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안경 너머의 비밀 – 황정민
2016-09-20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치인. 누군가가 앞을 막으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아랫사람(정우성)을 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인. <아수라>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박성배 안남 시장은 정치인인지 사기꾼인지 조직 폭력배인지 헷갈릴 만큼 질 나쁜 정치인이다. 정치권력을 이용해 개발 사업을 무분별하게 벌이는 모습은 현실의 어떤 정치인이, 막말을 밥 먹듯이 하는 모습은 또 다른 어떤 정치인이 연상되는데, 황정민은 박성배가 특정인을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란다. “매일 뉴스에서 쉽게 볼 수 있지 않나. 그 수많은 얼굴들이 좋은 표본이자 교과서였다. 덕분에 접근하기가 편했다.”

되돌아보면 황정민이 맡은 악역은 손에 꼽을 정도다. 마흔편 가까이 되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신세계>의 정청이나 <달콤한 인생>의 백 사장을 제외하면 그는 대체로 불의를 보면 못 참고(<베테랑> <검사외전> <모비딕>), 가족과 동료를 위해 제 한몸 희생한(<히말라야> <국제시장>) 순정파(<너는 내 운명> <남자가 사랑할 때>)였다. 하지만 그는 박성배가 단지 악역이라서 <아수라>에 출연한 건 아니다.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윤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아수라>의 세계가 흥미로웠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그야말로 아사리판이었다. 그게 윤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한국 사회와 흡사해 보였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과 관련해 관객에게 윤리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김성수 감독에 대한 ‘팬심’이 출연을 결정하는 데 한몫했다. 황정민이 김성수 감독과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세대 중에서 김성수 감독님 영화를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그간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없었다.”

박성배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참고할 만한 표본은 널렸지만, 자신의 얼굴에 박성배의 삶을 새겨넣는 건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실제로 박성배 같은 정치인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떤 본성이 얼굴에 담긴다. 그런 사람들의 얼굴이 내 얼굴에도 담길 수 있을까. 어떤 표정도 짓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는데, 그건 나도 모르는 내 한계를 뛰어넘는 작업이었다.” 그가 안경을 쓰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지금까지 황정민이 안경을 쓰고 출연한 영화는 <검은 집>(2007), 딱 한편뿐이었다. “관객에게 박성배의 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박성배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안경 너머로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안경은 박성배의 속내를 가리는 도구가 되었고, 황정민은 안경 쓴 자신의 얼굴에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쓰기 전에는 어떨까 상상만 하다가 막상 써보니… 어? 괜찮은데? (웃음) 어쨌거나 박성배의 얼굴이 제대로 보여질 거라는 믿음이 분명히 있다.”

황정민은 이미 다음 작품인 <군함도>(감독 류승완)를 촬영하고 있다. 무더위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광대뼈는 도드라져 보였고, 얼굴은 새카맣게 그을었으며, 목은 쉬었다. 대롱대롱 매달린 콧수염이 위태로워 보일 만큼 그는 앙상하게 말랐다. “총 120회차 중에서 40회차를 찍었으니 1/3 정도 소화했다. 촬영 초반부에는 군함도에 징집돼 강제 노동을 하는 큰신들이 많아서 되게 힘들었다. 살도 많이 뺐다. 닭가슴살만 먹고 68kg까지 뺐다.” <군함도>가 끝난 뒤 곧바로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도 일만 하는 일정이다. “다음 작품 준비하는 시간이 다 쉬는 거다. 나중에는 주인공을 하고 싶어도 못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냐고? 지금보다 젊었을 때부터 계속 하고 있다. 더이상 주인공을 맡지 못할 날이 올 거다.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연기 생활을 잘 정리하려면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을 하는 황정민의 표정은 정말 끄떡없었다.

정만식이 황정민에게

“황정민 형과는 <부당거래> <모비딕> <남자가 사랑할 때> <베테랑>에 이어, 다섯 번 째 만남이다. 지금 <군함도>도 같이 찍고 있으니 여섯번 함께하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영화에서 많이 안 붙을수록 영화가 잘되더라. <아수라>에서도 앞에 한번, 뒤에 한번 붙어서 잘될 것 같다. (웃음) 연기에 있어, 정민 형에게는 본능적으로 신뢰감이 간다. 어떻게 던져도 잘 받아줘서 부담감 없이 막 던질 수 있다. (웃음)”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실장 / 헤어 이범호 원장 / 메이크업 임미현 원장 / 의상협찬 이스트하버서플러스 by 샌프란시스코마켓, pt01 by 란스미어 유니페어, 랄프로렌 퍼플라벨, 란스미어, 꼬르넬리아니, 엠포리오 아르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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