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TCA가 정확히 뭐예요?” 지난 7월27일 아침, 넷플릭스의 초청으로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 로비에 모여든 수십명의 외신기자들 중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꽤 있었다. 헛갈릴 만하다. 넷플릭스로부터 초청받았지만 행사를 여는 주최는 TCA라니, 도대체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이다. 이쯤에서 TCA(The Television Critics Association)라는 집단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하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풀어서 말하자면 TV비평가협회 정도가 되려나. TCA는 미국과 캐나다를 기반으로 TV프로그램에 대한 비평을 쓰는 200여명 이상의 글쟁이들이 모인 단체다. 하지만 그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놓은 협회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매년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수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TCA가 주최하는 두번의 프레스 투어에 모여든다. 이 자리에서는 각 방송국 관계자들이 방송 체계의 향후 라인업을 소개하고, 그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는 미국 드라마의 제작자, 출연진들이 총출동해 TCA 회원들과 질의응답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TV비평가들에게 TCA의 프레스 투어는 영화기자들이 영화제를 대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연례행사다. 오늘은 넷플릭스의 드라마 라인업을 관전하고, 내일은 <PBS> 드라마의 제작진을 만나고, 그다음날은 <HBO>가 마련한 행사에 참석하는 등 매일매일 다양한 TV플랫폼의 관계자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17일간 열린 TCA 프레스 투어는 7월27일 넷플릭스의 라인업 소개로 시작됐다. 곳곳에서 넷플릭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로고가 보였지만 행사장은 드라마 라인업을 소개하는 현장이라기보다 마치 거대한 회담장을 연상케 했는데, 그건 전적으로 행사의 규모 때문이었을 거다. 행사장 내부의 사진촬영이 금지돼 그 장관을 말로만 설명해야 하는 게 못내 아쉽다. 100여명이 넘는 TCA 평론가들이 중앙의 좌석을 빼곡히 채우고, 그 주변을 둘러싼 원탁 테이블에 전세계에서 초청받은 외신기자들이 앉아 있는 풍경을 말이다. 이쯤에서 TCA의 평론가들은 무엇을 하고, 외신기자들은 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독자들도 있을 거라 믿는다. 행사 도중 제작진에게 질문을 던지는 건 오직 TCA 회원인 비평가들만 가능하지만, 무대의 불이 꺼지고 특정 프로그램의 라인업 소개가 끝나면 외신기자들 역시 무대로 올라가 제작진과 난상토론을 벌일 수 있다. 사전에 시간과 장소를 약속한 뒤 인터뷰를 잡는 게 일반적인 대부분의 기자들은 경호원이나 관계자의 제지 없이 무대에서 자유롭게 제작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을 흥미로워했다.
이날의 자리에는 넷플릭스의 최고콘텐츠책임자 테드 사란도스를 비롯해 넷플릭스의 인기 오리지널 시리즈 <나르코스>와 <기묘한 이야기>의 제작진(이어지는 인터뷰 참조), 10여년 만의 리바이벌로 공개 전부터 기대감을 불러모으고 있는 <길모어 걸스: 어 이어 인 더 라이프>와 마블 슈퍼히어로 드라마의 궤를 잇는 <루크 케이지>, 엘리자베스 2세의 삶을 조명한 <더 크라운>, 1970년대 뉴욕 뒷골목 힙합신의 공기를 되살려낸 <더 겟 다운>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특히 화제가 되고 있는 10여편 드라마의 제작진이 참석해 기자와 평론가들을 만났다. 특히 테드 사란도스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우리의 경쟁자는 <포켓몬 GO>와 <스타워즈> 영화, <쥬라기 월드> 같은 작품들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시끌벅적한 세계에서 주목을 끄는 작품들과 경쟁할 것이다. 그러려면 (콘텐츠에 투자를 함에 있어서도) ‘빅 스윙’을 날려야 하지 않겠나.” <물랑루즈>의 감독 바즈 루어만이 연출하는 드라마 <더 겟 다운>의 예산이 1억2천만달러 이상이라는 점은 이러한 그의 말을 뒷받침한다. 테드 사란도스는 넷플릭스의 총콘텐츠 예산을 현재의 60억달러 기준 이상으로 확대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넷플릭스의 라인업을 관전하기 위해 모여든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의 ‘드라마 정상회담’은 이른 아침인 오전 8시부터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이어지는 지면에서는 7월28일 넷플릭스가 별도로 마련한 프레스 데이에서 만난 <기묘한 이야기>와 <나르코스> 제작진과의 만남을 전한다.
‘넷플릭스 데이’의 말, 말, 말
“<더 크라운>의 이야기는 합리적인 추측으로부터 시작했다. 아마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의 아버지 조지 6세가 56살로 죽기 전 꽤 오랫동안 즉위를 예상해왔을 거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갑작스럽게 엘리자베스는 머리에 왕관을 써야 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여왕이 된다는 건 그녀와 그녀의 남편, 여동생, 엄마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까. 우리는 이게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더 크라운>의 크리에이터 피터 모건, 그가 각본을 쓴 영화 <더 퀸>과 이 드라마는 어떻게 다를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중이 흑인 문화를 접할 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시리즈의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내 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 막중해서다. 흑인이 아닌 슈퍼히어로들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이 영웅으로서 경험하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중략) 나는 루크 케이지가 좋은 슈퍼히어로이기에 자랑스럽다. 흑인 커뮤니티 또한 그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졌으면 한다.”
-<루크 케이지>의 주연배우 마이크 콜터, 흑인 슈퍼히어로를 연기한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묻자
“10년 전, 나는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멜 샤바즈(뉴욕의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 속 두 소년의 모습을 보았다. 아마도 1979년 사진이었던 것 같은데, 저 당시의 뉴욕이 저렇게 크리에이티브한 곳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창조성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지더라. 그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나는 대답하기 위해 거리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더 겟 다운>의 크리에이터 바즈 루어만, 드라마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 쇼는 더이상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그녀가 마주하는 것들과 투쟁해야 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되었다. 여전히 (극중)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는 다이내믹하겠지만, 우리는 더 성장한 동시에 같은 사람이다.”
-<길모어 걸스: 어 이어 인 더 라이프>의 여주인공 로렌 그레이엄, 10여년 만에 돌아온 소감과 변화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