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기울어가는 시대의 선실에서
2016-04-13
글 : 송경동 (시인)
일러스트레이션 : 김남희 (일러스트레이션)
송경동 시인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 등을 펴냄.

오늘도 참담했다. 끊임없는 정부의 방해로 그 스스로가 난파선 형국인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간신히 2차 청문회를 연 날이다. 국회도 자리를 내주지 않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약속이라도 한 듯 지상파 3사는 침묵했다. 오늘 방송 메인은 중국인 관광객의 인천 치맥 파티였다.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도 선원들이나 청해진 관계자들 등 말단 책임자들뿐이다.

참사 초기 웬만한 원인은 밝혀졌다. 이익이 최우선인 선주 집단에 국가의 각종 안전 관리 업무를 외주화한 국가. 그 자본과 결탁한 관피아, 해피아들의 부패의 사슬.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노후 선박을 불법 개축하고, 평형수를 덜어낸 자리에 화물을 과적하고, 대부분 선원들을 하루살이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선박회사. 충분히 더 많은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었는데도 웬일인지 무능과 무책임으로 304명의 목숨을 눈앞에서 생중계하며 수장한 정부. 보도 통제와 왜곡 선전에 나선 기레기 언론들.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위해 600만명이 넘는 구체적인 사람들이 청원을 해도 끝내 수사권과 기소권을 박탈해 진정한 추모와 진실 규명을 난파시킨 국회. 모든 책임을 아래로 아래로만 전가하며 유체이탈 화법이나 구사하던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여왕마마.

그리고 규명할 수 없지만 계속되던 의문들. 국정원의 불법대선 개입 실체가 드러나던 결정적인 시점에 왜 세월호만 모든 선박들이 출항 금지된 인천항을 출발할 수 있었을까? 세월호의 구매 과정부터 사고 이후까지 왜 국정원은 그림자처럼 세월호와 붙어 있는 것일까? 이런 수많은 혐의를 벗기 위해서라도 이 국가는 더 투명하고 강력한 특별법을 제정했어야 하지 않는가. 다시는 이런 구조적 학살과 까닭 없는 죽음들과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없게 모든 잘못된 사회구조들을 바로잡는 대수술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어느 진실에도 접근할 수가 없다. 한 발짝도 2014년 4월16일에서 나아갈 수가 없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일부 정치 집단들과 특권층들, 관료들에 의해 일찍부터 사유화되어버린 국가가 국가 사무이고 기밀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에의 접근을 가로막는다. 입법부의 권한이라는 이름으로 국회가 막아선다, 사법부가 법질서라는 이름으로 모든 국민들의 주권 행사를 정지시킨다. 나아가 공포정치를 실행한다. 사유화된 공권력을 이용해 범국민추모문화제를 불법집회로 만들고, 416 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사회적 상주들을 구속시킨다. 수백명의 시민들을 채증하고 소환하며 애도와 추모의 발길에조차 철고랑을 채우려 한다. 특조위에서 정부 파견 관료들이 보란 듯이, 실력 행사하듯 철수하고 필수 예산마저 깎아버린다. 야당은 늘 과반 이상의 의원 수와 대권을 안 줘서라는 배부른 소리만 되풀이하고, 시민사회는 방법이 없지 않냐고 체념하고 만다.

그렇게 2년 동안 세월호가 침몰해 있다. 여전히 304명의 죽음이 버려져 있다. 2년이 지나도 인양조차 되지 않는다. 이 국가는, 저 대통령은, 무한히 자신들만은 안전한 자들은 어떤 슬픔들이 더 무뎌지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어떤 분노들이, 의문들이, 질문들이, 반성들이 다시 삭고 녹슬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국가란 무엇인가?’, ‘대통령이 책임져라’, ‘이윤보다 생명이다’, ‘한국 사회는 4•16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그 많았던 외침과 각성들이 좀더 튼튼한 우리 사회의 골격으로 자라나는 때를 그려본다. 그때까지 매번 우리가 인양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