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연적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 루카 구아다니노, <비거 스플래쉬>
2016-08-10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비거 스플래쉬>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커플이 시골의 호젓한 저택에 살고 있다. 이곳에 남자의 친구, 그리고 여자의 ‘젊은’ 질녀가 등장하며, 네 사람의 관계에서 서서히 긴장이 잉태된다. 사랑의 힘이 빚어내는 화학작용은 인간의 모든 이성적 통제를 무력화시키고, 결국 스스로 파멸하는 데까지 이른다. 사랑은 오직 자기 자신, 곧 사랑만을 위해 돌진하는 이기적인 마력을 가졌다. 죽음이 사랑의 관계를 끝내기 전까지, 사랑은 결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중단시키는 법이 없다. 문호 괴테가 <친화력>(1809)에서 피력한 사랑의 자기 파괴적 운명이다.

괴테의 <친화력>, 네 남녀의 화학작용

괴테가 서술한 ‘친화력’의 구성요소가 네명의 캐릭터다. 남자 두명, 여자 두명, 그리고 여자 가운데는 세대 차이가 나는 젊은 여자가 포함돼 있다. 이런 관계를 저택의 ‘수영장’이라는 좁은 공간에 한정하여, 범죄에 가까운 사랑의 힘을 그린 스릴러가 자크 드레이 감독의 <수영장>(1969)이다.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가 남프랑스의 저택에서 휴가를 보내는 커플로, 그리고 모리스 로네와 젊은 제인 버킨이 이 집을 방문한 ‘이상한’ 커플로 등장했다. 네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며(특히 10대 같은 어린 딸 역의 제인 버킨 때문에) 결국 수영장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스릴러였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비거 스플래쉬>(2015)는 자크 드레이의 <수영장>을 리메이크했다. 장소는 이탈리아의 남쪽, 튀니지에 가까운 섬인 판테레리아(Pantelleria)이다. 이곳에 데이비드 보위 스타일의 로커 마리안과 그의 연인인 다큐멘터리 작가 폴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지중해의 이국적인 별장, 별장에 딸려 있는 아름다운 수영장, 그리고 섬 주변의 야만에 가까운 풍경이 사람의 긴장을, 신경을 기분 좋게 풀어놓는 곳이다. 두 사람은 집의 수영장에서, 또 섬의 작은 호수에서 적막에 가까운 쉼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곳에 마리안의 과거의 연인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해리가 1년 전에 찾았다는 ‘딸’ 페넬로페와 함께 오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2015)의 영향 때문인지, 다코타 존슨이 연기하는 ‘어린 딸’ 페넬로페의 존재가 우선 긴장감을 불러온다. 딸이라는데, 나이에 비해 자세가 너무 성숙해서다. 페넬로페는 ‘롤리타’를 생각나게 하는 선글라스를 끼고, 온갖 불안한 자세를 잡으며 나이 든 남자들 사이에, 그리고 한 여자 앞에 불편하게 서 있다.

해리가 느닷없이 이 섬을 방문한 이유는 옛 애인 마리안을 되찾기 위해서다. 마리안은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고(그를 친구로서만 반긴다), 내심 불안한 사람은 마리안의 애인 폴이다. 해리는 마리안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여긴다. 폴은 이런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모른 체하고, 마리안은 두 남자의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관계가 도착 첫날의 어색한 분위기다. 자크 라캉의 ‘삼각형’을 빌리자면, 세 사람은 상상계(해리), 상징계(폴), 실재계(마리안)의 주체로서 행동하는 셈이다. 말하자면 해리는 마리안과의 양자관계 속에만 있으니 지금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폴은 타자들을 모두 의식하고 있으니 짐짓 불안하고, 마리안은 이런 관계의 외부에 있는 듯 행동하고 있으니 어쩌면 가장 마음이 편할 것이다. <비거 스플래쉬>는 3일에 집중된 사건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첫날에 형성된 이 삼각형은 다음의 이틀 동안 그 꼭짓점의 주인을 바꿔가며 새로운 주체를,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흥미로운 구조를 갖고 있다.

<비거 스플래쉬>

‘팔스타프의 밤’에 일어난 일

<비거 스플래쉬>의 표면적 주인공은 해리다. 그가 사건을 추동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감독 구아다니노가 묘사한 해리는 ‘팔스타프’다. 해리의 도착과 함께 일행이 판테레리아 섬의 고대 공동묘지 유적지에 있는 야외식당에서 저녁을 즐길 때, 베르디의 오페라 <팔스타프>가 배경음악으로 연주되기 시작했는데, 이 음악은 해리의 행위와 늘 연결돼 있다. 짧게 소개하자면, ‘팔스타프’라는 인물은 허세로 가득 찬 자칭 기사로, 온갖 여성들에게 추근대다, 결국 사람들에게 혼이 나는 코미디 오페라의 주인공이다. <비거 스플래쉬>의 해리는 팔스타프처럼 행동한다. 말이 많고, 허세 기질도 농후하고, 주변에 여자 친구들이 넘치는데, 아마 거의 모든 여자들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었을 것 같은 난봉꾼이다.

