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알차게 찍고, 알차게 먹고, 또 뭉치자!
2015-09-30
글 : 김현수
사진 : 오계옥
김정훈 감독, 정종훈 크리픽쳐스 대표, 기세훈 촬영감독, 김성관 조명감독에게 듣는 <탐정: 더 비기닝> 비하인드
기세훈 촬영감독, 김정훈 감독, 정종훈 크리픽쳐스 대표, 김성관 조명감독(왼쪽부터).

권총집과 아기 포대기를 동시에 둘러멘 남자들. <탐정: 더 비기닝>의 주인공 남자들은 가사노동에 지친 아내를 위해 그리고 친구의 우정과 자아실현 등을 위해 가사와 수사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우는 아기 달래랴, 도망치는 살인자 뒤쫓으랴, 잘하는 거 하나만 집중해도 어려울 텐데, <쩨쩨한 로맨스>(2010)로 데뷔한 김정훈 감독은 코미디와 스릴러를 접목시킨 독특한 분위기의 버디무비를 들고 돌아왔다. 물론 섣부른 선입견은 금물. 제작자인 정종훈 대표도 “로맨틱 코미디 쓰던 김 감독이 이렇게 잘 쓸지 몰랐다”며 입술이 닳도록 칭찬 중이다. 살인 누명을 쓴 친구를 위해 사건 수사에 뛰어든 탐정 강대만(권상우)과 베테랑 형사 노태수(성동일)가 서로의 이득을 위해 잠시 동맹을 맺는데 개성 강한 캐릭터의 부조화가 웃음을 유발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의젓한 가장이 되어 만난 배우 성동일과 권상우는 스타로서의 매력에 꼭 맞는 탐정과 형사 캐릭터를 함께 만났다. 길고 긴 시리즈도 충분할 만큼. 아니나 다를까, 제목도 <탐정: 더 비기닝>이다. 배우와 스탭 모두 또 한번 다시 모이길 희망할 정도로 즐거웠던 제작 현장 뒷이야기를 들어보자.

정종훈_초기 시나리오는 지금보다 더 캐릭터 중심의 영화였던 게 기억난다. 김정훈 감독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죠?”라고 물었더니 “가정을 찾는 이야기입니다”라고 하기에 좋은 아이디어여서 놀랐다. 무능하고 무책임해 보이는 남자들이 가정의 소중함을 지키고 가장이 되고 싶어 하는 이야기였다.

김정훈_보편적인 이야기로 접근했다. 주인공 대만은 아빠라는 위치의 책임감과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오랫동안 꿈꿨던 형사가 되지 못해 미련을 갖고 있던 그가 마침 살인사건에 뛰어들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난다. 그 때문에 아내와 갈등을 빚게 되고 결국 아이까지 들쳐업고 현장에 나오게 된다. 하지만 대만이 무능하고 무책임해서 가정을 외면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남성 관객은 공감할 것 같다. 아내에게 혼날까봐 거짓말을 하는 모습 등에서 우리의 삶과 닮은 캐릭터라는 걸 느낄 것 같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제구실 못하는 남자가 가정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탐정: 더 비기닝>

기세훈_그러니까 대만은 사실 감독님 본인 아닌가?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김정훈_나는 거짓말은 안 한다. (웃음)

정종훈_그 거짓말이라는 게 이를테면 7시에 촬영 끝나서 술 마시고 싶은데 아내가 무서워서 12시까지 촬영한다고 전화한 다음 술 마시는 정도지.

김정훈_결국 아내가 무섭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건 행복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그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책임감 있는 가장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캐릭터다. 그리고 영화 전체의 톤 앤드 매너에 대해서는 시나리오 쓸 때 코미디 장면과 스릴러 장면이라고 해서 일부러 밝게 혹은 어둡게 가지 않고 최대한 리얼하게 간극을 좁혀가는 방향으로 구상했다. 대만이 사건 현장에서 빠져나와 일상으로 돌아오면 캐릭터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기 때문에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이길 바랐다. 즉, 대만에게는 살인사건 현장이 일종의 모험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굳이 빛을 사용해서 구분지으려 하지는 않았지만.

