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하이힐> 시놉시스
아버지는 탱고를 배워 시력을 잃은 딸에게 탱고를 직접 가르쳐주고 싶다. 탱고를 출 때 여성 댄서가 신는다는 하이힐을 보며 아버지는 문득 가장 큰 사이즈의 하이힐을 구해온다. 탱고를 배우게 될 딸아이가 이 세상을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지, 딸의 마음을 좀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는 직접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춰본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하이힐을 선물한다. 둘이 스텝을 밟아나갈 때 부녀는 함께 호흡하고 함께 움직이며 세상 밖으로 한발씩 내딛는다.
“글을 계속 써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몇년에 한번씩 내 글을 읽고 재밌다고 하는 분들이 계셔서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당분간은 더 써보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장편영화 시나리오 부문 대상작 <아버지의 하이힐>을 쓴 유성식은 덤덤히 수상 소감을 전했다. 당선의 기쁨을 마음껏 누릴 법도 한데 그에게서 들뜬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시나리오는 결국 영화가 돼야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그제야 비로소 작가에게도 크레딧이 생기는 것이고.” 자신의 글이 쓰임에 맞게 스크린에 영상으로 구현됐을 때에야 마음껏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는 글쓰기에서만큼은 이미 상당한 필모그래피를 쌓은 경력자다. 시작은 시였다. 1992년 <유서> 등을 포함한 7편의 작품을 써 <현대시>로 등단했다. 두권의 시집 <성난 꽃>(1997), <얼음의 여왕>(2006)도 냈다. 처음으로 시나리오 공모전에 참가해 당선된 <프라이데이 리그>(2009)는 동명의 장편소설로 나오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웹소설 <코드: 살인자의 초청장>을 연재했고 뮤지컬과 연극의 대본도 썼다. 그는 글이라면 장르와 부문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 멀티플레이형 작가로서 쓰고 쓰고 또 써온 셈이다. 그중 영화 시나리오는 어떻게든 완성형이 되는 걸 보고 싶은 그의 숙원 작업이다. “그간 써온 시나리오가 매번 영화화 직전까지 갔다가 안 되곤 하니 속상하더라. ‘운칠기삼’이라고 <아버지의 하이힐>은 어떻게 될지. 작가로서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꾸준히 글을 써온 터라 전업 작가인 줄 알았다. “KBS 기자로 20년 넘게 살아오고 있다. 보도본부 문화부 팀장이었는데 얼마 전에 KBS 청주총국 보도국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오늘도 청주에서 올라왔다. 당분간 바빠질 것 같아 글을 쓸 새가 있을지 모르겠다.” 직장생활을 하며 어떻게든 계속 글을 쓰기 위해 그는 “스스로에게 가혹할 정도로 혹독하게 시간을 내서 써왔다”고 말한다. 평소 머릿속으로 스토리 구상을 하고 틈틈이 메모를 해뒀다가 휴가 때나 주말에 몰아서 쓰는 게 습관처럼 몸에 뱄다. <아버지의 하이힐>도 그렇게 쓰고 수정한 작품이다. “웹소설 연재를 끝내고 심신이 지쳐 있을 때였다.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탱고 공연을 하나 봤다. 그때 <아버지의 하이힐>의 모티브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눈이 먼 딸에게 탱고를 가르쳐준다는 내용은 그렇게 시작됐다. “<쉘 위 댄스>(1996)와 비슷할까. 아니다. 그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의 진폭이 훨씬 더 크다. 평소에 극에 코믹한 요소를 넣는 걸 좋아해서 이번 작품에도 그런 부분이 들어갔다.” 실제로 1년 넘게 탱고를 배우고 있는 그는 “탱고야말로 굉장히 감각적인 춤”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하이힐>이 탱고가 중심인 댄스 영화는 아니지만 아버지와 딸이 함께 탱고를 추는 장면이 중요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꽤 생경할 텐데 보는 이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다.”
새파란 20대 때는 <패왕별희>(1993)를 비롯한 첸카이거 감독의 영화나 컬트적 색채가 물씬 묻어나는 영화들을 즐겨 봤다. “영화에 관심이 많아 취업 준비할 때 당시 삼성영상사업단 영화팀에도 지원할까 했다. <씨네21>도 살펴봤지만 사람을 안 뽑더라. (웃음) 요즘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 영화관을 찾지 못하지만 어렵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에 끌린다.” 50대에 접어든 그는 또 어떤 글을 써갈까. “이렇게 나이를 먹고 보니 인생이란 게 새옹지마더라. 삶의 굴곡을 넘어오면서 글을 써왔다. <아버지의 하이힐>도 그 와중에 만들어졌고. 부디 영화화되길 바랄 뿐이다. 체력적으로 글 쓰는 게 힘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찬 바람 불고 쌀쌀해지면 또 쓰고 싶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