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팽목항에서 안산에서 서울에서 귀기울이다, 기록하다
2016-04-13
글 : 윤혜지
다큐멘터리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 코멘터리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카메라는 4•16연대미디어위원회(전 세월호 참사국민대책회의 미디어팀)의 이름으로 진도 팽목항, 안산, 서울을 오가며 꾸준히 현장을 기록해왔다. 일곱 감독들이 만든 7편의 기록 영상들은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이란 주제로 묶였다. 참사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것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하는 이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는 지난 3월30일 제16회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첫 공개됐다. 일곱개의 시선과 목소리를 차례로 소개한다(공동체 상영 신청 문의는 4•16연대 02-2285-0416).

세금 도둑은 국가

<도둑> 연출•편집 김재영 / 촬영 문성준, 박종필, 최종호, 김재영 / 구성 류미례, 김재영

2015년 12월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1차 청문회’가 열렸다. 1차 청문회에선 사고가 벌어진 직후 정부와 해경이 초기 수습에 태만했던 점,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을 방문한 4월17일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구조와 수색을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점, 구조를 방해하려는 의도라고 판단되는 청와대와 해경의 몇 가지 행위들에 대해 질의가 오갔다. 김재영 감독은 청문회 내용을 카메라에 기록해 <도둑>을 만들었다. <도둑>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정부뿐만 아니라 이 사안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주류 언론에 대해서도 준엄한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도둑>은 시작하자마자 국가공무원법 제56조의 성실 의무를 언급한다.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국민들이 당연히 알아야 하는 권리인데 언론에서조차 보도가 없었다. 세월호 특조위를 두고 일각에선 ‘세금 도둑’이라 말한다. 누가 도둑인가.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모르쇠로 일관한 국가공무원이야말로 세금 도둑이 아닌가.” 김재영 감독은 <도둑>을 흑백 화면으로 구성하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킬 수 있을 만한 장면(가령 4•16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이자 희생자 유족인 정성욱씨가 진실규명을 호소하며 아들 동수군의 시신 사진을 들어올리는 장면)은 편집해 보여주지 않았다. “관객이 청문회장에서 오간 얘길 객관적으로 보았으면 했다. 3일간의 긴 질의를 짧은 러닝타임에 다 넣을 수가 없었기에 빠른 편집으로 청문회 풍경들을 압축했다.” 엔딩엔 1차 청문회의 쟁점 네 가지를 간략하게 정리한 자막이 삽입됐다.

슬픔을 잘 견디는 법

<교실> 연출 태준식 / 촬영 신임호 / 구성 신지민 / 음악 김인영

“사회적 비극을 어떻게 잘 넘어서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상처입은 이들이 제대로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들이 상처를 직시하고 견디고 치유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 대해 화가 많이 났다.” 태준식 감독의 <교실>은 4•16 교실의 존치가 유족들만의 일이 아닌,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교실을 방문한 발자취들까지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할 참사의 기억임을 분명히 한다. “수현 어머니가 전남도청을 처음 갔을 때 총자국이 선연하게 남아 있고, 깨진 유리창까지 그대로 보전된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셨다더라. 4•16 교실도 하나의 역사적 장소로서 남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유족들이라면 당연히 슬프겠지’라는 것보다도 주변의 어떤 풍경이나 상황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다.” 태준식 감독은 “고통을 풀어내는 방법을 조용히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조용함 속에서 우리 주변의 또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설득하고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 쉬워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실>에 등장하는 네명의 대상은 교실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자신들의 언어로 차근히 설명한다. 고 박수현군의 어머니 이영옥씨와 광화문 4•16 농성장 지킴이였던 곽서영씨, 단원고 졸업생이자 단원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최승원씨,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자 고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곽서영씨는 우연히 광화문 농성장을 방문해 지킴이로 활동하는 동안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연대하는 의미를 실감하게 된 경우”다. 네 사람은 ‘교실’에 얽힌 자신들의 의견과 경험, 생각들을 차분하게 풀어놓으며 같은 마음으로 이 시간을 견디고 미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지금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취로 그리다

<자국> 연출•촬영•편집 정일건 / 그림 빈하용 / 인터뷰 진행 정일건, 박명순, 문정현

보이는 것은 빈 공간뿐인데 상실과 허망이 무겁게 느껴진다. 존재의 흔적이 기억을 짓누르기 때문이리라. 정일건 감독의 <자국>은 희생자 학생이 살았던 일상적 풍경을 전시하며 유족의 목소리만으로 다큐멘터리를 구성한다. 희생자 학생의 바이오그래피로 기록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하며 공간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친구들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들이 살았던 동네, 집, 자주 갔던 공간들을 방문해 부모님들의 얘기를 듣는데 그때 친구들 모습이 눈에 많이 그려지더라.” 감독은 줄곧 희생자 학생을 ‘친구’라고 칭했다. “친구의 사진이나 유품, 동영상을 공개하는 게 누군가에겐 자못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더라. 얼마나 절박하면 그랬을까. 나는 대상을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 유족의 일화나 친구가 있었던 공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관객이 자신의 기억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미대 입시생이었던 고 빈하용군의 일러스트와 고 이경주군의 문자 메시지 이야기는 희미한 자취만이 느껴지던 다큐멘터리에 일종의 직접성을 불어넣기도 한다. “하용이의 그림과 경주의 문자 메시지로 친구들을 좀더 상상할 수 있었으면 했다.” 자취를 통해 아이들을 그리며 ‘친구’들의 공간을 헤매다 도착한 곳은 결국 교실이다. 영정과 꽃이 가득한 교실에 당도하는 순간 가슴은 삽시간에 먹먹해지고 만다.

