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가보고 싶은 BIFAN의 한때가 있다면? 영화제의 스무살 생일을 맞아 관객의 사전 온라인 투표로 부천의 역대 화제작 중 스무편을 추려 재상영하는 ‘다시 보는 판타스틱 걸작선: 시간을 달리는 BIFAN’ 특별전이 열린다. 전설 아닌 레전드급 영화들과 부천의 인연을 살펴보았다.
1회 심야상영작
<킹덤>(1994) 라스 폰 트리에
‘부천의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킹덤> 심야상영을 실시간으로 즐겼던 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김영덕 프로그래머의 생생한 증언에 의하면, “영화가 워낙 길고 괴이한 데다 상영 전부터 무섭다는 소문이 영화제를 뒤덮었다. 영화를 보니 정말 ‘오리지널’ 공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예측을 자꾸 뒤엎는 전개에 놀란 관객과 마구 비명을 지르면서 봤는데 현실의 효과음과 함께 영화를 보니 무척 재미있었다. 옆에 앉은 관객과 서로 붙들고 때리고… 심장이 쫄깃해진 채로 밤을 지새웠다. (웃음)” 당시 프로그래머였던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이 상영관마다 직접 나타나 관객을 부추겨 영화제를 일종의 부흥회처럼 만들었다는 후문도 있었다.
2회 작품상 수상작
<사무라이 픽션>(1998) 나카노 히로유키
이전의 사무라이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모던한 사무라이영화로 일본 최초로 뮤직비디오 전문 프로덕션을 차렸던 영상작가 나카노 히로유키의 감독 데뷔작. 가수 겸 배우 호테이 도모야스도 큰 인기를 누렸다. 파격과 개성을 위한 영화제인 부천에 마침맞은 상영작인 만큼 이해의 작품상을 <사무라이 픽션>이 가져간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3회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
<큐브>(1997) 빈센조 나탈리
아마도 부천이 가장 사랑한 감독이 아닐까. 빈센조 나탈리는 데뷔작 <큐브>로 이해의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제7회 영화제엔 폐막작 <싸이퍼>(2002)로 부천에 초청됐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제17회 영화제에는 <악령>(2013, 영화제 상영 당시 제목은 <혼령의 집>)으로 다시 한번 부천을 방문했다. <큐브>와 함께 제3회 영화제엔 토드 헤인즈의 <벨벳 골드마인>(1998), 다니엘 미릭과 에두아르도 산체스의 <블레어 윗치>(1999)도 함께 상영돼 관객의 열띤 반응을 끌어냈다. 인디 정신과 키치적 감성이 뜨겁게 살아 있던 때였다.
3회 상영작
<벨벳 골드마인>(1998) 토드 헤인즈
4회 개막작
<아메리칸 사이코>(2000) 메리 해론
4회 상영작
<링>(1998) 나카타 히데오
5회 개막작
<레퀴엠>(2000) 대런 애로노프스키
당시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다른 작품의 촬영으로 영화제 일정에 맞춰 부천을 방문할 수 없었다.개막식날 부천에선 역대 최초로 개막작 감독의 화상 인사 영상이 상영되었다.
5회 폐막작
<아멜리에>(2001) 장 피에르 주네
5회 상영작
<메멘토>(2000) 크리스토퍼 놀란
6회 상영작
<도니 다코>(2001) 리처드 켈리
“제이크 질렌홀의 어둠의 얼굴”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작품. 이해에 <도니 다코>는 나카타 히데오의 <검은 물밑에서> (2002), 나지량의 <이도공간>(2002), 대니 팡과 옥사이드 팡의 <디 아이>(2002)와 함께 부천 초이스에서 경쟁했다(작품상은 <검은 물밑에서>가 가져갔다). 제17회 선댄스영화제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2000)와 함께 각본상을 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작품으로 선댄스에선 인기상을 수상했다. <메멘토>는 <도니 다코>보다 1년 먼저 부천에서 상영되었다.