김성관_조명감독으로서 내가 작업했던 영화들이 주로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선이 명확한 영화들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밝아야 했다. 밝은 톤으로 가되 감정 신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려고 했다. 그리고 카페에서 자주 회동했던 거 기억나나? 미술, 촬영, 연출, 조명감독 4명이 모여서 술이 아니라 커피 마시면서 회의했다. 그래서 대만이가 일하는 만화방 컨셉이 바뀌었잖나. 원래는 평범한 건물 입주 점포였는데 지금처럼 지하의 서점으로 바뀌게 된 거다.

김정훈_사실 만화방 위치를 지하로 설정한 이유를 돋보이게 해주는 컨셉의 장면이 있었다. 대만이 마치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으로 책방 창문을 올려다보며 전깃줄에 앉은 새를 보면서 “수사하고 싶다”라고 외치는 장면이었다. 그 옆 책방 벽에는 <쇼생크 탈출> 포스터가 그려진 시계가 놓여 있고. 이 친구가 얼마나 수사에 참여하고 싶은지, 친구의 누명도 벗겨주고 싶고 꿈을 실현해보고도 싶은 마음이 뒤섞인 장면이었다. 너무 만족스럽게 촬영했고 의미도 있었지만 영화 전체 톤과는 맞지 않아 편집됐다. 아무튼 아이를 업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대만의 느낌은 시나리오를 쓸 때는 중요했다.

정종훈_이번에 우리가 ‘369스케줄’로 진행했다. 3월에 크랭크인, 6월에 크랭크업, 9월에 개봉을 하는 상황인데 전체 촬영 58회차를 참 알차게 찍었다. 성동일 선배의 진두지휘 아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으니까.

김정훈 감독

김성관_나는 사람들이 술을 짝으로 먹을 것처럼 생겼다고 하는데(웃음) 전혀 못 마신다. 그런데도 매일 나갔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부르지?’ 의심하다가 나중엔 ‘오늘은 왜 안 부르지?’라고 기대하게 되더라. 그러면서 쌓인 감정 다 풀었다.

정종훈_우리의 팀워크를 다지는 방식이었다. 표준계약대로 영화를 찍다 보니까 약간의 공포감이 있었는데 몸을 혹사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더라. 일과 이후 술 마실 시간이 확보가 된다는 점이 좋았다. (웃음) 술은 안 마시더라도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오해도 풀고 팀워크도 다지는 시간이었지. 하루 빠지면 다음날 성동일 선배가 다가와 묻는다. “너 탈당했니?”

기세훈_술자리 빠지면 라이트 다 맞춰놓을 때마다 옆으로 비켜서 있겠다고 협박하고. (웃음)

김정훈_그 술자리는 누구도 술을 강요하거나 누구도 혼자 취하지 않아서 좋았다. 알차게 먹었다.

김성관 조명감독

정종훈_그런데 연기인지는 모르겠는데 꼭 밤 11시30분쯤 되면 성동일 선배가 매니저한테 내일 콘티 갖고 오라고 하면서 갑자기 콘티를 훑어보곤 했는데 지금도 궁금하다. 그럼 옆에서 상우씨도 따라서 콘티 살펴보고. 그걸 왜 꼭 그 시간에 봤을까.

기세훈_데일리 분량이 그 시간에 나오니까 그렇지 않았을까?

김정훈_나도 그 시간에 받아본 적 없는 데일리를?

기세훈_감독님보다 배우들에게 데일리가 먼저 들어간다. 감독님은 밴드 보세요. (웃음) 요즘 영화는 전부 다음날 자료를 밴드로 업데이트해서 쓰니까.

김정훈_나도 가끔 수기로 메모하고 싶을 때가 있다. (웃음) 파장 분위기를 알리려고 그랬을까?

기세훈_오히려 그 반대였을 수도 있다. 내일 분량이 얼마나 되나? 더 마셔도 되나? (웃음)

김정훈_옆에서 지켜본 결과, 58회차 동안 콘티 보면서 전날에 부담 갖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웃음) 음? 이건 2시쯤 끝나겠는데? 맨날 이러셨으니까. 어느 날은 방에 갔더니 잘 정리된 침대 위에 콘티가 올려져 있는 거다. 그만큼 열심히 콘티를 들여다봤다는 표시를 하고 나가셨구나 감동했는데 그날 마침 선배 촬영 분량이 없는 날이었다. (일동 폭소) 이게 장식인가? 칭찬해달라는 건가?