연상, 연결, 연대

<블루-옐로우> 연출•촬영 대구 독립다큐멘터리 제작과정 2기 손경화, 강성환, 김대곤, 선물, 안미영, 이윤미 / 편집 손경화

유사한 참사의 기억을 품은 도시, 대구로부터 <블루-옐로우>는 시작된다. 손경화 감독은 “대구가 고향이다. 이십대 초반에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었는데 그 당시엔 경황이 없어 제대로 사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기억이 두려움으로 남아 있었다. 아마도 고통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런 게 아닐까.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참사를 기억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고, 일상에서 고통을 품고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표지판, 담벼락, 사물함 등 일상에서 쉬이 접한 파란색은 2014년 4월16일 이후로 더이상 보통의 파란색으로 보이지 않게 됐다. 아이의 파란색 크레파스가 짙푸른 바닷물로 변할 때 파란색은 강력한 두려움과 절망의 상징으로 변모한다. 아이슬란드 뮤지션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은 공포를 가중시킨다. 잠시 뒤 그 위에 노란 리본이 내려앉자 바닷물은 잠잠해지고 뛰던 가슴도 천천히 가라앉는다. “리본을 만드는 아주머니들은 평범한 가정주부다. 참사의 고통에 공감했고, 자신들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스스로 찾으셨다. 리본을 만드는 일이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연대의 마음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아시는 분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몇년씩 집회에 참여하거나 투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일상에서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으로도 충분하고, 그래야 한다. (대구 독립다큐멘터리 제작과정 2기 프로젝트였던) <블루-옐로우>는 일상과 그날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연결해보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국가적 살인의 연쇄

<살인> 연출 박정미(노동자뉴스제작단) / 대본 배인정 / 촬영 박정미, 유명희 / 편집 박정미, 장호경 / 촬영지원 박종필, 문성준

국민 모두가 안전한 사회는 정녕 요원한 것일까.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철도사고로 기록될 대구 지하철 참사, 한국전력공사의 다단계 하청구조로 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감전사고,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 사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그리고 세월호 참사까지. <살인>은 국가와 대형기업이 유도한 숱한 ‘살인’의 흔적을 따라가며 참사의 고리를 끊으려는 시민들의 연대를 카메라에 기록한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지하철과 선로의 이미지는 살인의 연속을 강조하고 있다. 박정미 감독은 노동자뉴스제작단 소속이다. “대법원과 대검찰청 앞에 선 여신은 한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그 저울이 제대로 기울지 않았다고, 기업이 유도한 재해의 죗값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다. 거대 권력이 지은 죄는 죄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 상황을 바꿔내기 위해 피해자들끼리의 연대가 필요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과 시민들은 꽃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줄지어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2015년 8월, 4•16연대와 21개 시민사회단체의 협력으로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연대가 출범했다. 무엇이 죄인가.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그것은 피해자의 시선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함께 행복하자는 선언

<선언> 연출•촬영 최종호 / 조연출 오다은 / 촬영도움 문성준 / 편집 최종호, 김재영 / 사운드 이주석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이제 누구에게나 끔찍하게 들릴 것이다. ‘을’로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그러하였듯 우리의 어린아이들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희생되었다. ‘우리는 인간으로 다시 살기 위해 저항과 연대를 멈출 수 없었다.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협력하여 싸울 때 쟁취하고 지킬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싸워온 이들은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을 통해 같은 방향을 보며 싸우고 있는 주변과 손잡고 더욱 강력히 연대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일관되게 팽배한 무관심이 누군가를 외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외침은 그 누군가를 더욱 고립시키는 것만 같았다.” 최종호 감독은 <선언>으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 장애등급제에 반대하는 장애인들의 투쟁과 세월호 참사를 연결한다. “사회경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기본적인 안전과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집중했다.” 권리가 저절로 주어지지 않음을 아프게 깨달은 이들은 자신들과 세상의 미래를 위하여 힘겹고 고통스러운 싸움을 시작했다. 하나의 목소리는 두개가 되고, 두개의 목소리는 네개가 된다. 사람이 보태져 목소리는 커진다. “말해야 한다. ‘말’은 투쟁하는 이들의 결의의 결집체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함께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은 완성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투쟁하는 그들을 보고 있다. 함께 행복하자는 선언은 결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가만히 있는 우리의 것이며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도 말해야 한다. 함께 행복하자고.

우리가 건져올려야 하는 것들

<인양> 연출 박종필 / 촬영 박종필, 송윤혁 / 편집 박종필, 김재영

끌어내야 한다. 세월호 선체도, 미수습자의 시신도, 사건의 진실도. 지금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인양’이다. 박종필 감독의 <인양>은 세월호 인양 작업을 지켜보기 위해 진도 동거차도에 임시 숙소를 지어 머물고 있는 유족들의 7박8일을 담았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우리는 말해왔다. 미안하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련의 참사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을 반성한다는 의미일 거다. 잊지 않겠다고 하는 건 이미 발생한 참사 이후 산적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나가려는 의지의 표출이다. 우리가 인양해야 할 것은 선체만이 아니다. 공통의 책임감도 포함해야 한다. 국가권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가권력을 유지시키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인양>은 선체 인양 작업을 감시하는 유족들을 함께 지켜봄으로써 결속과 연대를 보다 단단히 하려는 시도다. <인양>은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 중 <살인>과 <선언>의 사이에 놓여 책임의 가치, 시선의 필요를 더욱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박종필 감독은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의 총연출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