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경험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모든 감각을 깨워두어야 한다 -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서면 인터뷰
2016-08-10
글 : 윤혜지
사진제공 찬란

-과거 전설적인 가수였으나 현재는 목소리를 잃은 마리안, 이탈리아에서의 언어적 혼선,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지만 침묵을 지키는 페넬로페 등 <비거 스플래쉬>는 소통 불능에 관해 다루고 있다. 이러한 설정으로 당신이 영화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건 어떤 것들이었나.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해둔 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다. 난 관객이 각자 어둠 속에 홀로 뛰어들어 내가 영화를 만든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말을 하지 못하는 마리안이나 암호처럼 알 수 없는 페넬로페 등의 내러티브 장치들로 나는 가능한 한 복잡하게 영화의 배경을 층층이 쌓아나간다는 것이다. 영화는 내게 장난감이 많은 큰 놀이터와 같다.

-인물들의 소통 불능은 각 인물들이 서로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가령 해리와 페넬로페는 부녀라고는 하지만 만난 지 겨우 일년밖에 되지 않았고,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것 같았던 마리안과 폴은 서로가 각자 다른 사람과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알지 못한다.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도록 한 구성에 대해 말해달라.

=영화에 마찰을 일으키고 일을 복잡하게 하는 요소들이 많아질수록 영화는 더 나은 결과를 낳지 않겠나.

-시나리오 단계에서 작가 데이비드 카이가니크와 상의한 사항들이 있다면 뭔가.

=나와 데이브는 <비거 스플래쉬>를 함께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 생각에 그는 할리우드의 동세대 작가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일 수도 있다. 그의 시나리오는 깊이가 있고 정교하다. <비거 스플래쉬>의 시나리오를 쓰나와 데이브는 <비거 스플래쉬>를 함께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 생각에 그는 할리우드의 동세대 작가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일 수도 있다. 그의 시나리오는 깊이가 있고 정교하다. <비거 스플래쉬>의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우리는 몇주에 걸쳐 오랫동안 다양하고 많은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눴다. 그때의 대화가 그가 시나리오를 쓰는 데 기반이자 근간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데이브는 모든 프리 프로덕션 단계와 촬영 단계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편집실에도 아주 오래 있었다. 나는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편집술의 대가인 월터 파사노 편집감독 역시 편집하기 이전 <비거 스플래쉬>를 ‘쓰는’ 작업에도 많이 참여했다.

-창조적인 예술가인 틸다 스윈튼은 종종 단지 배우만으로서가 아닌 공동 창작자로서 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가령 자신이 맡은 인물의 의상을 직접 고른다든가 하는 일들이 그렇다. 당신은 스윈튼과도 꾸준히 작업해왔는데 이번에 그와의 협업은 어땠나. 스윈튼이 <비거 스플래쉬>에서 창조적인 예술가로서 기능한 부분이 뭐였을지 궁금 하다.

=틸다와 나는 형제간 같다. 틸다가 현장에 없었다면 나는 촬영하는 동안 무척 외로웠을 거다. 나와 함께 작업하는 이들은 모두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내고 그 창의적인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틸다는 내게 연기 이상의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마리안이 침묵한다는 아주 영리한 설정도 틸다가 내게 제안해서 만들어진 거다.

-과격한 음반 프로듀서 해리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레이프 파인즈에게서 보았던 기존의 캐릭터와도 사뭇 다르고, 영화 안에서는 해리가 많은 사건과 긴장의 원인이 된다. 해리와 레이프 파인즈에 관해 부연해준다면.

=나는 해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관객이 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레이프에 관해서도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는 정말 대단한 아티스트이고 멋진 남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그와 친구인 게 몹시 자랑스럽고 다시 한번 그와 작업하고 싶다.

-장소가 주는 신선한 감흥도 있다. <아이 엠 러브>(2009)를 함께 찍었던 촬영감독 요리크 르 소와 다시 한번 힘을 합쳤는데 공간의 구성과 앵글, 인물과 대상을 담는 방식에 관해선 어떤 의논들이 있었나.

=나는 요리크에게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햇살에 바랜 듯한 빛의 느낌을 주문했다. 프레임과 연출은 내 개인적 결정이었다. 물론 요리크가 어떤 다른 것을 말했더라도 분명 기쁘게 받아들였을 거다.

-영화에 두번 등장하는 뱀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매번 마리안이다. 마리안이 뱀을 발견하도록 만든 이유는 뭔가.

=마리안이 야성적인 것을 보고 놀라 도망가던가? 야성적인 것이 마리안을 매혹한 것인지도 모르지. 관객의 판단에 맡겨보자.

-유려한 영상미, 격정적이고 섬세한 사운드트랙 등 당신의 영화엔 로베르토 로셀리니, 루키노 비스콘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 과거 이탈리아 고전의 영향이 물씬 느껴진다. <비거 스플래쉬>도 그렇다. 그들이 당신에게 준 것, 그들로부터 영향받은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화는 언어다. 우리는 책으로 언어를 배우고 경험한다. 내 교과서는 영화 그 자체였고, 내가 가장 경외하는 영화감독들의 이야기였다. 경험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에 경험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사는 동안 내 모든 감각을 깨워두어야 한다. 그래야 경험들을 내 영화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

-<비거 스플래쉬>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1977)를 재해석한다는 소식이 오랜만에 다시 들려오는데 그에 관해서 말해줄 수 있나.

=미안하지만 대답하기 곤란하다.

-그렇다면 현재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미 해머, 티모시 찰라멧, 마이크 스털버그가 출연한 <Call Me by Your Name>을 이제 막 끝냈다.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도 알고 싶다.

=은퇴해서 가능하면 빨리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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