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서극과 <촉산전> [2] - 서극의 영화적 성장기
2002-03-29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누아르의 용장(勇將)을 닮은 청년

1951년 서극이 태어난 곳은 홍콩이 아니라, 베트남이다.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함락하기 전, 서극은 13살의 나이로 홍콩에 왔다. 그 경험은 <영웅본색3>에서 그려진다. 이제 곧 사라질 도시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던 소년은 진정한 죽음이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가 자라서 <영웅본색>의 소마가 된다. 싸움과 죽음의 의미를 깨달은 청년은, 서서 죽을지언정 결코 무릎 꿇지 않겠다는 누아르의 용장(勇將)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무협지의 영웅들이기도 하다. 홍콩 역시 사이공과 어딘가 닮아 있는 곳이다. 1997년 이후의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 대륙의 어딘가에서 떠나왔고, 또 어디론가 떠나가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곳. “홍콩은 늘 거품 위에서 살아간다. 홍콩사람들은 끊임없이 트렌드에 빠지고, 도박에 빠진다. 모두 이민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품 위에서 미끈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순간의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원한다. 심각하게 그들의 삶을 투영하기보다는, 쉽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환상을.

홍콩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서극은 텍사스대학에서 영화공부를 한다. 졸업 뒤 뉴욕으로 가서 잠시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 작업을 하던 서극은, 곧 홍콩으로 돌아와 방송국인 TVB에 입사한다. 이곳에서 허안화, 임영동, 관금붕 등을 만난다. 당시 홍콩은 해외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온 젊은이들로 들끓었고, 대부분 TV방송국을 거쳐 영화계로 입문했다. 바야흐로 홍콩영화의 뉴웨이브가 시작된 것이다. 서극은 1979년 기묘한 살인극을 그린 <접변>으로 데뷔한다. 초기작 중에서 눈여겨볼 작품은 <제일유형위험>. 세 소년의 범죄가 극단적인 혼란과 폭력으로 줄달음치는 <제일유형위험>은 지나친 폭력성과 무정부주의적인 주제 때문에 검열을 당하고, 흥행에서도 실패한다. 그뒤 코미디영화 <귀마지다성>, 무협영화 <촉산>, 멜로물 <샹하이 블루스>, 여성액션물 <도마단> 등 다양한 장르의 수작, 걸작들을 양산한다. <타임>은 이 시기의 서극 영화에 대해서 ‘마술적이고, 놀랍도록 환상적이고, 혼란스러우면서도 아주 우스꽝스럽다’고 평가하며, ‘홍콩의 몬티 파이슨’이라고 부른다. 당시 서극은 무수한 졸작들도 양산했지만, 홍콩에서 흥행감독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힌다.

<샹하이 블루스>와 <도마단>을 만들면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서극의 진가는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공동제작으로 참여한 <영웅본색>은 최초에 서극의 기획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여전히 뒤쳐진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싸워가는 ‘검사(劍士)’의 이미지를 현대판으로 옮겨놓은 <영웅본색>은 홍콩영화의 트렌드를 바꿔놓았고, 오우삼은 홍콩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각광받았다. 홍콩영화계는 캐스팅을 결정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배우에게 보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워낙 판이 좁고, 빠르게 움직이는 홍콩영화판이라 시나리오가 미리 돌면 바로 아류작(또는 바로 그 영화)이 나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영화가 성공하면, 그 영화의 내용과 스타일을 본뜬 영화가 노도처럼 밀려든다. 홍콩영화계가 온통 ‘홍콩누아르’에 열광하고 있을 때, 서극은 발길을 돌려 <천녀유혼>을 제작한다. 전래하는 나무귀신 이야기에, 사람과 귀신의 이루어지지 못할 애절한 사랑을 섞어놓은 <천녀유혼> 역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천녀유혼>은 대중적인 성공과 함께, 서극에게는 신화와 전설을 담은 영화로 나아가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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