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979년 <매드맥스> 1981년 <매드맥스2: 로드 워리어> 1983년 <환상특급> 극장판 1985년 <매드맥스3: 썬더돔> 1987년 <이스트윅의 악녀> 1992년 <로렌조 오일> 1998년 <꼬마돼지 베이브2> 2006년 <해피피트> 2011년 <해피피트2>
조지 밀러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재미있다. 문명이 파괴된 암울하고 기괴한 미래세계를 그린 <매드맥스> 시리즈로 일약 주목받았지만 이후 그의 작품들을 보면 밝고 화사한 드라마가 주류를 이룬다. <매드맥스> 이후의 행보를 살펴보면 호주 출신의 신예감독이 이름을 알린 후 할리우드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고군분투한 것이 느껴진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팬심을 듬뿍 담아 찬사를 보낸다 해도 그를 명감독, 작가감독으로 보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조지 밀러의 들쭉날쭉한 작품 속에서조차 일관된 맥락을 감지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드맥스> 시리즈를 제외하곤 그의 영화는 대부분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한 휴머니즘 드라마다. 조지 밀러의 또 다른 일면, 가족주의적인 휴머니즘영화 계보의 정점에 <로렌조 오일>(1992)이 있다.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하며 감독 활동의 여유를 제공한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진한 휴머니즘과 부모의 사랑으로 눈물을 자아낸다. 생각해보라. 삭막하고 타락한 세계에서 하드고어한 액션을 펼친 감독이 <로렌조 오일>, <꼬마돼지 베이브2>(1998)와 <해피피트>(2006)를 연출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아니 반대로 <해피피트>를 만든 감독이 <매드맥스>로 출발했다는 사실에 놀라야 할까. 그럴 필요 없다. 두갈래의 극단적인 행보는 사실 긴밀히 이어져 있다.
조지 밀러는 속편의 메가폰을 이어받는 것도 개의치 않을 만큼 스튜디오 친화적인 감독이었고 전형적인 서사와 대사의 힘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데도 익숙하다. 여기서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은 양극단이라 해도 좋을 만큼 먼 장르적 거리를 자유롭게 오간 그의 분열적인 태도야말로 어쩌면 액션의 마스터피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의 완성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분노의 도로>를 제대로 파악하고 싶다면 오리지널 <매드맥스> 시리즈보다 <로렌조 오일>과 <해피피트>와의 접점을 먼저 찾는 게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단도직입적으로 조지 밀러의 착한 세계는 착하지 않다. <매드맥스>의 황폐한 세계 역시 절망적이지 않다. 조지 밀러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발버둥친다.
가령 <해피피트>의 핵심을 담은 결정적 순간은 펭귄 멈블이 동물원에 갇혀 자아를 잃어가는 장면이다.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 영화에서 초점을 잃어가는 멈블의 눈동자만큼 무섭고 인상적인 장면은 또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로렌조 오일>은 의외로 잔혹하고 서늘한 현실을 가감없이 내보이고, <꼬마돼지 베이브2> 역시 삶의 고단함을 냉정하게 드러내는 장면들이 드물지 않다. 말하자면 조지 밀러는 항상, 심지어 전체 관람가의 애니메이션에서조차 정의로운 세상을 그리지 않는다. 그가 주목해온 것은 어쩌면 미쳐버린 세계에서 미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인물들의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이번 작품 <분노의 도로>가 있다. 물론 결론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었다. 그는 스튜디오가 원하는 바를 꺾고 자신의 세계를 강요하는 감독이 아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신의 개성과 색깔을 얼마든지 녹여낼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남길 때도 있었다. 전편을 이어받은 <꼬마돼지 베이브2>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로저 에버트로부터 별 네개를 받았다. 본인 스스로도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라고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다. 리스트는 조만간 <분노의 도로>로 바뀔 것이 분명하지만. <분노의 도로>를 보고 그의 공력에 반했다면 <꼬마돼지 베이브2>와 <해피피트>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