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음악이 저항에 대해 말하는 것들
2016-01-19
글 : 이대화 (음악평론가)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이데아>부터 딕시 칙스의 < Not Ready To Make Nice >까지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이데아>

현 정권의 교육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이 음악을 고른 것이 아니다. <교실이데아>에 담긴 날선 독기와 사이다 발언 때문에 골랐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속엔 이렇게 잘못된 것을 향한 ‘독기어린’ 순간들이 있었다. 이 곡엔 그때까지 대중이 접해본 가장 어두운 사운드가 담겨 있다. 헤비메탈 팬이 아니라면 이런 고릴라 전차 때려부수는 소리를 언제 들어봤겠나. 천년쯤 묵힌 분노를 쏟아내듯 엄청난 광기로 어둠을 쏟아낸다. 가사는 또 어떤가. 정말 사이다 아닌가. “전국 900만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우리 교육의 현실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꼬집은 노래가 어디 있겠나. 요즘 언론들이 하도 청와대 눈치를 보니까 이젠 누가 조금만 비판적인 글을 써도 전부 ‘사이다’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답답할 때마다 진중권, 표창원 같은 ‘직언’하는 사람들의 SNS에 들어간다. 그래야 시원하니까. 정말이지 말재주 있는 사람들의 시원한 독설이 간절하다. 선거에서도 할 말 제대로 하는 정치인을 뽑을 생각이다. 말 잘하는 대통령, 말 잘 통하는 대통령 좀 보고 싶다.

언니네 이발관 <혼자 추는 춤>

“하루에도 몇번씩 난 꿈을 꾸지. 여기 아닌 어딘가에 있는 꿈을. 왜 이따위니 세상이 그지? 내가 살아가는 이곳엔 슬픈 일이 너무 많지. 의미 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아.” 세상이 하 수상하니 뮤지션들도 하나둘 비판적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혼자 추는 춤>도 그중 하나다. 제목에 ‘춤’이 들어가고 리듬도 댄서블해서 그냥 ‘춤’에 대한 노래 아닐까 생각했는데 가사를 잘 들어보니 행복하게 파티에서 즐기는 춤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현실 속에서 외롭게 추는 춤이다. 그 현실이 어디를 가리키겠는가. 바로 지금의 한국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고 한다. 녹음을 마친 이석원이 광화문광장을 지나다 마음을 고쳐 가사를 수정했다고 한다. 광화문에서 그가 느꼈던 지금의 한국이 이 곡에 담겨 있다.

김현정 <그녀와의 이별>

“이제 우리 정말 끝난 거야. 니가 다시 확인시켜줬지.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마지막 자존심까지 무너졌어. 하지만 나의 마지막 기대마저도 모두 무너진 거야.”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 노래가 이토록 시의적절하게 들린다니, 내 혼이 비정상이기 때문일까. 요즘 포털 사이트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2년이 얼른 지났으면 좋겠다’는 말이 정말 많다. 박근혜 대통령과 얼른 이별하고 싶다는 얘기다. 지난해도 힘들었는데 올해도 힘들 거라고 한다. 중국도 어렵고, 중동도 어렵고, 미국도 어렵고, 그 사이에 있는 우리도 바짝 긴장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국내 경제는 가계 부채가 심각해 외부 요인을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경기가 먹구름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정치라도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 상식 이하의 막말 말고 소통과 옳은 말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We Shall Overcome: The Seeger Sessions》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이 스트리트 밴드(E Street Band)와 함께 격정의 로큰롤을 선보일 때가 있고 제2의 밥 딜런처럼 포크 싱어송라이터가 될 때가 있다. 그를 ‘록’으로만 아는 사람들은 그의 ‘포크’적인 면모도 한번쯤 느껴봐야 한다. 《We Shall Overcome: The Seeger Sessions》는 미국 포크의 고전들을 엮은 리메이크 앨범이다. 특히 미국 포크의 거성이자 수많은 곡들을 발굴해 소개한 운동가 피트 시거에 대한 애정을 담은 앨범이다. 스프링스틴은 이 앨범을 내고 투어도 돌았다. 투어 이름은 ‘시거 세션 밴드 투어’였다.

스프링스틴은 왜 2006년에 갑자기 피트 시거와 포크를 부활시킨 것일까? 그가 직접 밝히진 않았지만 당시 미국 내의 우경화 분위기와 관계 있을 것이다. 당시엔 로커들이 부시 정권을 향한 비판의 음악을 많이 발표했다. 스프링스틴은 그답게 1960년대 카운터컬처의 등장 및 공민권 운동과 떼어놓을 수 없는 ‘포크’ 리바이벌을 떠올렸을 것이다. 나라가 오른쪽으로 간다면 그는 포크와 함께 왼쪽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딕시 칙스(Dixie Chicks) <Not Ready To Make Nice>

때로는 나라의 분위기가 착한 사람을 성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딕시 칙스의 2006년 <Not Ready To Make Nice>가 대표적인 예다. 딕시 칙스는 원래 정치 이슈엔 별다른 관심이 없는 컨트리 밴드였다. 그들은 미국의 남부적 가치를 사랑하는 밴드였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자 전에 없던 분노가 솟았다. “부시 대통령이 나와 같은 텍사스 출신인 것이 부끄럽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컨트리 음악 팬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선곡되지 않기 시작했고 심지어 살해 위협까지 당했다. “닥치고 노래나 불러. 아니면 인생이 끝나게 될 거야”라는 협박과 함께. <Not Ready To Make Nice>는 그에 대한 답가다.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뮤지션이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착해지지 않겠다’는 일침이다.

킹 크림슨(King Crimson)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은 1969년에 발표된 프로그레시브 록의 명작이다. 킹 크림슨의 가장 유명한 앨범이기도 하다. 한때는 이 앨범을 모르면 ‘음알못’(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추억이 됐지만. 이 앨범을 고른 이유는 음악적인 이유도, 가사 때문도 아니다. 앨범 재킷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이런 표정이 나오는 것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이 그림의 표정을 한번 따라해보길 바란다. 표정을 짓자마자 시키지 않아도 “헐”이란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머릿속엔 ‘충격과 공포’라는 말도 떠오를 것이다. 커버 디자인은 배리 가버(Barry Godber)가 맡았다. 그는 안타깝게도 앨범이 세상에 나온 직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로버트 프립은 이 디자인을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음반사에서 원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자 대신 관리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