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벼랑에서 떨어졌다 함께 지옥불로 뛰어들자
2015-09-30
글 : 이화정
글 : 이예지
사진 : 최성열
이준익 감독, 오승현 타이거픽쳐스 대표, 조철현 작가, 이송원 작가에게 듣는 <사도>의 독특한 제작방식
이송원 작가, 이준익 감독, 조철현 작가, 오승현 타이거픽쳐스 대표(왼쪽부터).

<사도>는 사도가 뒤주에 갇힌 8일과 과거 플래시백을 정교하게 교차시키며 정치 이전 부자관계로 엮인 영조와 사도의 관계를 조명한다. 이미 익숙한 소재지만 이 과정을 통해 다른 시각과 관점을 제공해준다. 치열한 영화 뒤에는 더 치열한 고민과 노력들이 있었다. 이준익 감독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제작자 및 작가 3인의 땀과 눈물, 그리고 술은 <사도>를 탄생하게 해준 일등 공신이다. 사료들을 뒤지고 잠도 없이 난상토론을 벌이며 <사도>를 견인해낸 주인공은 이준익 감독과 15년의 세월을 함께해온 타이거픽쳐스의 오승현 대표, 같은 제작사의 전 대표였던 조철현 작가, 그리고 <사도>로 ‘이준익 사단’에 새로이 합류한 이송원 작가다. <황산벌>(2003)로 기존 사극의 전형을 깨뜨리고 <왕의 남자>(2005)의 천만 관객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과 <평양성>으로 흥행의 고배를 맛보며 제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 이준익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 이들이 차례차례 함께하고 있었다. 개봉을 하루 앞둔 9월16일 팔판동의 한 카페, “벼랑 끝이 아니라 이미 바닥에 떨어져 신음하는” 절박한 상태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사도>의 제작기를 들어봤다. 곧 이준익 감독 사단의 독특한 제작방식의 해부다.

조철현_<사도>는 나, 오승현 대표, 이송원 작가 세명이 각본을 썼다. 소개하자면, 빈곤의 공동체다. 자격요건은 신용불량 정도? (웃음) 또 하나 중요한 건 ‘알아서 견디는 기질’. 맷집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준익_조철현 타이거픽쳐스 전 대표이자 작가, 오승현 타이거픽쳐스 대표이자 작가는 나와 오랜 시절 기획부터 제작까지 함께해온 사람이고, 이송원 작가는 <사도>를 하기 3년 전부터 영입된 멤버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갈 데 없는 인간을 받아주자는 주의다. (웃음)

이송원_원래 자동차 영업사원이었다. 15년 전, 영화판에 처음 왔을 때 미로비젼에서 해외 판매를 했었다. 그러던 중 이준익 감독을 만나 영화 기획을 하기로 마음먹었지.

조철현_원래는 고 정승혜 대표와 3인방 체제로 일해왔지 않나. 고 정승혜 대표가 떠나고 한동안 일할 때 그가 야야, 호통 치는 소리가 들리더라. 2년 정도 지나니 그 소리가 안 들렸다. 이제 개봉하니 어떻게 됐는지 보고도 할 겸 (추모공원에) 다녀와야지. 이준익 감독이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둘로 하면 시행착오가 생기고, 넷으로 하면 산으로 갈 수 있다는 거다. 그간 삼각 구도 속에서 크로스체크하며 일을 해오다가 한축이 비어 발생하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감독님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또 다른 경지로 나아가야 하니 우리끼리 새로운 트라이앵글을 만들었다.

<사도>

이준익_그렇게 모인 작가 3명이 <사도>에 대한 모든 사료를 몇달에 걸쳐 다 뒤졌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한중록>과 각종 문헌, 논문자료 등을 섭렵했다.

이송원_<사도>는 조철현 작가가 언젠가는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해온 소재다. 각자 마음속에 벌어진 어떤 것, 대중이 원하는 어떤 것이 일치하는 시점에 그 소재들을 택하게 된다.