김성관_지방촬영 때마다 성동일 선배가 홍어회, 육회, 삼겹살 등등 어마어마하게 많은 음식을 사가지고 와서 스탭들을 전부 먹인 것도 생각난다. 또 한번은 영양주사를 공수해와서 숙소에서 맞기도 했잖나. 그리고 다음날 또 집합시켜서 술 먹이고. (웃음)

기세훈_상우씨가 대전 촬영 때 자신의 형네 집에 초대해서 식사도 대접해주고.

김성관_상우씨도 술을 잘 안 마시는 편인데 나중에는 먼저 술 마시자고 찾아오더라. 서로 즐거워했다. 배우들도 스탭들도 모두 즐겼다. 이렇게 재미있었던 현장은 나도 처음이다.

정종훈 크리픽쳐스 대표

김정훈_영화 끝나고 막내 스탭들 생일까지 다 챙기는 배우는 권상우가 유일할 거다.

정종훈_프리 단계 때도 우리끼리 미술회의를 하고 있으면 누가 쓱 옆에 와서 앉는다. 권상우인 거다. 정신없이 회의하다가 돌아보면 또 사라져 있다. 그러다 나와서 같이 짜장면 먹고 돌아가고. (웃음) 이렇게 소탈한 배우가 없다.

기세훈_어려운 촬영 중에 수중촬영이 있었다. 촬영과 조명 다 우리가 직접 했다. 우리가 물밑에서 세팅하고 있으니까 성동일 선배가 “내 식구들이 이렇게 일하고 있는데 나도 뭔가를 보여줘야 되겠다”고 말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사실 우린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염려가 더 큰 상황이었다.

김정훈_인상적이었다. 나한테 그러더라. 너무 친해져서 짜증도 못 내겠다고. (웃음) 그리고 실은 수중촬영하면서 작은 사고가 있었다. 원래 성동일 선배가 2m만 들어가도 되는 건데 사인이 안 맞았는지 5m나 밑으로 내린 거다. 선배는 2m 내려가는 줄 알고 그만큼의 숨만 참고 있는 상황이었고 2m를 지나자 물을 들이마시면서 호흡을 놓쳤다. 정말 아찔했다. 수중촬영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틀간의 촬영 기간이 정말 지옥 같았다. 이제는 분량상으로 어떤 수중촬영이면 몇회에 나눠 찍어야 하는 건지 알겠다.

정종훈_꼭 필요한 분량이었다. 예산 문제가 있었지만 어려운 결정이었다. 다들 엄청 고생했다. 나 빼고. 대만이도 그랬겠구나. 촬영 없는데 나와서는 점프대에서 다이빙하고. (웃음) 시나리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액션 마니아도 아니고 완전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 신인 거다. 보자마자 대박을 외쳤다. 이런 비슷한 장면은 못 봤다. 정말 괜찮았다. 조동오 감독의 <런닝맨>(2013)을 했지만 차원이 다른 액션이었다.

김정훈_무언가 캐릭터와 상황을 정리해줘야 하는데 그 과정을 어떻게 고민해도 길어지더라. 짧게 압축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한 결과다. 물속에서의 긴박한 리듬감은 바깥에서의 시간과는 다르니까 그런 안배가 있었다.

정종훈_엊그제 술 마시면서 농담 삼아 2편에서는 수중촬영 없이 비행기에 매달리는 걸로 가야겠다고 하니까 “누가?” 그러기에 상우가 할 거라고 했다. (웃음)

김성관_물에 빠지기 전 바깥 장면도 조명이 까다로웠다. 번개를 직접 만들었으니까. (웃음) 필름 시절에는 번개 라이트가 따로 있는데 요즘은 디지털화되면서 번개 라이트를 치면 선이 생긴다. 이걸 두고 감독님과 많이 싸우기도 했다. 결국엔 안 되니까 아날로그 방식으로 간 거다. 1980~90년대에 쓰던 용접기를 가지고 와서 번개를 만들다니. 효과가 정말 좋았다. 옛날부터 영화를 했던 게 이렇게도 도움이 되는구나 싶더라.

