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이런 미친! 끝내주는군
2015-09-16
글 : 장영엽 (편집장)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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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블록버스터

“감독이 약 빨고 만든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개봉한 뒤 인터넷상에서 가장 자주 목도할 수 있었던 말이다. 과연 이 작품은 보는 이들의 상상을 압도하는 독특한 설정과 기괴한 개성의 인물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관객이 열광하는 건 뭇 21세기 블록버스터영화들의 성공 법칙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인 것 같다. 이성과 과학의 세계를 기반으로 더 많은 관객의 공감대를 꾀하는 일련의 작품들과 달리 이 영화는 윤리와 규범이 부재하는 광기와 난장의 세계를 과감하게 펼쳐 보인다.

“빌어먹을, 이런 영화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분노의 도로>)의 미국 시사회가 끝나고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조지 밀러 감독이 받은 첫 번째 질문이라고 한다. 질문자는 다름 아닌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었다. <분노의 도로>는 과연 후배 연출자를 좌절케 할 만한 올해의 걸작 블록버스터다. 2시간 동안 밀도 높게 펼쳐지는 통쾌한 액션 시퀀스와 정교한 프로덕션 디자인, 단면적이지 않은 인물들은 30년 만에 부활한 <매드맥스> 프랜차이즈에 대한 우려를 확신과 놀라움으로 바꿔놓았으니까. 하지만 서사적, 기술적, 연출적 성취를 차치하고라도 이 영화의 전세계적인 흥행의 이유에 대해서는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분노의 도로>는 여러모로 21세기 블록버스터의 전형적인 문법에서 벗어나 있는 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위험천만한 카스턴트 액션과 남성의 동등한 동반자로 기능하는 여성 캐릭터 등 이 영화에 대한 논의를 풍성하게 만드는 수많은 맥락들이 존재하지만, <분노의 도로>를 본 뒤 가장 강렬하게 뇌리에 남은 건 이 영화가 선보이는 ‘광인’들이었다. “끝내주는 날이야!”라고 외치며 이빨에 은색 크롬 스프레이를 뿌리는 눅스(니콜라스 홀트)와 마리오네트처럼 와이어에 매달려 화염방사기를 뿜어내는 전자기타를 연주하는 두프 워리어(기타리스트 iOTA) , “내가 정의의 심판자”라고 외치며 기관총을 갈겨대는 무기 농부(리처드 카터) 말이다. 어떠한 맥락이나 설명 없이 등장해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 이들은 논리나 이성의 잣대로 가늠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분노의 도로>가 개봉한 뒤 인터넷상에서 눅스가 크롬 스프레이를 뿌리는 이유나 두프 워리어의 전사(前事)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던 건 그들의 행동을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였을 거다.

난장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러한 ‘광기’가 바로 <매드맥스> 시리즈의 DNA다.

<매드맥스> 1편을 떠올려보자. 맥스가 폭주족의 발목을 기름 새는 차에 묶어두고 “톱으로 수갑을 자르면 10분, 발목을 자르면 5분”이라 말하며 홀연히 떠나는 순간부터, 이 세계는 이성의 기능을 상실했다. 포로를 자동차 앞에 매달아 총알받이로 쓰는(이는 <분노의 도로>에서 또다시 재현된다) <매드맥스2: 로드 워리어>의 휴멍거스 일당은 어떤가. 문명 사회가 만든 수많은 규범과 윤리는 <매드맥스> 시리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세계에서 갈 곳을 잃는다. 이성의 세계에서 배척되던 ‘광기’는 더이상 금기의 대상이 아니다. <분노의 도로>에서 워보이들은 생존을 위해 인간 포로를 ‘피주머니’로 활용하고 임모탄은 오염되지 않은 자원을 얻기 위해 어머니들의 젖가슴에 유축기를 부착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살인 면허’는 물론이고 ‘광기의 면허’ 또한 허락되는 난장의 세계. <매드맥스>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 세계관은 다양한 유형의 광인들을 등장시키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세상이 멸망하면서 우리의 삶도 같이 무너져내렸다. 누가 더 미친 건지 알 수가 없어졌다. 나인지, 이 세상인지”라는 맥스의 대사는 보다 분명하게 <분노의 도로>가 그려낼 세계의 본질을 겨냥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매드맥스> 프랜차이즈의 특성이 슈퍼히어로영화로 대변되는 21세기 블록버스터영화의 개성과 정확히 반대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슈퍼히어로의 초능력마저 과학과 이성의 힘을 빌려 개연성을 얻으려 하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의 정체가 군수산업체의 억만장자 CEO이며 배트맨의 파워 슈트가 부모의 막대한 유산과 현대 공학의 힘으로부터 탄생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심지어 ‘신’인 토르조차 과학자 여자친구를 두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철저한 인과관계에 의해 구축되는 슈퍼히어로영화의 서사 구조에 익숙한 관객에게, <분노의 도로> 속 인물들의 예측 불가능한 퍼포먼스는 당황스럽고도 신선한 발견으로 다가왔을 거다.

경쟁작들에 비하면 현저하게 대사의 양이 적다는 것도 <분노의 도로>의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속편과 리부트된 작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시대에 대사는 가장 합리적인 도구다. 2시간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영상으로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전편에 대한 정보를,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몇 마디 대사는 효율적으로 제공해준다. 더불어 대사는 블록버스터의 정서를 구축하는 효과적인 조미료가 되기도 한다. 빠른 편집과 현란한 특수효과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말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노의 도로>에서 이러한 대사의 기능은 무용하다. 주인공 맥스를 제외하고는 딱히 전편과 연결되는 서사와 등장인물이 없을뿐더러 <매드맥스> 시리즈의 매 작품은 사실상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괴된 세계에서 연료와 자원을 쟁취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맥스와 인류의 고군분투가 이 프랜차이즈의 유일한 관심사다. 때문에 본심을 에둘러 표현하는 은유적인 말이나 유머를 위한 대사는 <분노의 도로>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 차량을 움직이려면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혹은 쓸 수 있는 자원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와 같은, 생존을 위한 간결한 커뮤니케이션 정도면 족할 뿐이다.

대사의 자리엔 운동 이미지가

대사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건 광활한 사막을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들의 운동 이미지다. 그것들이 충돌하고, 부서지고, 튕겨내고, 폭발하는 순간의 원초적인 쾌감을 <분노의 도로>는 CG와 빠른 편집이라는 ‘꼼수’ 없이 리얼하게 잡아낸다. 하지만 이러한 액션 시퀀스들이 정말로 놀라운 까닭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데도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는 점이다. 그건 <분노의 도로>의 제작진이 150여대, 19종의 차량에 저마다의 사연과 개성을 부여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폭주하는 차량들 가운데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엣지 암 카메라의 도움 덕분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감독 조지 밀러의 동물적인 감각 덕분인 것 같다. 액션 시퀀스를 어떤 각도에서 어떤 방식으로 담아낼 것인지, 또 어떻게 이어붙일 것인지 판단하는 건 결국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조지 밀러 자신도 “현장에서는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본능과 직감을 따랐다.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니었다. (웃음) <매드맥스>를 만들기 위해 미칠 필요는 없었지만, 분명 그게 도움이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질문은 조금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빌어먹을, 이런 ‘미친’ 영화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죠?” 음울한 세계를 배회하는 매력적인 광인들과 원초적인 쾌감으로 무장한 <분노의 도로>는 소위 ‘잘나가는’ 블록버스터의 성공 규칙을 따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조지 밀러의 멋진 대답이다. 오직 조지 밀러이기에 가능했던 대답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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