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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파크 블록버스터
블록버스터 시리즈는 종종 한 인물의 전기로 존재한다(<다이하드>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등). 어떤 블록버스터 시리즈는 한 세계의 역사로서 존재한다(<스타워즈> 시리즈,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 등).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끊임없이 재방문을 해야 이야기가 진행되는 일종의 테마파크로 존재한다. 그리고 <쥬라기 월드>는 그 유원지성이 시리즈 중 가장 극대화된 작품이다.
수많은 영화들이 유원지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많은 관객은 현실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겪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그리고 대부분 장르물은 특성화된 테마파크와 같은 공간을 무대로 삼는다. 무협영화의 중원, 로마 사극의 검투장, 서부극의 미국 평야, <스타워즈>에 나오는 미지의 행성,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과 같은 곳은 모두 우리가 익숙함과 흥분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공원이다.
<쥬라기 공원>이라는 테마파크
모든 장르는 놀이터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서부극 이야기를 끌어오는 건 너무 진부하니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해보자. 실제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부터 1945년 동안 벌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거대한 전쟁이다. 전쟁을 직접 겪는 사람들에게 6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모든 허구의 이야기들이 과연 그 6년이라는 시간 속에 겹침 없이 담길 수 있을까? 사람들이 훌륭한 드라마와 박진감 넘치는 스펙터클, 무엇보다 나치들의 휴고 보스 유니폼을 취하기 위해 이 6년 사이의 특정 시기로 계속 돌아가는 동안 제2차 세계대전은 몇 십년 동안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 재료들을 무한 제공해주는 유원지 비슷한 곳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공간은 어느 순간부터 서부극의 세계처럼 장르화되었고, 장르화된다는 것은 유원지화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의 테마파크다움은 단순한 장르의 은유를 넘어선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유원지성은 원작자인 마이클 크라이튼이 쥬라기 공원이라는 테마파크를 만들면서 결정되었다. 아니, 이 시리즈의 운명은 그가 <쥬라기 공원>의 프로토타이프라고 할 수 있는 서부극 로봇 테마파크 영화 <웨스트 월드>를 만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에 의해 완벽하게 관리되는 것 같았던 테마파크가 사소한 실수들이 누적되어 붕괴되는 과정은 통제에 대한 환상을 경고하는 것이었지만 그 자체가 놀이기구이기도 하다. 이 붕괴 과정을 통해 등장인물들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테마파크에서라면 결코 누리지 못할 극한의 오락을 제공받는다. 스크린 너머에서 구경만 하는 관객과는 달리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게 단점이랄까.
테마파크라는 공간은 스토리에도 영향을 끼친다. <쥬라기 공원> 2, 3편은 정확히 말해 테마파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이들을 포함한 모든 영화들은 테마파크 관람의 구성을 그대로 따랐다. 자발적으로 섬에 들어간 주인공이 반드시 봐야 할 공룡들과 반드시 가야 할 지점을 통과하기 전에는 영화가 끝나지 않는다. 스토리는 언제나 공원의 동선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4편인 <쥬라기 월드>는 이들 중 테마파크 설정이 가장 극대화되어 있다. 전편들과는 달리 공원은 이미 만들어져서 정식 손님들을 받고 있다. 심지어 영화는 전작들에서 일어난 사건들까지 놀이기구로 삼는다. 1편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의 배경은 모두 고스란히 보존되어 주인공들이 반드시 방문할 수밖에 없는 비공식 관광 루트에 놓인다. 과거의 역사가 그 자체로 공간화되는 것이다. 영화는 공룡 테마파크이기도 하지만 <쥬라기 공원>의 테마파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영화가 시리즈 중 가장 산문화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공룡과 처음 마주치는 순간의 경이로움 따위는 없다. 공룡에 대한 지식 같은 건 마이크에서 나오는 해설을 듣거나 웹사이트를 확인하면 그만이다. 1편의 반 이상을 지탱하고 있던 과학과 경이 모두가 사라진 것이다. 공룡들이 코끼리만큼 흔해빠진 세계에서 무엇을 바랄까.
그렇다면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유원지성에 충실하는 것이다. 최대한의 자극을 관객에게 제공해주는 것. <쥬라기 월드>의 목표는 모두 여기에 잡혀 있다. 공룡들도 가장 다양하게 많이 나오고, 사람들도 가장 많이 죽고, 공룡 대 공룡의 싸움도 가장 과격하다. 종종 영화는 오리지널이라면 넘지 않았을 선을 넘기도 한다. 공룡들, 특히 랩터들은 거의 의인화되고 중간 이후에는 유전자 공학으로 만들어진 인공 공룡이 등장한다. 심지어 공룡과 인간을 합성하는 아이디어까지 굴렸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안 간 건 정말 다행이다. 하여간 이제 멋있는 공룡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고생물학을 빌리지 않고 멋대로 아무거나 디자인해도 되는 때가 된 것이다.
자극만이 남은 세계
오리지널 <쥬라기 공원>이 나오고 몇 십년이 지났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공룡 자체보다 자극에 집착하는 <쥬라기 월드>의 태도가 아쉽다. 심지어 <쥬라기 공원2>에서도 은근슬쩍 언급되었던 공룡 깃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은 기괴할 지경이다. 이 영화의 공룡들은 존재감이 만만치 않지만 모두 몇 십년 묵은 테마파크의 공룡 모형처럼 어느 정도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핑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 공룡들은 모두 유전공학의 결과물로 과거에 살았던 진짜 공룡들과 정확히 같은 종류는 아니다. 하지만 공룡을 만들어온 유전공학자들이 공룡 DNA의 빈틈을 채울 때 최근의 연구를 반영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이상하다. 한마디로 익숙한 공룡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과학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들을 공룡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스토리 역시 이런 테마파크화의 영향을 받는다. <쥬라기 공원>도 테마파크 영화의 경로를 따르는 영화였다. 하지만 준비된 공룡들을 다 보여주고 그 안에서 액션을 전개하기 위해 굳이 진부함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쥬라기 공원>은 영화적 기량으로 관객을 통제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만만치 않은 장인의 대담함이 보인다. <쥬라기 공원>의 티라노사우루스 습격 장면을 보라. 재난으로 끝날 것이라 예상할 수는 있지만 정작 보고 있으면 액션의 방향을 예측하긴 지극히 힘들다. 하지만 <쥬라기 월드>에서 모든 이야기의 구성품들은 클리셰화되어 있고 이들은 맥락이나 극중 인물의 캐릭터와는 상관없이 그냥 일어난다. 늘어난 건 오직 액션과 살육의 강도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무리하게 삽입한 장치들의 인공성뿐이다. 그중 가장 노골적인 것은 랩터를 무기로 쓰겠다는 인젠사의 악당들이다.
여러 불평에도 불구하고 <쥬라기 월드>는 재미있는 영화이다. 그러니까 딱 이렇게 집중해서 만든 유원지 영화만큼 재미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멈추어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유전공학으로 태어난 공룡이라는 소재가 꼭 이런 식의 테마파크식 스토리 전개를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건 ‘파크’만을 생각하고 ‘테마’를 건너뛰는 안이한 사고방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관광객들의 호응과 반응이 중요하다고 해도 공룡 영화는 결국 공룡에 대한, 그러니까 과학에 대한 영화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유전자 조작 공룡이란 예외적인 알리바이에만 의존한다면 이 소재에서 우리가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