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책이 말해주는 역사 독법
2016-01-19
글 : 장영엽 (편집장)
글 : 이주현
글 : 송경원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부터 권윤덕의 그림책 <꽃할머니>까지

권윤덕 <꽃할머니>

심달연 할머니는 나물 캐러 갔다가 13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대만, 만주 등지를 떠돌며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성폭력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몇 십년간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채 살았다. 이후 꽃누르미를 하며 원예 치료를 받았고 개인전시회를 열었다. ‘꽃할머니’라는 애칭이 생겼다. 권윤덕 작가는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림책 <꽃할머니>에 담았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그림책은 <꽃할머니>가 처음이다. 아이들이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작가의 마음이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한지에 먹물로 스케치한 다음 붓으로 색을 입힌 그림은 세밀하고 정갈하다. 은유와 상징이 풍부하지만 그것이 지시하는 바는 명확하다. 일본군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위안소 장면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난 꽃이 좋아. 사람들이 꽃보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서로 좋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아름다운 말을 남긴 심달연 할머니는 2010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증오가 아닌 사랑이, 기만이 아닌 진심이 필요한 때다.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역사 서술의 방법론을 강조한 (1980년대의 불온서적, 현대인의 필독서적)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E. H. 카는 이런 문장을 남겼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사는 역사학자에 의해 기록된다. 역사학자는 과거의 사실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엄중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국가가 역사가가 되길 자청해 획일화된 역사관을 주입하려 하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그것은 과연 합리적이고 정의로운가. 유시민은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썼다.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의 성격은 그 국가가 어떤 국가인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독재체제의 국가 폭력은 지배집단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 주민에 ‘대해서’ 행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의 국가폭력은 주민을 ‘위해서’ , 사회 자체를 방어하기 ‘위해서’ 행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지금 우리는 어떤 국가에서 살고 있을까.

이덕일 <칼날 위의 역사>, 심용환 <역사 전쟁>

역사학자 이덕일의 <칼날 위의 역사>는 21세기 대한민국과 조선의 역사를 연결시킨다. ‘노비와 비정규직’ , ‘삼망제도와 밀실인사’ , ‘승정원과 비서실’ , ‘조광조의 사약과 몸 사리는 야당’처럼, 구태가 반복되고 있는 현실에 일침을 가하며 우리가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얘기한다. “답은 언제나 역사에 있다”고 말하는 이덕일은 면천법을 만든 유성룡, 대동법을 되살려낸 김육 같은 인물들을 현실에서 만나길 고대한다. 한편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한 권력자들은 종종 역사 왜곡을 시도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한창 불거졌을 때, SNS에 국정화 관련 카톡 유언비어 반박문을 올린 역사 강사 심용환은 <역사 전쟁>을 통해 ‘권력은 왜 역사를 장악하려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해 국가 주도의 역사 서술이 위험한 이유를 얘기하고,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면 종북 좌파로 몰아붙이는 뉴라이트 역사학계의 비논리를 지적한다. 역사를 반추하는 일은 곧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는 일이며, 역사 해석이 사실을 바꿔버리는 코미디가 자행돼선 안 된다는 것을 얘기하는 책들이다.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조선은 세계 역사를 뒤져봐도 유례없는 기록문화를 남긴 왕조였다. 유교 사상에 입각해 군주의 권력 남용을 끊임없이 경계한 조선은 모든 정책결정과정은 물론 왕의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기록하여 후세의 평가를 두려워하도록 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의 기록을 모은 <조선왕조실록>은 1893권 888책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사관의 철두철미함은 혀를 내두를 만한데, 일례로 사냥을 좋아하던 태종이 실수로 말에서 떨어진 후 “이 일은 사관이 모르게 하라”고 명령한 것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하루에 100쪽씩 읽어도 4년3개월이 걸린다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를 모두 읽기 어렵다면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을 권한다. 20권의 만화로 구성된 이 책은 실록을 정치사 위주로 누구나 읽기 쉽게 풀어놓으면서도 중요한 핵심은 놓치지 않는다. 그마저 어렵다면 웹툰 작가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도 있다. 역사 속 인물들이 카톡을 주고 받는다는 상상력을 발휘한 이 만화는 역사적 사건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해 젊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무엇보다 둘 다 재미있다.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1>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 이라면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이하 <이이제이>)에 대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이제이>는 한국 근현대사의 숨은 사건과 인물, 이야기를 소개하는 방송이다. “임신부와 청소년의 청취를 금지한다”는 안내 문구를 야심차게 내건 만큼 발언의 수위도 세다. 중요한 건 온갖 욕설과 드립, 수다가 난무하는 이 방송이 단지 선정성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금만 지루해져도 금세 흥미를 잃고 마는 21세기 청자들이 조금 더 친근하게 한국 근현대사를 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탄생한 이 팟캐스트가 ‘굽본좌’로 불리는 만화가 굽시니스트의 만화로 재탄생했다. 이름하여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1>이다. 1권에서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하는 건 한국 정치사 속을 배회했던 깡패의 역사와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승만의 다양한 면모, 1987년 직선제 이후 첫 대선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대선을 좌우한 역사의 큰 흐름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텍스트보다는 이미지, 논문식 글쓰기보다 SNS의 짧고 강렬한 단문에 더 길들여져 있는 요즘 독자들에 최적화된 역사 만화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