조철현_우리는 역사영화를 ‘비동시성의 동시성’에 기반하여 한다. 이렇게 현재에 많은 소재가 넘치는데 왜 과거에서 가져오냐 물으면 첫째로는 원작료가 없다. (웃음) 둘째로는 역사 속 과거에 머물지 말고 현재와의 관계성을 포착해서 같이 한번 곱씹어보자는 거다.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산될 수 있지 않나.

이준익_현재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시대의 분위기를 이야기로 구현하려는 노력을 일분 일초도 게을리하지 않으려 했다. 어떤 작품을 할 땐 그 작품을 해야 할 시대적 이유가 있다.

조철현_어떻게 보면 <사도>는 타자의 죽음을 내면화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는 한동안 타자의 죽음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안 지고 은닉하고 날조하며 시민들에게 고통을 줬다. 그런 지점에도 닿을 수 있는 영화다.

이송원_<사도>를 하려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최상위 기득권을 제외하곤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위협에 시달리는 시대다. 믿을 건 가족밖에 없는 절박감이 도처에 난무한다. 그런데 가족밖에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막상 집에 가면 그들과도 데면데면한 게 현실이다. 옆에 있는 사람과 소통할 계기를 주는 작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철현_<사도>를 하려 한 시점엔 경제적 절박함도 있었다. 이걸로 해보고 안 되면 각자 딴거 하자는 각오였다.

이준익 감독

이송원_조철현 작가가 이번 작업은 “극한을 가보자”고 했다. 정조가 죽기 전에 “너희들은 앞으로 체면이나 입장을 차리지 말고 진심을 다해 극한의 이야기만을 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게 우리 작업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이 신이 과연 극한에 다다랐나. 실마리를 찾을 때까지 밤을 새워가며 이틀이든 삼일이든 이야기를 해서 진도를 나가곤 했다.

오승현_감독님이 “너는 절벽 끝에 서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떨어져 신음하고 있다. 당장 내일 죽을 사람이 뭘 못 하냐”고 하더라. 이걸 못해내면 차라리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했다.

이송원_2013년 겨울, 조철현 작가와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나니 돈이 없더라. 교통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건 맥주 페트병 두개랑 새우깡 하나였다. 편의점 앞 셔터 내린 계단에 나이 오십 먹은 사람 둘이 앉아서 “이번에도 이거 못해내면 숟가락 놓자”고 했다. 삽질의 시작이었지. (웃음)

이준익_결국 그 삽질이 <사도>를 만들었다. (웃음) <사도>가 내 전작들과 다르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내 관점이 변한 분기점은 <소원>(2013)이다. <평양성>의 관점은 전체적 시점으로 사건의 개연성을 통해 종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을 짜맞추는 플롯 중심의 시나리오였다. <소원> 이후부터 이야기의 개인화가 이루어졌다. 나를 비롯한 작가들, 일명 386세대의 연배는 집단적인 공동체 의식 속에서 자랐다. 단체 생활에 익숙하지. 반면 지금 20대는 개인주의가 보편적이다. 젊은 관객을 포커싱하는 과정에서 관점이 이동했다. 이야기를 보는 시점이 개인의 주체성부터 시작해서 관계로 가는 거다. 이전에는 인물들을 움직이는 논리와 개연성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개인이 가진 감정, 심리로 이동했다. 겉으로 보이는 지표면 안에 마그마가 있듯이, 생각이나 관념 이전에 인간의 심리와 감정이 있다. <사도> 역시 끊임없이 심리를 좇아가는 영화다.

조철현_사도라는 이름 안에 ‘생각할 사’자가 있다. 조선시대에서의 생각할 사자는 일상용어보다는 철학적이고 성리학적인 말이다. ‘슬퍼할 도’는 인간의 오욕칠정에서 비롯된 것이고. 시호 자체가 이 영화의 대사인 “의리는 의리고 애통은 애통이다”는 분열적 판단을 관통하는 것이다. 생각하며 슬퍼한다는 뜻의 시호는 이성과 감정을 분열시키는 동시에 화해시키는 거다. 딜레마적인 상황이 이름 안에 다 놓여 있다.

