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많은 고민을 했다.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잠시 같은 세상을 산 사람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힘을 보탤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떤 것도 진정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고민 끝에 미뤄둔 행동들이 사실은 모두의 의무였고, 나는 지난 2년간 무임승차를 해온 것이다.
음악인들은 애도와 위로를 담은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김창완 밴드의 앨범 《용서》다. 총 아홉곡 중, 표면적으로는 <노란리본>에서만 그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앨범 전체가 그날에서 비롯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중2> <괴로워> <용서> <무덤나비> <아리랑>…. 경쾌한 록에서 긴 내레이션과 연주곡, 살풀이를 연상시키는 국악과의 접목까지, 이 앨범은 그날이 있기 전부터,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를 먼 훗날까지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들려준다. 나는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그날의 아픔을 생생하게 떠올릴 것이다.
그날의 일은 내게도 복잡한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고, 이는 곧 영감으로 승화되었다. 희생된 학생들의 휴대폰 영상이 하나둘 공개되던 시기에, 한 학생의 마지막 기도가 담긴 영상을 늦은 밤 집 앞 주차장에서 보게 됐다. 영상이 끝난 뒤 안타까움에 자리를 뜰 수 없어 한참을 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때 마음속에서 ‘클레멘타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와 멜로디가 떠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이 영상 속의 학생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친구들을 먼저 걱정하고 희망을 잃지 않으며 의연하게 기도를 올리던 그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남고도 비겁한 우리 어른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 아름답고 위대한 모습 앞에서 나는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2년 전의 나는 타인의 비극을 창작의 소재로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윤리적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슬픔을 토대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그로써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얻고 어쩌면 경제적 이득까지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결국 그날의 영감은 창작으로 잇지 못하고 남겨두었다. 여전히 고민은 남아 있지만, 김창완밴드의 《용서》가 전해준 위로와 용기로 나는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그날의 일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며 3년, 4년, 10년이 지나더라도, 진정으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을 때까지 모두 함께 기억하고 싸우고 노래해야 한다는 것을.
고운 심성에 꿈도 많았던 클레멘타인은 무책임한 어른들의 잘못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실천했고 희망을 보여주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클레멘타인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언젠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노래 속에서 그들은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고, 남겨진 사람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