사실 해리는 마리안에게 자신의 방문 목적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두 사람의 음악적 추억으로 남아 있는 롤링스톤스의 노래를 통해서다. 해리가 믹 재거를 흉내내며 롤링스톤스의 히트곡 <Emotional Rescue>를 부를 때, 그건 자신이 마리안을 ‘정서적으로 구원’하겠다는 희망일 테다. 해리는 믹 재거처럼, 또 팔스타프처럼 허세를 부리며, 지금 마리안에게 사랑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럴 때면 롤링스톤스 세대와는 멀어 보이는 폴(<러스트 앤 본>의 마티아스 쇼에나에츠가 연기한다)은 음악에서도, 또 세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약간 소외돼 보인다. 폴의 불안은 그렇게 커져가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팔스타프 해리’의 관심에서 약간 멀어져 있던 인물이 ‘딸’이라는 페넬로페다. 페넬로페가 해리의 진짜 딸일지에 대한 의문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풀어지지 않는다. 페넬로페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까지 모르고 있던 해리가 마치 율리시스가 10년간의 부재 끝에 아내 페넬로페에게 나타났듯, 1년 전에 갑자기 나타나 부친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비거 스플래쉬>의 둘째 날 이야기는 오페라처럼 여자 문제로 팔스타프가 곤욕을 치르는 밤인데, 동시에 페넬로페가 전면에 등장하는 밤이기도 하다. 이날의 ‘삼각형’은 페넬로페를 사이에 두고, 폴과 해리가 그리고 있다. 해리는 마치 율리시스가 귀환한 뒤 아내 페넬로페의 연적들을 처단하듯, 폴에게 적의를 품는다. 왜냐하면 그날 낮에 폴과 페넬로페는 따로 수영(과 아마 그 이상)을 즐겼고, 이 점이 해리를 언짢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리의 분노는 대가를 치른다. ‘수영의 비밀’을 자신만 알고 있는 듯 행동하는 폴(상상계), 모든 게 짐작되고 그래서 화가 난 해리(상징계), 그리고 짐짓 두 남자 사이의 경쟁심을 모르는 것 같은 페넬로페(실재계)의 ‘삼각형’이 둘째 날의 관계 구도다. 페넬로페의 부친 해리가 폴에게 적의를 품자, 폴이 반응하는 행동은 결과적으로 오이디푸스의 살의(殺意)다. 그래서 사랑의 금지를 명령하려는 해리에게 폴이 반응하는 그날 밤의 시퀀스가 <비거 스플래쉬>에서 가장 폭력적이다.

<비거 스플래쉬>

오이디푸스의 살의

구아다니노는 <아이 엠 러브>(2009)에서도 그랬듯 이탈리아영화 전통에 대한 오마주를 종종 드러낸다. <비거 스플래쉬>에도 네오리얼리즘의 미학에 경의를 표하는 장면들이 들어 있다. 이를테면 판테레리아 섬의 지역축제인 ‘성(聖) 가에타노의 날’ 촬영장면이다. 이 장면은 허구의 한 부분이 아니라, 현실이 그대로 허구 속에 들어온 순간이다. 허구의 양식인 리얼리즘을 리얼리티로 바꿔놓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허구의 경계에 잠시 균열이 생기고, 관객은 몰입의 동일시에서 벗어나 관찰자의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다. 특히 로베르토 로셀리니에 의해 발달된 이런 성찰적인 태도는 네오리얼리즘을 모더니즘영화의 선구로 해석하게 했는데, <비거 스플래쉬>에도 그런 태도가 계승돼 있다. 지역축제 장면 이외에, 판테레리아 주민이 리코타 치즈를 만드는 장면, 튀니지와 대단히 가까운 판테레리아 섬에 밀려드는 아프리카 난민들과 이들이 마치 닭장 속의 닭처럼 취급되는 현실을 삽입한 장면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마 관객이 <비거 스플래쉬>에서 몰입이 아니라 간혹 산만한 느낌을 받는다면, 구아다니노가 이전 작품에 비해 리얼리즘의 관습을 더욱 자주 위반해서일 것이다.

