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씨네21> 기자들이 추천하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추천작 20편
2016-07-11
글 : 씨네21 취재팀
<캡틴 판타스틱>

<캡틴 판타스틱> Captain Fantastic

맷 로스 / 미국 / 2016년 / 118분 / 개막작

현재도 자연에 안주하는 삶은 가능한 것일까. 벤(비고 모르텐슨)은 깊은 숲속에서 여섯 아이들을 홀로 키우고 있다. 벤은 아이들에게 홈스쿨링을 한다. 아이들은 사냥과 채집은 물론 여러 나라의 언어와 헌법, 철학에도 정통하다. 하지만 벤과 아이들의 가슴 한구석엔 어머니의 빈자리가 늘 남겨져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들은 어머니의 부고를 듣는다. 벤과 아이들은 아내의,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시로의 여정을 떠난다. 줄곧 자신들이 공동으로 구축한 세계에서만 살던 아이들은 낯선 자극에 쉽게 흔들리고 마음을 뺏긴다. 미지의 것들로 가득한 도시는 쉼없이 아이들을 매혹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벤과 아이들은 사슴을 사냥한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여과없는 그 장면은 이 가족의 생존 방식을 주지시킨다. 어려운 길을 택한 아버지를 연기하는 비고 모르텐슨의 모습은 실제 자신의 역경 많았던 삶과 특유의 그늘진 얼굴이 함께 엉켜 특별한 현실감을 준다. 여섯 아이들을 연기한 각 배우들도 매우 명민하다. 뜻밖의 결말에 닿는 순간에 영화는 가족을 완성하는 것, 남들과 다른 삶을 선택해 건강히 그 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낯설지만 수용할 만한 일깨움을 준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윤혜지)

<바지라오 마스타니>

<바지라오 마스타니> Bajirao Mastani

산제이 릴라 반살리 / 인도 / 2015년 / 158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발리우드영화의 정점을 만끽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이 영화를 골라도 좋다. <바지라오 마스타니>는 거장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이 오랜 준비 끝에 선보인 역작이다. 반살리 감독은 <블랙>(2005), <청원>(2010) 등 드라마로 잘 알려져 있지만 발리우드 특유의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영화들도 꾸준히 연출해왔다. 실존했던 인도 마리타 왕국의 전쟁 영웅 바지라오와 그의 두 번째 부인 마스타니의 설화를 각색한 이번 영화에서는 전쟁과 사랑, 격정의 대서사시를 스크린에 화려하게 수놓는다. 패배를 모르는 맹장 바지라오(란비르 싱)는 정복 전쟁 중 전장에서 여전사 마스타니(디피카 파두콘)를 만난다. 적으로 만나 서로를 마음에 품지만 바지라오에겐 이미 아내 카쉬바이(프리앙카 초프라)가 있다. 힌두교 신자인 바지라오는 두 번째 부인을 들일 수 없어 마스타니를 포기하려 하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거부하지 못한다. 전쟁을 소재로 한 만큼 웅장한 전투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는데 마살라 무비 특유의 춤과 음악이 어우러져 장엄함을 자아낸다. 아름다운 화면과 놀랄 만큼 화려한 배경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산제이 릴라 반살리가 직접 작곡한 음악과 심혈을 기울인 율동은 대사서시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송경원)

<라라>

<라라> Rara

페파 산 마르틴 / 칠레, 아르헨티나 / 2016년 / 92분 / 패밀리존

사라는 평범한 열두살 소녀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을 보는 세상의 시선은 그리 평범하지 않다. 부모의 이혼 후 사라에겐 두명의 엄마가 생겼다.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가는데 바라보는 이의 시선은 달라져 있다. 사라는 혼란스럽다. 두 엄마의 애정 행각, 이상한 동생, 그리고 타인의 편견 등 모든 것이 싫고 숨기고 싶다.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는 더욱 들키고 싶지 않다. 엄마와의 갈등은 점점 커진다. 열세 번째 생일이 다가오지만 생일 파티를 엄마들의 집에서 하고 싶지 않다. 평범한 생일 파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빠의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고 싶다는 말에 엄마들은 서운하지만, 그녀의 의견을 존중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은 깊어간다. 또한 어리고 서툴지만 사랑스러운 그녀를 담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연출에 묻어난다. 섬세하게 변화하는 소녀의 성장여행이 흥미롭다. 2016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 초청작. (김은솔 객원기자)