6회 상영작
<이도공간>(2002) 나지량
부천에서 <이도공간>이 상영된 바로 다음해에 장국영이 생을 마감해 부천을 찾은 관객에겐 더욱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은 작품이다.
7회 작품상•관객상•남우주연상 수상작
<지구를 지켜라!>(2003) 장준환
이렇게 멋지고 터무니없는 데뷔작이 또 있었을까. 부천에서 첫선을 보인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는 그해 부천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였다. 무려 작품상, 관객상, 그리고 백윤식의 남우주연상까지 3관왕을 거머쥔 것. 관객상을 결정짓는 관객 투표에선 5점 만점 중 4.77점이라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받았다.
7회 상영작
<데브다스>(2002) 산제이 릴라 반살리
8회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
<녹차의 맛>(2004) 이시이 가즈히토
“야마~ 야마~ 야마요~ 야마요~.”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녹차의 맛> 테마곡 <산이여>는 영화제 기간 내내 관객 사이에 심각한 중독 증상을 불러일으킨 주범이었다. <산이여>가 아니더라도 그때 그 ‘녹차의 맛’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늘 별일이 없던 하루노 일가에서 보낸 시간들은 어땠던가, 천천히 머릿속으로 되짚다보면 입가에 문득 스며오는 맛이 있을 테니까.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2004)도 같은 해의 화제작이었다.
12회 작품상•여우주연상•EFFF 아시아영화상 수상작
<추격자>(2008) 나홍진
12회 감독상•관객상 수상작
<렛 미 인>(2008) 토마스 알프레드슨
이해의 상들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와 꼬마 뱀파이어가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나홍진의 <추격자>(2008)가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서영희)을, <렛 미 인>이 감독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두 작품은 제41회 시체스영화제에도 나란히 함께 갔다. <추격자>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최우수작품상을, <렛 미 인>은 골드 멜리스 유럽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많은 관객의 가슴을 시리게 만들었던 <렛 미 인>은 훗날 제15회 영화제에서 15주년 기념 앙코르전 작품으로도 상영됐다.
13회 상영작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2008) 파스칼 로지에
점점 체계화, 도식화되어가는 호러 고어 장르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수작으로 2부 구성의 독특함, 평범하고 현실적이어서 더욱 육체적으로 다가오는 고문 장면 등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등급에 관대한 프랑스에서조차 ‘포르노나 받는다’는 18살 이상 관람가 등급을 공포영화 최초로 받아내(?) 더욱 화제가 됐다. 감독 파스칼 로지에와 주연배우 밀레느 잠파노이가 함께 부천을 방문하기로 하였으나 아쉽게도 개인 사정으로 파스칼 로지에만이 부천 땅을 밟았다.
14회 작품상•여우주연상 수상작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2010) 장철수
서영희는 부천이 특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배우다. <추격자>에 이어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로 서영희는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손에 넣었다. 물정 모르는 듯 순박한 얼굴이 원한 서린 악귀로 돌변했을 때 관객은 두려움 대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잔혹하고 힘 있는 여인의 얼굴이란, 부천에서라면 언제나 환대받는 법이다.
14회 상영작
<미스터 노바디>(2009) 자코 반 도마엘
제14회 영화제에선 유독 ‘부천스러운’ 영화가 강세였다. 스르잔 스파소예비치의 <세르비안 필름>(2010), 톰 식스의 <인간 지네>(2009), 마커스 던스탠의 <콜렉터>(2009) 등 제목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잔혹한 영화가 줄을 이었다. 물론 그 잔혹성에도 나름의 철학이 있었지만, 어쨌건 그런 의미에서 자레드 레토의 잔잔한 열연이 돋보인 <미스터 노바디>는 더 눈에 띄는 영화였다. 삶과 선택에 관한 화두를 SF의 숨으로 풀어낸 지적인 작품으로, 올해 영화제를 찾을 관객은 한번 더 <미스터 노바디>를 곱씹어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17회 넷팩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