<비거 스플래쉬>의 마지막 장면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네오리얼리즘 걸작 <강박관념>(1943)에 대한 오마주다. 죄를 지은 커플이 경찰의 추적을 받으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위험하게 운전하는 장면이다. <강박관념>에선 짙은 안개가, <비거 스플래쉬>에선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가 시야를 가린다. 미래가 부정적이라는 뜻일 테다. <강박관념>의 커플은 죄의 대가를 치른다. <비거 스플래쉬>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차 안에는 영화의 처음처럼 마리안과 폴 커플이 앉아 있다. 두 사람은 ‘팔스타프의 밤’에 벌어졌던 사고의 혐의자로, 지금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다. 열린 결말이지만 이들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은 분명할 테다.

마지막 남은 ‘삼각형’은 폴과 마리안, 그리고 페넬로페가 그리고 있다. 마리안과 폴은 조금 전 공항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해리의 딸’ 페넬로페를 배웅했다. 세 사람은 사고에 대해서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리안은 사고에 대해 자기만 비밀을 알고 있는 듯 행동하고(상상계), 페넬로페는 마리안의 그 비밀까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유 있게 엷은 미소만 짓고 있다(상징계). 폴은 두 여성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실재계). 이런 관계에서 두 여성은 폴을 사이에 두고 서로 경쟁한다. 말하자면 마리안은 자기만 비밀을 알고 있으니, 폴과의 관계도 독점적이라고 여긴다. 반면에 페넬로페는 그 사실까지 다 알고 있기에, 여유 있는 미소를 짓는 것이다. 게다가 페넬로페는 폴과 ‘비밀의 수영’을 즐겼다. 누가 봐도 마지막 삼각형의 승리자는 페넬로페다. 공항에서 마리안이 불같이 화를 낸 것은 사랑의 패배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일 테다.

프로이트가 말하길, 사랑의 갈등이 전개되려면 네명의 남녀가 필요하다. 그 관계 안에 다양한 삼각형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비거 스플래쉬>는 3일의 이야기로, 관계의 다양함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흘 동안에 반복되는 행위는 상상계의 주체가 상징계의 주체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이디푸스(상상계)가 모르고 했지만, 친부인 테베의 왕 라이오스(상징계)를 죽이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같다. 연적(戀敵)에 대한 살의다. 아마 우리는 사흘의 이야기에서 특정 인물이 아니라, 네 캐릭터와 번갈아 가며 동일시를 경험할 것 같다. 최종적으로는 정체성의 불안과 혼란 속에 부유하는 자신을 목격하는 셈이다. 그런 성찰의 시간을 유도하는 게 <비거 스플래쉬>의 가장 큰 미덕이다.

<비거 스플래쉬>

원작 <수영장>과 리메이크들

<비거 스플래쉬>는 프랑스 범죄영화 <수영장>(1969)의 리메이크다. 이전의 리메이크는 프랑수아 오종의 <스위밍 풀>(2003)이다. 순서대로 정리하면 <수영장>이 먼저 나온 뒤, <스위밍 풀>, 그리고 <비거 스플래쉬>가 발표됐다. 세 영화 모두 주요 인물로 남녀 네명이 등장하고, 여성 가운데는 세대가 다른 ‘어린’ 여성이 포함돼 있다. 이들 네명 사이의 관계의 변화가 스토리의 강점이다. 그런데 작품마다 주목하는 주인공은 조금씩 다르다.

<수영장>의 주요 인물은 폴 역에 출연한 알랭 들롱이다. 작가인 그가 마리안 역의 로미 슈나이더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그 과정의 긴장이 <수영장>의 매력이다. 상대적으로 방문자인 해리와 페넬로페의 역할은 약화돼 있다.

<스위밍 풀>에선 ‘젊은 여성’ 페넬로페가 단연 강조돼 있다(이 영화에선 이름이 줄리로 바뀌었다). 프랑스 배우 뤼디빈 사니에르가 위험한 여성 역을 매력적으로 연기한다. 남자 두명은 대단히 왜소해져 있다. 페넬로페와 마리안(샬롯 램플링), 두 여성이 이야기를 거의 다 끌어간다. 오종의 각색은 원작 <수영장>을 대거 수정했다.

그리고 이번의 <비거 스플래쉬>에선 ‘방문자’ 해리가 전면에 강조돼 있다. 레이프 파인즈의 열정적인 연기를 확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원작과 리메이크 작품들 모두 강조하는 인물이 각각 다르다. 그만큼 네명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매력적이다. 특히 <비거 스플래쉬>는 네명 모두에게, 주인공 혹은 주인공에 가까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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