<내 친구 아부렐레>

<내 친구 아부렐레> Abulele

조너선 제바 / 이스라엘 / 2014년 / 96분 / 패밀리존

자신 때문에 형이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슬픈 나날을 보내던 아담은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아부렐레’라는 괴물을 만나 친구가 된다. 검을 털과 노란 눈을 가진 아부렐레는 그의 존재를 믿는 특별한 아이에게만 나타난다. 그리고 언젠가는 떠난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단것을 좋아하는 괴물과 체구는 작지만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담은 여러 에피소드를 거치며 더욱더 친밀해진다. 한때는 괴물과 친구였던 어른은 그가 자신을 떠난 것에 앙심을 품고 괴물을 잡으려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작고 외로운 아담은 아부렐레를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빠른 전개와 다양한 에피소드, 장면 전환에 따른 사운드의 변화는 이스라엘이라는 배경과 맞물려 긴장감과 유쾌함이 공존하게 한다. 괴물의 존재를 믿는 동심을 가진 어린이와 한때는 괴물을 존재를 믿었던 어른들을 위한 귀엽고 따뜻한 판타지 어드벤처 영화. (김은솔 객원기자)

<쿠로사키군의 말대로는 되지 않아>

<쿠로사키군의 말대로는 되지 않아> The Black Devil and the White Prince

쓰키카와 쇼 / 일본 / 2016년 / 93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여고생 유우(고마쓰 나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뭇 여학생들의 ‘화이트 프린스’인 시라카와(지바 유다이), ‘블랙 데빌’ 쿠로사키(나카지마 겐토)와 은근한 밀고 당기기 중인 그녀는 누굴 택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런데 유우는 어쩐지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한 시라카와보다 자신을 종 부리듯 하며 괴로움에 미치게 만드는 쿠로사키가 자꾸 눈에 밟힌다. <쿠로사키군의 말대로는 되지 않아>는 동명의 인기 만화를 실사화한 기획 영화다. 순정만화의 클리셰란 클리셰는 죄다 끌어모은 작품이지만 배우들의 미모, 뻔뻔하기 짝이 없는 연기와 만나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을 뿜는다. 우스개로만 볼 게 아니다. 일본의 만화 원작 기획 영화는 날로 무섭게 진화하고 있으니까. 그 밖에도 ‘오글’이 양념처럼 뿌려진 신마다 스스로 입을 틀어막고 허벅지를 때리거나 결국은 못 참고 비명을 지르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쾌감의 비명이다. (윤혜지)

<에이니의 숲>

<에이니의 숲> Granny's Dancing on the Table

한나 설드 / 스웨덴 / 2015년 / 89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폭력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면 수습하기에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에이니의 숲>은 깊게 뿌리 박혀 서서히 길러지다가 마침내 무성해진 ‘폭력의 숲’에 살고 있는 한 피해자를 관찰한다. 숲속 외딴집, 아빠와 단둘이 사는 13살 소녀는 아버지에게 속박당한 채 바깥세상을 모르고 자라난다. 나지막한 내레이션과 함께 소녀는 어디서부터 이 가정이 잘못됐는지 추적하기 시작한다. 딸을 향한 상습적인 폭행의 시작은, 그 아내에게로, 또 더 먼 자신의 유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순환되는 이 폭력의 역사를 귀여운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한다. 상당히 충격적인 결말에 앞서, 먼저 먹먹한 통증이 오래도록 남는 아름다운 작품. 여성 감독, 여성 프로듀서가 참여했으며, 스톱모션애니메이션 부분은 킥스사터 후원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화정)

<리자의 달콤살벌한 연애>

<리자의 달콤살벌한 연애> Liza, the Fox-Fairy

칼로이 우이 메자로스 / 헝가리 / 2015년 / 108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천생연분을 고대하는 리자(모니카 발사이)에게 벗이라고는 일본인 가수 유령 토미(사쿠라이 데이비드)뿐이다. 간호사인 리자는 일본 문화에 매료된 마타 부인의 병수발을 오랫동안 들며 그녀로부터 얻은 한권의 일본 로맨스 소설을 부적처럼 품고 산다. 토미의 존재를 안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토미는 리자의 곁에 자신 외의 남자가 머물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리자에게 다가오는 모든 남자들을 사고를 빙자해 살해한다. 리자 주변에서 숱한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걸 의아하게 여긴 탐정 졸탄(베데-파제카스 서볼치)은 리자의 집에서 숙식하며 사건을 추적해나간다. <리자의 달콤살벌한 연애>는 <신데렐라> 스토리와 <우렁각시> 설화 위에 동유럽식 앤티크 비주얼을 덧입히고 일본의 고전설화, 미국의 대중문화까지 접붙인 혼합적 텍스트인데 그 황당무계한 조합이 제법 근사한 균형을 이룬다. (윤혜지)