이준익_‘사도’는 영조의 무의식의 고백으로 읽힌다. 고증에 의하면 영조는 사도를 생각하며 슬퍼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사도라는 시호를 내린 건 하나의 신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조의 심리와 감정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다.

조철현 작가

이송원_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집요하게 좇아야 하기에 시나리오 작업도 더 심도 깊게 몰입해서 해야만 했다.

이준익_세 작가의 합이 중요했지. 작업 방식에 있어선 우선, 오승현 대표가 키보드 권력을 갖고 있다. 마음에 안 들면 타이핑을 안 해버린다. (웃음) 선장인 조철현 작가가 전체 배를 컨트롤하고, 조타수 이송원 작가가 자료를 검토하고 방향을 맞춘다. 크레딧 순서는 나이순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오승현_아니다 싶으면 타이핑을 안 한다. 그러다 누가 버럭하면 “야 오늘 덮어” 하면서 욕하고 싸우고. (웃음)

이송원_큰 모니터에 시나리오를 띄워놓고 의견을 내는 방식이다. 각색 작업까지 하고 나면 제작부 막내까지 모여서 계급장 떼고 의견을 낸다.

오승현_사실 그렇게 의견을 내지만 2할도 못 건진다.

이송원_이분들이 100개 던지면 난 1천개 던져버린다. 물량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거다.

이준익_이 과정에서 난도질당하기 때문에 심약하면 우리와 영화 못한다. (웃음)

조철현_자기 바닥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면 못하는 거지. 셋이 할 때와 감독님이 낄 때는 또 다르다. 셋이 할 땐 격의 없이 의견을 막 던진다. 던질 게 고갈되면 술이라도 먹고. 그중에 덜 먹은 사람이 기억해내서 실마리를 잡아 연결한다. 우리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홈런 레이스할 때, 감독이 홈런치려고 타석에 서면 앞에서 공을 던져주는 보조투수 역할이다. 그런 입장에서 변화구 던지고 잔재주 부릴 수 있겠나. 직구로 치기 좋게 던지지. 그중에서 맞는 걸 감독이 골라 치는 거다.

이준익_내가 설득이 안 되면 아무리 작가 셋이 주장하는 신이라도 과감하게 날린다.

오승현_간밤에 대단한 신이 나왔다고 셋이 눈물짓고 그랬는데 날아가면 가슴이 무너진다. (웃음)

이준익_결정권은 내게 있다고 해도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는 작가들의 몫이 크지. 나는 점만 찍는다. 감독이 8개 시퀀스에 점만 찍으면, 여기에 작가들이 등장인물 표를 만들고 관계도를 그려 그 점들을 통과하는 선을 긋는다. 배우는 그 선을 보고 심리와 감정의 벽을 세워 면을 만든다. 그 연기가 또 상대배우의 면과 만나 입체적인 큐빅이 생긴다. 그리고 후반작업을 통해 그 3차원의 세계가 살아나지. 그 입체적인 총체가 영화다.

이송원 작가

조철현_입체적 작품이 되면 여러 번 반복해서 관람하는 현상이 생긴다. 큐빅은 사방면으로 돌아가지 않나. 사도의 입장, 영조의 입장, 정조의 입장 혹은 영화에 나오는 주요한 세 여성의 입장에서 볼 수도 있다. 신하들이 봤을 때 또 다른 입장일 테고. 반복관람을 통해 감독이 만들려는 큐빅이 역으로 다시 완성되는 그런 지점까지 가면, 영화를 만드는 행위와 보는 행위가 일치감을 이루는 순간이겠지.

이준익_<왕의 남자>는 반복관람이 많은 대표적 작품이었는데, 그보다 <사도>가 더 복합적이다. 쓰고 만드는 입장에선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자기인 것처럼 만든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감정이입하고 누굴 대상화할 것인지부터 시작한다. 대체로 젊은 세대는 사도, 중년은 영조에 이입할 것이다. 그러나 반복관람을 하게 되면, 새로운 인물로 관점이 전환된다.

