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표절인지 정확한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걸면 걸린다. 한국영화 표절 논란은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있을 뿐 결론이 없다. 2000년 이후 한국영화에서 표절이 거론된 대표적인 사례들을 몇 가지 유형별로 정리해봤다. 여기 언급되는 영화들에 표절작이라는 낙인을 찍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의 정리이며 이후 표절 여부를 가리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아직 피해자와 가해자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데 묶어 비난과 오해를 남기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영화 표절 논란이 남긴 피폐한 흔적을 전한다.
액션 시퀀스
<최종병기 활>(2011)과 <아포칼립토>(2006)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는 부족민들을 학살한 적들에 맞서 가족을 지키려는 마야의 젊은 전사 ‘재규어의 발’을 주인공으로 한다. 재규어의 발과 적들의 정글 추격 신은 이 영화의 백미.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이 <아포칼립토>와 비교되는 것도 이 추격 신 때문이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최종병기 활>에도 주인공 남이(박해일)와 청나라 정예부대의 추격전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아포칼립토>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최종병기 활>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호랑이의 등장은 <아포칼립토>의 재규어의 등장과 대응되고, 절벽에 다다른 주인공이 건너편으로 뛰어 추격을 피하는 장면은 적들에 쫓기다 폭포에서 뛰어내리는 <아포칼립토>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절벽과 폭포가 추격영화에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장면의 앞뒤 연결을 감안했을 때 모방의 흔적이 엿보인다.
플롯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데이브>(1993)
<데이브>와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모두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의 서사를 차용한다. 미국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현대극 <데이브>와 조선 광해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장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하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는 단순히 서사의 유사성 때문만이 아니다. 플롯과 주요 캐릭터의 활용이 닮아서다. ‘대통령이 불의의 사고로 쓰러진다-측근들이 대역을 세운다-대역을 수행하던 인물이 정치에 눈뜬다-그가 대통령의 권한으로 옳은 일을 행한다’는 <데이브>의 플롯은 <광해, 왕이 된 남자>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대통령/왕의 대역이 우스꽝스럽게 대통령/왕의 모습을 흉내내며 등장하는 장면이나, 각료 이름을 외우는 장면 역시 두 영화에 비슷하게 담겨 있고, 영부인과 중전, 경호실장과 호위무사 캐릭터 사이에도 유사점이 발견된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예전 인터뷰(<씨네21> 877호)에서 “1인2역, 중전과의 사랑, 정치적 각성” 등은 “오랜 전형성을 가진 이야기”라고 얘기한 바 있다.
캐릭터
<스파이>(2013)와 <트루 라이즈>(1994)
평범한 회사원으로 위장한 스파이 남편과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아내의 이야기. 제임스 카메론의 <트루 라이즈>와 이승준 감독의 <스파이>의 한줄 시놉시스는 이처럼 동일하게 정리할 수 있다. 언제나 바쁜 남편에게 내심 서운한 아내, 바람나기 직전의 아내를 도청하는 남편, 첩보 작전에 우연히 휘말리는 아내, 그런 아내가 위험에 빠지자 몸을 던져 구하는 남편의 활약상도 두 영화가 공유하는 이야기다. 영화의 후반부 액션 신에 헬기가 주요 수단으로 등장한다거나, 아내가 실수로 떨어뜨린 기관단총이 적들을 명중하는 장면은 <트루 라이즈>의 창의적인 액션을 <스파이>가 참고한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캐릭터와 스토리의 주요 모티브는 비슷할 수 있다. 그 자체로 두 영화의 표절을 얘기할 순 없다. 스파이영화의 컨벤션과 전체 캐릭터의 구성을 살펴보면 두 영화는 사뭇 다른 코미디와 드라마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의 영화가 세상에 먼저 나와 있는 상태에서 주요 모티브를 창의적으로 변주하지 못한 것은 <스파이>의 안일함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디어 및 모티브
<국제시장>(2014)과 <포레스트 검프>(1994)
나비 한 마리가 국제시장을 훑고 지나간 뒤 집 마당 평상에 앉아 있는 주인공을 비추는 <국제시장>의 오프닝은 어딘지 낯익다. 하얀 깃털이 바람에 날리다 벤치에 앉아 있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에게 떨어지는 <포레스트 검프>의 오프닝과 닮았기 때문이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로 영화 마케팅을 진행했을 만큼, <국제시장>에는 <포레스트 검프>의 개성과 특징을 이식하려 한 느낌이 짙게 배어 있다. 주인공을 근현대사의 사건들 속에 던져놓으면서 정주영, 남진, 앙드레 김 등 당시의 유명 인물들을 영화에 등장시킨 점이 특히 그렇다. 최근엔,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 기획 창작 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차붐: 차범근과 파독 광부 이야기>라는 영화기획서를 쓴 당사자가 자신의 기획서와 <국제시장>이 상당히 유사하다며 표절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설정
<미나문방구>(2013)와 웹툰 <미스문방구매니저>
개봉 전부터 캐러멜(본명 오현동) 작가의 <미스문방구매니저>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샀다. 두 작품은 아버지가 쓰러지자 딸이 아버지가 운영하던 문방구의 임시 주인이 된다는 작품 초반 설정이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이후 전개 과정과 장르가 판이하게 다르다. 영화 <미나문방구>는 아이들과의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동심을 되찾는 휴먼 드라마인 데 반해 웹툰 <미스문방구매니저>는 항아리 도둑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가벼운 추리물에 가깝다. 주인공 캐릭터 역시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둘 다 추리닝을 즐겨 입는다는 설정 때문에 묘하게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다. <미나문방구>의 각본을 맡은 배세영 작가는 2008년 9월 동국대 시나리오 창작강의 중 차예원 학생이 작성한 ‘오덕문방구’라는 작품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차씨에게 원안비를 지불하고 아이템을 구입했고 원안자로 크레딧에도 올라가 있다. 제작사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부 누리꾼들로부터 꼼꼼히 알아보고 영화화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