<31> 31

롭 좀비 / 미국 / 2016년 / 102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1976년 10월31일, 그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도로를 달리던 히피들은 모종의 세력에 의해 납치당한다. 누가, 왜 그들을 납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12시간 안에 여러 단계의 관문을 거쳐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찰리(셰리 문 좀비)를 포함한 다섯명의 일행은 피와 오물로 뒤섞인 혹독한 게임을 치른다. 롭 좀비의 4년 만의 신작으로 캐릭터 비주얼과 살육 시퀀스에 대한 미학적 집착은 여전하다. 어떻게 하면 더 창의적으로, 아름답고 참혹하게 인체를 난자할 수 있을까 열심히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다만 시원하다기보단 끈적한 쪽이다. 섹슈얼 코드도 물론 풍부하고, 정체 모를 권력자들이 특정 공간에 희생자를 몰아넣고 괴롭히는 변태 취향도 지독히 그답다. 전작에 사용한 설정을 뒤섞거나 반복하기도 한다. 가령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날은 ‘핼러윈’이고, 강인한 히로인 찰리는 실제 부인인 셰리 문 좀비가 연기한다. (윤혜지)

<에바는 잠들지 않는다> Eva Doesn’t Sleep

파블로 아구에로 / 프랑스, 아르헨티나, 스페인 / 2015년 / 85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서른셋의 이른 죽음.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의 죽음을 한달간의 국민장으로 추모했다. 에바 페론은 성녀라는 찬사와 인기에 영입한 포퓰리즘이라는 비난 사이에서 ‘규정되지 않은 역사’이자 인물이다. <에바는 잠들지 않는다>는 그녀의 사후 25년, 후안 페론이 정치적 수단으로 그녀의 사체를 미라로 만들었던 그 ‘야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미 죽은 그녀를 추앙하는, 혹은 동요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담은 뉴스릴 화면이 끊임없이 교차 편집된다. 미라가 되어서 살아 숨쉬지 못하는 에바 페론은 사실상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를 대하는 각군의 사람들의 태도로 그녀가 가진 상징성이 입증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방부처리사로, 드니 라방이 장교로 출연한다. (이화정)

<인어와 함께 춤을>

<인어와 함께 춤을> The Lure

아그니에슈카 스모친스카 / 폴란드 / 2015년 / 92분 / 부천 초이스: 장편

인어에 관한 동화나 설화는 꽤 있는 편이다. 디즈니가 각색한 <인어공주>는 인어의 연약한 면을 부각시켰지만 사실 적지 않은 이야기에서 인어는 아름답지만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로 묘사된다. <인어와 함께 춤을>은 설화 속 인어의 몇 가지 두드러지는 속성을 전면에 내세운 잔혹 동화다. 어느 밤 바닷가에서 음악을 연주 중인 뮤지션들을 접한 인어 자매 스레브르나(마르타 마주레크)와 즈보타(미할리나 올샨스카)는 인간세계로 넘어와 밴드에 합류한다. 인어 자매의 타고난 미모와 가창력에 밴드의 인기가 치솟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어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며 잔혹한 결말로 나아간다.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꾀어 잡아먹는다는 바다의 요정 세이렌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는 ‘유혹’이라는 원제에 걸맞게 알고도 빠질 수밖에 없는 몽환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인어공주> 동화를 뼈대로 독특하게 해석한 판타지 호러물이다. (송경원)