조철현_반복관람이라는 행위를 홍보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건 아니다. (웃음) 현재 세대는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이전과 다르다. 우리 때는 반복관람이 없었다. 굳이 한다면 평론 차원에서 뜯어봐야겠다는 분석적인 관점이었지. 지금 젊은 세대는 공부나 분석이 아닌, 그저 즐기려고 다시 보는 경우가 많지 않겠나.

이준익_관객이 몇 백년 전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눈물 흘리는 것은 유사감정의 체험이다. 극중 인물에 공감한다는 건 결국 자기 설움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주의가 가진 역기능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소외시킨다.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계속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모니터든, TV든, 스마트폰 액정이든 말이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했던 찌꺼기들을 누군가에게 투영하는 거다. 극의 페이소스, 카타르시스를 통해 정화하고 승화시키는 것이 예술이 가진 최종 목표지 않나.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꼭 필요한 이유지.

조철현_공동체에서 극의 역할은 무의식에서 발생하는 치유와 정화효과에 있다. 그리스 비극이라든지 한국 굿이라든지 드라마를 통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도> 역시 그런 역할을 할 것이고.

오승현_어제 감독님이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하면서, “이중에서 상처 없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하지 않았나. 개인차는 있지만 <사도>에서 건드리는 지점들이 관객과의 접점을 찾기 쉬웠던 것 같다.

조철현_나 역시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도 볼 때마다 눈물 나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생각이 많이 났다. 정조가 사도의 죽음을 놓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눈물이 나더라.

이송원_나는 아버지하고 극심한 불화를 겪었고 스물세살짜리 큰애하고도 불화가 있다. 그런데 작업 과정에서 내 속에서부터 변화가 생기더라. 막바지 대본을 쓸 때 아버지가 꿈에 자주 나타나더라. 너무나 평화롭게 대화하고 덕담도 해주셨다. 소원했던 아이와도 몇년 만에 연락을 하게 됐다. 부모든 자식이든 상처를 주고받게 마련 아닌가. 관객도 이 영화를 통해 내가 느꼈던 것을 느끼면 좋겠다.

오승현 타이거픽쳐스 대표

이준익_<사도> 이후로도 할 아이템이 많다. 조선시대뿐 아니라 신라시대도 있고, SF도 있다. (웃음) <동주>는 다 찍은 상태다. 그 다음 작품은 영화사 아침의 이정세 대표, 최석환 작가와 할 예정이다.

이송원_우리 사무실에 오면, 허름한 간판에 시네마 리퍼블릭이라고 써 있다. 타이거픽쳐스, 씨네월드, 영화사 아침 세 영화사가 함께하는 영화 공화국이다. (웃음)

조철현_예전 포크송 밴드처럼 ‘따로 또 같이’랄까.

이준익_놀이터다. 영화 동아리방 같은 곳이지.

이송원_이준익 감독과 조철현 작가가 꿈꾸는 건 송추계곡 같은 데 암자처럼 영화사를 짓는 거다. 불상이 있는 자리에 큰 모니터 놓고 작가들이 작업하는 작은 공동체를 꾸리는 거지. (웃음)

이준익_모인 김에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그동안 영화에 인생을 걸지 않았다는 거다. 영화를 같이하는 사람에게 인생을 걸었지. 젊은 영화인들에게 영화에 인생을 걸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영화는 배신한다. 같이 찍는 사람에게 인생을 거는 게 시네마 리퍼블릭이다. (웃음)

오승현_오랜 시간 함께하게 된 계기는 감독님이 “네가 지옥문을 열더라도 내가 뛰어들겠다”고 하신 말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연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들어주셨다. 나도 언제든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고.

이송원_좀 조폭 같은데. (웃음)

조철현_조선시대에 의리는 참 실존적인 것이었는데 말이다. 우리의 의리는 현대의 세속적 의리와 중간 정도 지점에 있는 걸로 하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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