정종훈_첫 장편이 로맨틱 코미디인데 액션으로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전문가들도 생각 못하는 걸 효과적으로 찾아줬다.

김정훈_익숙한 걸 표현하려면 스케일로 넘어서야 하는 부담감이 있는데 그럴 수 없는 영화이니까 이런 장면들은 공간과 시간, 비용을 고민한 결과들이다.

기세훈 촬영감독

기세훈_촬영이 어려웠던 장면 중에 빵집 신이 있었는데 기술 스탭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어디로 튈지 몰라 정말 긴장했던 장면이었다. 시사회 때는 정말 빵빵 터지더라.

김성관_기본적인 동선 틀만 있을 뿐이고 나머지 애드리브는 그 자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빵을 집어던질 줄 아무도 몰랐는데.

김정훈_아까 두분이 말씀하셨던 두 배우를 한 화면에 잡아야 하는 데서 오는 촬영, 조명의 어려움이 그런 거다. 배우를 가두면 가둘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으니 우리로서는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게 목표였던 거다.

정종훈_대사 애드리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대부분 몸으로 하는 액션이었다. 폴리스 라인 장면도 애드리브였고.

김정훈_두 배우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장면 중에 차 안에서 잠복해야 하는데 대만이 아기가 울어 기저귀 사러 간다고 하는 장면에서 성동일 선배가 “네 애가 운다. 봐라, 너 쳐다보고 있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을 나중에 유심히 봐달라. 그 장면 자체가 시나리오에 없었다. 그러면서 아기를 들고 “우는 거 아니야”라고 하자 대사에 맞춰 애가 우는데 정말 좋았다. 두 사람의 애드리브는 자기가 돋보이려고 하지 않고 상대방의 리액션을 적극적으로 눈과 귀를 열고 보는 모습에서 나온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실제로도 아기를 키워본 아빠이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장면이기도 할 거다.

정종훈_이 영화가 투자받기 전에 투자자들이 의아해했던 것은 코믹한 캐릭터와 치밀한 추리극의 공존이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울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애초 캐릭터가 중심인 영화였지만 요새는 관객도 미드 많이 보니까 추리극에 대한 눈높이도 만족시켜주자는 의도의 기획이 잘 맞아떨어지면 좋겠다.

김정훈_처음부터 확고했던 생각은 캐릭터가 살면 뭐든 된다는 것이었다. 캐릭터가 중심을 잃지 않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비약 없이 관객이 따라올 수 있다면 후반부 사건이 무거워지건 가벼워지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캐릭터의 진정성이 우선이었다. 한 가지 더 욕심을 부린 게 있다면 사건을 부득이하게 대사로 설명하더라도 사건이 끝나면 탐정의 입도 같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것은 내게 도전이었다.

정종훈_아마 이 영화는 가족들이 보면 감정이입을 심하게 할 거다. 김정훈 감독과 나는 데뷔작을 찍기 전부터 같이 해왔으니까. 그 무렵을 생각하면, 생계도 책임 못 지는 두 가장이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목표를 쥐고 있었던 거다. 대만이처럼.

기세훈_개봉하고 나서 형수님들과 손태영씨 등등 스탭들의 아내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내본 적 있다.

정종훈_성동일 선배가 그 이야기를 듣더니, 그건 안 된다며. 그럼 너희들과 동맹을 끊겠다고. (웃음)

(대담 마무리 인사 도중 타 매체 인터뷰를 끝낸 권상우가 어느새 빈자리에 앉아 경청 중.)

정종훈_상우씨도 마지막 인사.

권상우_이번 제작진이 다시 한번 모였으면 좋겠다. 그럼 더 재미있고 즐겁게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2탄에는 XX만 죽이는 영화로 찍자고.

김정훈_(깜짝 놀라) 이건 기사로 나가면 안 된다.

권상우_아, 농담을 못하겠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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