<나는 과거를 살인한다>

<나는 과거를 살인한다> Kill Time

프루트 챈 / 중국 / 2016년 / 128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전소맥(안젤라 베이비)은 순직한 경찰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들어간 온라인 숍에서 우연히 스카프를 구입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부친의 사건 기록을 발견한 맥은 자신이 기억을 잃어버린 원인이 첫 남자친구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고 모든 기억의 연결 고리가 된 미제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다소 난해한 플롯을 즐기던 프루트 챈이 대중적이고 친숙한 전개의 작품으로 돌아왔다. 첫사랑의 기억과 아버지가 풀지 못했던 살인사건의 흔적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잔혹한 진실을 따라간다. 전반적으로 추리극의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에 좀더 초점을 맞춘 듯하다. 안젤라 베이비와 남자친구 역의 원경천이 사귀던 시절의 풋풋한 기억들은 따스한 분위기에 감싸여 슬픔과 아련함을 안긴다. 대체로 예쁘고 훈훈한 분위기의 화면과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지워진 기억과 현실의 낙차도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송경원)

<64 파트1, 파트2>

<64 파트1, 파트2> 64 PART 1, 64 PART 2

제제 다카히사 / 일본 / 2016년 / 121분, 119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요코하마 히데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범죄 드라마. 쇼와 64년(1989년)에 일어난 ‘아마미야 쇼코 유괴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이 이야기는 이미 <NHK>에서 5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원작이 워낙 방대하고 밀도 높은 이야기인지라 촘촘한 전개를 가급적 훼손하지 않으려 영화도 전·후편 2부작으로 구성했으며 사토 고이치, 아야노 고, 에이쿠라 나나, 나가세 마사토시 등 호화로운 출연진만 봐도 이 작품에 모인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른바 ‘64사건’이 일어난 지 14년 후 공소시효 만료까지 1년이 남은 시점에서 신임 경찰청장이 갑작스럽게 재수사를 추진한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미카미(사토 고이치)는 현재 공보경찰관으로 근무 중이다. 영화는 미카미를 중심으로 여러 갈등 관계를 복잡하게 그려나간다. 두개로 쪼개진 경찰 내부의 권력 다툼뿐 아니라 취재를 원하지 않는 유가족이나 기자 클럽 사이의 갈등도 조정해야 한다. 그 와중에 64사건을 흉내낸 모방 범죄까지 일어나며 사건의 향방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다층적인 서사는 물론이거니와 캐릭터간 거미줄처럼 얽힌 갈등 관계를 선 굵은 드라마로 풀어나가는 솜씨가 놀랍다. 각본부터 연출, 연기까지 형사물에 관한 한 일본영화의 저력이 여전히 탄탄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증명하는 영화다. (송경원)

<세일러복과 기관총: 졸업>

<세일러복과 기관총: 졸업> Sailor Suit and Machine Gun: Graduation

마에다 고지 / 일본 / 2016년 / 118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1981년 개봉작 <세일러복과 기관총>은 가도카와 영화의 전성기를 알린 대표작 중 하나다. 1978년 아카가와 지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데 힘입어 1982년과 2006년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마에다 고지 감독의 <세일러복과 기관총: 졸업>은 가도카와 영화 4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리메이크판이다. 원작 소설이 있는 만큼 고등학생 이즈미가 조직원이 4명뿐인 야쿠자 조직을 이어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본래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981년작의 주인공인 야쿠시마루 히로코가 이 작품 하나로 일약 톱 아이돌 반열에 오를 정도로 여고생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작품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즈미 역에 하시모토 간나를 캐스팅한 것은 흠잡을 데 없는 선택이다. 다만 드라마, 코미디, 교훈까지 한 작품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시도하는 건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일본 사회의 무의식을 반영했다고 평가받은 원작의 메시지를 현대적으로 녹여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특히 이즈미가 기관총을 난사하며 외치는 명대사 “가이칸”(쾌감)을 외치는 장면이 어떻게 각색됐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기대해봄 직하다. 왜 굳이 ‘졸업’이라는 부제를 붙였는지 생각해보면서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송경원)

<너츠!>

<너츠!> Nuts!

페니 레인 / 미국 / 2016년 / 79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1920년대 미국에서는 정력 보충을 위해 남성의 음낭에 염소 고환을 이식하는 수술이 유행했다. 정확한 의료 지식과 기술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음에도 캔자스시티 주민들은 이 수술에 열광했고, 수술을 집도한 존 R. 브링클리는 지역 유지로 거듭난다. 그는 자신의 재력과 영향력을 활용해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며 지역 내 대중문화 형성에도 기여한다. 미국의료연합은 그의 의료 면허를 박탈하며 활동에 제동을 걸지만 존 R. 브링클리는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도지사 선거에까지 출마한다. 영화 <너츠!>는 존 R. 브링클리의 자서전 <The Life of a Man>을 기반으로 하는 전기다큐멘터리다. 총 여섯장으로 된 책의 구성을 따라 주인공의 유년 시절부터 죽음을 맞을 때까지를 다룬다. 자서전의 톤을 따르다보니 인물을 보는 시각이 편향되지만 이는 오히려 후반부 사건을 부각하는 포석이 된다. 흑백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 영화는 당대 신문기사, 사진, 라디오 녹음본, 단편다큐멘터리 등 풍부한 푸티지와 자료들, 다양한 작화의 애니메이션, 역사가들의 인터뷰를 이리저리 엮어 한시도 지루하지 않은 화면을 선보인다. 이야기가 가진 흥미로운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편집으로, 올해 열린 제32회 선댄스영화제에서 편집상을 수상했다. (김수빈 객원기자)

