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의 아들로 태어난 레옹 고몽은 탁월한 엔지니어였다. 1895년 그가 처음 설립했던 회사는 사진 관련 업체로, 쌍안경이나 프로젝터, 촬영 장비 등을 제작했다. 하지만 고몽은 당대 새롭게 나타난 ‘영화’라는 매체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이듬해 여름 파리 뷔트 쇼몽 지역에 최초의 영화 전문 촬영소를 세웠고, 영화의 탄생과 더불어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고몽 영화사가 제작한 900여편의 라이브러리 중 대표작을 선정해 특별전 형식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르네 클레르의 1950년대 작품부터 1980년대 뤽 베송이 연출한 영화들, 랑지 베디아의 최신작까지 총 11편의 영화가 관객을 기다린다.
역사가 증언하듯 고몽은 ‘최초의’라는 타이틀과 함께 성장한 영화사다. 레옹의 비서이자 최초의 여성 감독인 알리스 기-블라슈는 처음에 촬영 장비 판촉을 위해 연출을 시작했지만, 무려 3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며 역사에 한획을 그었다. 영화사 초기부터 고몽은 제작으로 다변화를 꾀했으며, 기술적 도약이야말로 고몽의 힘이었다. 하지만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기며 정체가 시작됐다. MGM과 맺은 배급 계약으로 극장 경영에서 주도권을 잃었고, 30년대 유성영화의 등장을 맞은 회사는 ‘고몽 프랑코 필름 오베르’로 합병됐다. 이후 1938년 하바스에 재매입되며 되찾은 ‘고몽’사의 이름은 70년대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 고몽은 코미디가 주를 이루는 상업적 코드의 작품들을 제작한다. <판토마 위기탈출>(1964)은 그런 맥락에서 완성된 스펙터클 드라마다. 엄청난 흥행을 거둔 이 영화에는 프랑스식 희극의 요소와 범죄 드라마의 스릴이 섞여 있다. 이 밖에 전후 완성된 흑백영화 <뷰티 오브 더 데빌>(1950)이나 <얼굴 없는 눈>(1960)의 흥미롭고 과감한 소재도 눈에 띈다. 이 작품들은 당대 고몽이 얼마나 정교했으며, 또 미학적으로 세련되었는지를 증명한다.
배우 레아 세이두의 증조부로도 유명한 니콜라 세이두의 고몽 시대는 1975년 시작되어 2004년까지 이어진다. 이때부터 고몽은 프랑스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제작사’이자 ‘배급사’로서, 대중영화의 성공적 유통을 보장하는 기틀을 마련한다. 비제의 오페라를 각색한 프란체스코 로시의 <카르멘>(1984), 뤽 베송의 <서브웨이>(1985)를 비롯한 <그랑블루> (1988)와 <니키타>(1990) 등 초기 대표작들, 이브 로베르의 <마르셀의 여름>(1990), <마르셀의 추억>(1990)은 90년대 전세계 영화팬에게 고몽의 이미지를 각인한 영화들이다. 특히 <그랑블루>의 놀라운 성공으로 뤽 베송은 프랑스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감독과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필로그래피를 쌓기 시작한다. 이렇듯 90년대를 거치며 ‘마거리트’란 창립자 어머니의 이름에서 딴 데이지꽃 로고는 세계 각국으로 퍼진다.
2000년대를 알리는 고몽의 ‘디지털 시네마 프로젝트’는 1995년 뤽 베송의 기존 영화 스튜디오에서 시작됐다. 영화 제작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과 비디오게임, 인터넷과 관련된 멀티플랫폼 사업이 구상됐고, 크실램 프로덕션을 매입해 ‘고몽 멀티미디어’란 이름의 혁신적 기업 형태가 완성됐다. 이즈음 고몽은 극장 흥행 수입 관리를 파테 그룹의 산하에서, 공동의 이름으로 진행한다. 이른바 자국 영화사의 국제화를 통한 문화산업의 성공적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배우로 유명한 랑지 베디아의 <사랑은 부엉부엉>(2016), 덴마크 출신으로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연출자 니콜라스 빈딩 레픈의 <네온 데몬>(2016)을 제작한 최근 경향이 그 다이내믹한 결과물이다. 고몽은 여전히 변화하며 도약 중이다. 120년이 지났지만 새로운 영화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젊고 패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