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6 <프리즌> 2016 <곡성> 2015 <검사외전> 2015 <히말라야> 2014 <강남 1970> 2014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4 <우는 남자> 2012 <광해, 왕이 된 남자> 2010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0 <심장이 뛴다> 2009 <핸드폰> 2008 <모던 보이> 2006 <사랑을 놓치다>
연극 2013 <난중일기에는 없다> 2012 <키사라기 미키짱> 외 다수
천벌을 받아 마땅한 가당찮은 말을 일컬어 ‘벼락 맞을 소리’라 한다. 그렇다면 <곡성>에서 덕기는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기에 진짜 벼락을 맞은 걸까. 마을 야산에서 고라니 따위를 잡아 건강원을 운영하는 중년의 사내 덕기. 그가 한 말이라면 이런 것이다. “내가 참말로 봤당께. 짐승맨치로 깨 벗고 기어댕기는 것을. 두 눈깔이 시뻘게 갖고.” 덕기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흉흉한 일들의 원흉이 자신이 실제로 본, 기괴한 외지인(구니무라 준) 때문이라는 유의 말을 한 것이다. 덕기를 연기한 배우 전배수도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외지인이 죽은 고라니를 파먹고 있는 걸 제대로 본 사람은 사실상 덕기뿐이다. 그런데도 덕기는 외지인 때문에 생긴다고 여겨지는 두드러기조차 나지 않았다.” 벼락 맞은 덕기를 병원에 데리고 온 종구(곽도원)는 그곳에서 (아마도 외지인 때문일 거라 추측되는) 사지가 뒤틀려 죽어가는 환자를 보게 된다. 외지인에 대한 종구의 의심에 확신을 심어주는 징검다리 중에는 덕기가 있었다는 얘기다.
전배수는 <곡성>의 오디션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공기가 흘렀다고 전했다. “벼락 맞는 신을 연기하려는데 갑자기 창밖에서 천둥, 번개가 치는 거다. 그런 데다 나홍진 감독님이 연출부 스탭들을 동원해 ‘누구는 촬영, 누구는 조명이라고 생각하고 가보자’고 하시더라. 오디션장이 아니라 이미 현장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배우가 감정을 다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듣던 대로 집요한 분이구나!’ 했다.” 그 집요함이 배우로서는 되레 고마웠다. “찍을 때는 고생스레 찍었는데 결과물을 보면 ‘무엇 때문에 나를 이토록 힘들게 했나’ 싶을 때면 배우는 힘들어진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님의 결과물을 보면 ‘이렇게 하려고 그때 그러셨구나’ 하고 바로 수긍이 간다. 얼마나 보람되나. 다음에 또 같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나.”
어렸을 때부터 전배수는 장래 희망란에 배우, 아니 TV에 나오는 탤런트를 적어넣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전북 익산에서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TV에 나와 외할머니께 효도하고 싶은 마음에 연기자를 꿈꿨다.” 19살에 서울의 삼일로창고극장에 들어가 극단 생활을 시작했고, 극단 학전에서 <지하철 1호선>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TV 탤런트라는 애초의 꿈과는 멀어졌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자 모든 게 물거품처럼 느껴졌다. 그때 하나의 희망이 돼준 작품이 서른 즈음에 만난 연극 <라이어 3탄>이었다. 당시 전배수는 연기에 회의를 느끼고 뉴질랜드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려 했다. 주차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고 있던 때 <라이어 3탄>의 주인공 이영호 역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연기를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정말 몰입했고 관객이 대여섯명밖에 없어도 그저 신났다. 곧바로 제작사로부터 당시로서는 엄청난 개런티에 3년 계약 제안을 받았다.” 연속된 방황의 길 위에서 얼마간의 위로가 돼준 작품이었다.
추창민 감독의 <사랑을 놓치다>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그는 “보은하고 싶어서” 추 감독의 영화라면 역할에 상관없이 출연해왔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동사무소 직원,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형판 역에 이어 감독의 신작 <7년의 밤>에도 등장한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때 처음 만난 이석훈 감독은 <히말라야> 때 전배수의 실제 이름을 써가며 그에게 휴먼원정대 대원 전배수 역을 맡겼다. “감독님께서 ‘연기는 잘하는데 뜨지 못하고 있어서’라며 일종의 주술적인 의미로 그러신 것 같다. (웃음)” 대중에게 기억될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한때는 (오)달수 형이나 (유)해진 등의 연기를 닮으려고 했다. 그런데 <프리즌> 촬영으로 만난 한석규 선배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자기 안의 것을 마음껏 풀어헤치고 연기할 것인가, 담아두고 하나씩 보여줄 건가. 어느 쪽의 연기를 할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은데, 나만이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게 뭔지, 또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해야겠더라. 매 작품 계속 시도하고 찾아가야지. 시행착오도 겪을 테고 은퇴할 때까지 끝내 못 찾을 수도 있고. 그래도 가야 할 방향이 좀더 명확해진 지금 이 느낌이 좋다.”
<강남1970>의 구 사장
“내 인내심에도 종착역은 있당께. 건달이 남의 옷이나 다려갔고 해결되겄소. 다음주 내로 이 집 안 비우면 말이여, 여기 있는 옷 싹다 불싸질러버릴랑께. 알아서 하쇼!” 카바레를 운영하는 구 사장이 세탁소를 운영하는 전직 조직 두목 길수(정진영)를 찾아와 돈을 갚으라며 윽박지른다. 구 사장 역의 전배수의 눈빛에 싸늘한 냉기가 흐른다. 앞머리를 뒤로 시원하게 넘기고 ‘가오’ 한번 딱 잡고 섰다. 하지만 이 장면이 완성되기까지 그는 10번도 넘게 테이크를 가야 했다. “유하 감독님은 어투 하나에도, 어미 처리에도 굉장히 민감하시다. 뉘앙스가 살지 않는다며 오케이를 안 내주시더라. 어느덧 야식 시간은 됐고 다들 쉬는데 나는 먹는 게 입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때 큰마음먹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다. ‘감독님, 딱, 한번만! 준비해온 대로 가보고 싶습니다. 정말, 자신 있습니다.’” 그때의 ‘딱, 한번!’이 바로 오케이로 이어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