<얼굴없는 밤>

<얼굴없는 밤> The Similars

이삭 에스반 / 멕시코 / 2015년 / 89분 / 부천 초이스: 장편

혁명의 전운이 감돌던 1968년 10월의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부근의 버스터미널이 폭우로 고립된다. 모든 버스는 운행을 멈췄고 매표원과 청소부, 정체 모를 할머니만이 터미널에 머물고 있다. 얼마 뒤, 출산을 시작한 아내에게 가다가 길이 막힌 율리야가 터미널로 들어선다. 이후 임부, 의대생, 중년 여성과 병을 앓고 있는 그 여인이 아이가 하나둘 모여든다. 청소부와 매표원이 난데없이 발작을 일으키자 할머니는 율리야를 사탄으로 지목한다. 그때부터 이곳에 모인 여덟명의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경계를 숨기지 않는다. 히치콕을 연상케 하는 고전적인 화법의 공포 스릴러물이다. 미지의 인물들, 고립된 공간, 고조되는 음악, 낭자한 폭력과 유혈 등 서스펜스를 돋우는 요소가 망라되어 있다. 라디오 음악과 빗소리를 뒤얽고, 공간을 연극 무대처럼 활용해 작당하는 인물별로 화면을 나눠 담으며 영화가 지닌 한정적인 요소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사건의 시간적 배경은 1968년 10월2일 틀라텔롤코 광장에서 있었던 민주화 시위 전날이다. 감독은 음모론에 빠진 대학생, 비틀린 관계의 모자 캐릭터 등을 통해 당대의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담는다. <인시던트>로 창의적인 스토리텔링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낸 이삭 에스반 감독의 신작이다. (김수빈 객원기자)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 Creepy

구로사와 기요시 / 일본 / 2016년 / 130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8명을 죽인 연쇄살인마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자신만의 도덕적인 기준이 있다’고 말한다. 살인마의 경찰서 내 인질극 난동 후, 책임을 통감한 다카쿠라는 현직 형사에서 물러나 범죄심리학 교수로 살아간다.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라는 질문을 안고 ‘도망 나왔지만’ 정작 이 질문을 향한 본게임은 다카쿠라의 집과 이웃에서 전개된다. 아내와 단둘이 사는 그는, 이사 온 집의 이웃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다. 특히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아픈 아내와 딸과 함께 살아가는 중년 남자 니시노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를 설명할 키워드로, 이 작품 이후에는 ‘Creepy’라는 말을 추가해도 좋겠다. 음침하고 기분 나쁜 데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듯한 뜻을 내포한 이 단어는 그의 작품 속 어둠과 두려움을 적확하게 집어낸다. 아내가 니시노에게 ‘희생’당할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다카쿠라는 6년 전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 후 남은 유일한 가족인 중학생 소녀를 조사하며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려 애쓴다. <로프트> <인간 합격> 등으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호흡을 맞춰온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다카쿠라 역으로 다시 조우한다. 제15회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마에카와 유타카의 <크리피>가 원작으로,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실로 기분 나쁜 이야기’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이화정)

