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시네아스트의 극장 - 아스가르 파르하디, 올리비에 아사야스, 짐 자무시, 켄 로치
2016-09-26
글 : 씨네21 취재팀
<세일즈맨>

<세일즈맨> The Salesman

아스가르 파르하디 / 이란, 프랑스 / 2016년 / 123분 / 아시아영화의 창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곤경에 처해 있다. 씨민은 가정부가 왜 치매에 걸린 자신의 아버지를 묶어두고 외출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이유 때문에 가정부를 해고하는 과정에서 유산하게 한 건 자신의 책임이 맞는지를 고민하고(<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아마드는 큰딸 루시에게서 아내의 비밀을 들은 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 윤리적인 딜레마의 기로에 선 그들은 자신의 난처함과 상대방의 처지를 꼼꼼히 따져본다. 그러면서 진실이 천천히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서스펜스가 차근차근 구축된다.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윤리적 질문을 던진 뒤, 그 질문과 맞닥뜨린 인물들의 난처함을 보여주는 데 일가견이 있다.

전작이 그랬듯이 <세일즈맨> 역시 실타래가 쉽게 풀리지 않는 이야기다.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와 라나(타라네 알리두스티) 부부는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 그들은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에마드가 일하러 간 어느날, 라나는 자신의 아파트에 몰래 침입한 괴한의 습격을 받고 부상을 당한다. 에마드는 아파트의 전 세입자가 두고 간 물건을 단서 삼아 괴한을 찾아나선다. 에마드가 괴한을 찾는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서스펜스를 구축해 나간다. 하지만 에마드와 라나가 괴한을 잡아 그의 죄를 응징하는 영화의 후반부는 (아내를 다치게 한 죄에 대한) 복수, (예상치 못한 인물임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연민, (괴한이 어떻게라도 될까봐 가지게 되는) 걱정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숨 쉴 틈 없이 쏟아진다. <세일즈맨>은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이다. - 김성훈

<퍼스널 쇼퍼>

<퍼스널 쇼퍼> Personal Shopper

올리비에 아사야스 / 프랑스 / 2016년 / 105분 / 월드 시네마

굳이 장르로 구분하자면 <퍼스널 쇼퍼>는 유령(혹은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이 주인공을 움직이게 하고, 서사에 긴장감을 구축하는 유령영화다. 전기물(<카를로스>(2010)), 시대극 <5월 이후>(2012)), 스릴러(<보딩 게이트>(2007)), 미스터리 범죄물(<데몬러버>(2002))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필모그래피를 구축해온 것을 떠올려보면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유령영화를 만든 건 아주 놀랄 일은 아니다.

파리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유명 모델을 대신해 옷과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일을 한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남자친구와 페이스타임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집에서 모델의 옷을 입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게 그녀의 일상이다. 어느 날, 모린에게 한통의 메시지가 온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보낸 그 문자 메시지는 모린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 판타지(혹은 초현실)와 현실의 접점을 잠깐 엿보인 감독의 전작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와 달리 <퍼스널 쇼퍼>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현실과 판타지 같은 각기 다른 두 세계를 오가며, 이미 (스마트폰 같은 도구를 통해) 가상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을 은유한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다. - 김성훈

<패터슨>

<패터슨> Patterson

짐 자무시 / 미국 / 2016년 / 113분 / 월드 시네마

영화감독, 배우, 에세이스트, 작곡가. 미국 감독 짐 자무시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이처럼 일상이 곧 예술의 한 과정인 그가 예술에 대한 예술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그가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하는 예술의 형식이 ‘시’라는 점이 흥미롭다.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일주일을 조명한다.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 로라(골시프테 파라하니), 불도그 마빈과 함께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더불어 그는 일과 도중 틈틈이 시를 쓰는 아마추어 시인이다. 영화는 패터슨이 도시를 유랑하며 마주하게 되는 풍경과 일상에서 맺는 관계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단상들이 시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좇는다.

영화 <패터슨>의 매력은 시의 구조를 닮은 형식에 있다고 하겠다. 패터슨의 일과는 일견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달라진다. 이 반복과 차이에서 오는 일상의 리듬감을 음미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다. 그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반전이 없음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짐 자무시의 위트와 연륜 덕분이다. 선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과 블루톤의 색감이 도드라지는 도시 패터슨의 이곳저곳, 애덤 드라이버의 중저음 목소리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 영화는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 장영엽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켄 로치 / 영국 / 2016년 / 100분 / 월드 시네마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감독 켄 로치의 화려한 귀환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2013년 <지미스 홀>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는 그 결정을 번복한 뒤 다시금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내놓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시스템에 대한 날선 비판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휴머니즘이 녹아 있는 전형적인 켄 로치 스타일의 신작이다. 한때 목수였던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잠시 일을 쉰다. 실업급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간 관공서에서는 컴퓨터 사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다니엘에게 인터넷을 이용해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한다. 모든 업무를 매뉴얼에 따라 진행하며,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은 서로 다른 부서로 떠넘기는 관공서의 비효율적인 일처리 방식은 다니엘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점점 더 앗아간다. 다니엘이 관공서에서 우연히 만난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이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점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도 끝까지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켄 로치 영화는 대개 현실을 에둘러 보여주는 법이 없다. 자본주의 영국 사회의 초상은 21세기의 빠른 속도감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진 사람들의 애환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끝에서 이 브리티시 시네마의 거장이 보여주려 하는 건 비관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새로움은 없을지 몰라도 켄 로치 영화는 언제나 가슴 밑바닥을 뜨거워지게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영국 감독이 우리 곁을 너무 빨리 떠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 - 장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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