스 필름’(이하 ‘도리스’)이 그 주인공이다. ‘영화 업계 종사자의 상당수가 남성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등장한 여성 영화인들이다. 예테보리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도리스의 사무실을 찾았다. 1999년 문을 연 이후로 도리스는 줄곧 여성 영화인의 제작 여건 개선과 권리 향상을 위해 달려왔다. 애초에는 영상을 통한 여성주의 운동을 하는 느슨한 형태의 네트워크 조직이었으나 2000년대 초반, 영화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6명의 여성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도리스가 스웨덴 영화계에 결정적으로 눈도장을 찍은 건 2003년 ‘도리스 매니페스토’를 만들면서다. 도리스의 구성원이자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 부문 출품작 <플로킹>(2015)의 프로듀서인 안니카 헬스트롬은 “그나마 여성 영화인들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는 단편과 다큐멘터리쪽이었다. 장편영화 부문에서 여성 감독의 작품은 전체의 약 20%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실험을 시작했다. ‘원고는 여성 작가가 쓴다,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제작 관련 주요 결정권자로 여성이 참여한다, 영화음악은 여성이 만든다’는 매니페스토를 만든 것이다. 조건에 맞는 단편영화를 매년 3편씩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니페스토를 만든 직후, 도리스가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진행한 시나리오 공모전에 411편의 시나리오가 도착했고, 총 7편의 영화가 제작됐고 스웨덴 방송에 방영됐다.
도리스 내에는 재미난 말이 하나 돌고 있다. 도리스의 멤버이자 연극 연출가인 리사 린덴은 “얼마 전 한 동료가 ‘스웨덴에서는 여성 감독이 남성 감독만큼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스웨덴의 여성 감독은 남성 감독만큼 실패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더라. 스웨덴에서는 남성 감독만큼 여성 감독도 영화제작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자 여성 감독의 작품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도리스가 오직 여성만을 위한 여성운동을 지향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보다는 영화 현장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성비 불균형을 개선해나가자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헬스트롬은 “여성 영화인의 극영화 제작 편수를 전체의 40%대까지 끌어올리는 게 잠정적인 목표다. 동시에 스웨덴의 젊은 관객이 좋아할 만한 재기발랄한 ‘도리스’ 영화를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