<미드나잇 스페셜>

<미드나잇 스페셜> Midnight Special

제프 니콜스 / 미국 / 2016년 / 112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강렬한 섬광을 발사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년 알튼. 비밀 종교단체 ‘랜치’는 아이의 신비한 힘을 ‘이용해’ 종교를 유지하려 한다. 아이가 실종되자 지도자 마이어는 아이를 찾는 데 혈안이 되고, 아이의 능력을 실험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정부까지 이 추격전에 가세한다. <미드나잇 스페셜>은 어른들의 추악한 욕망에 맞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키려는 소년의 아버지 로이와 그 일행의 목숨을 건 사투다. 감독이 오마주했다는 존 카펜터의 <스타맨>부터 <E.T.>와 <미지와의 조우> 같은 SF물, 아버지의 부성을 그렸다는 점에서 <더 로드> 등 연상되는 많은 영화들이 따로 떼어낼 수 없이 공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핵심적인 질문은 그의 전작으로 향한다. 거대한 폭풍이 밀려온다는 마음속의 불안으로 방공호를 짓던 <테이크 쉘터>(2011)의 가장 커티스는, 오히려 그 의무감에 가족에게 외면을 당했다. <미드나잇 스페셜>의 로이 역시 마찬가지로 아들을 지켜야 하는 가장이지만 이번에는 <테이크 쉘터>의 불안을 걷어낸,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장엄한 서사의 길에 오른다.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IPTV로 직행할 예정이라, 국내에서는 이번 상영이 스크린으로 어둠을 밝히며 발광하는 강렬한 섬광(미드나이트 스페셜)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뜻깊은 기회다. (이화정)

<소곤소곤 별>

<소곤소곤 별> The Whispering Star

소노 시온 / 일본 / 2015년 / 100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인간이 멸종 위기에 처한 미래. 로봇 스즈키 요코는 우주선을 타고 행성 곳곳에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스즈키는 마지막 업무를 위해 인간이 지배하는 최후의 행성으로 향한다. 그곳 주민들에게 30데시벨 이상의 소리는 치명적이다. 스즈키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요한 최후의 목적지에 발을 내딛는다. 차를 끓이고 빨래를 하는 식의 지극히 일상적인 우주선 내부 생활과, 폐허 속에서 주인공이 물건을 배달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일본 가옥 생활을 연상케 하는 기내 생활은 SF물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게다가 흑백 화면을 택했는데, 이질적인 화면과 장르의 결합이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영화에 담기는 행성의 풍경은 실제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 인근을 배경으로 한다. 모든 대사는 소곤거림으로 이뤄져 있고 이따금 클래식 음악이 감흥을 북돋운다. (김수빈 객원기자)

<전복된 두려움> Uptake Fear

아르만두 폰세카, 카페우 푸르망 / 브라질 / 2016년 / 82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직장 상사와 동료, 거래처 사람에게도 무시당하던 마쿠스는 어느 날 강도가 흘리고 간 칼 한 자루를 손에 넣게 된다. 그는 자신을 휩싸고 있는 비정상적인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어두운 본성과 마주하고는 통제 불가능한 살육에 돌입한다. 사람을 죽이는 마쿠스는 악마의 형상을 떠올리게 하며, 최후의 희생자를 살인하는 방식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끔찍하다. 하지만 마쿠스를 단순한 사이코패스로 여기며 그에게 분노를 전가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억압된 삶이 우리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마쿠스가 겪는 갑의 횡포와 스트레스는 현대인들의 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초자아에 잠식된 마쿠스가 폭주 끝에 맞는 결말은 충격적인 동시에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전복된 두려움>은 핏빛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신경쇠약을 달고 사는 현대인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까지 담은 명민한 장르영화다. (이호준 객원기자)

<살아있는 데브의 밤>

<살아있는 데브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b

카일 랜킨 / 미국 / 2015년 / 92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제목이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떠올리게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좀비들이 창궐한다는 모티브 외에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살아있는 데브의 밤>은 생존을 위해 좀비에게서 달아나고 또 그들에 맞서는 진중한 좀비영화와 궤를 달리한다. 로맨틱 좀비 코미디물로서 좀비는 그저 거들 뿐 데브와 라이언의 사랑을 증폭시키는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인물들 또한 좀비를 무서워하기보다는 가지고 노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이를테면 좀비 목마를 타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데브의 모습이나 박수로 전기 장치를 작동시켜 좀비를 통구이로 만드는 장면 등이 그렇다. 성조기 모양의 브라우니를 자르고 빨간색으로 물든 칼을 보여주는 등의 블랙 유머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로맨스영화의 종착역은 두 사람의 곡진한 사랑의 확인이자 맺음이다. 사랑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라이언의 태도는 관객의 심금을 울리기에도 충분해 보인다. 발랄하고 쾌활한 매력과 섹시함을 겸비한 데브 역의 배우 마리아 테이어의 발견도 흥미롭다. (이호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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