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새롭게 기억할 이름들 - 후카다 고지, 토비아스 놀레, 라리차 페트로바,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2016-09-26
글 : 씨네21 취재팀
<하모니움>

<하모니움> Harmonium

후카다 고지 / 일본, 프랑스 / 2016년 / 118분 / 아시아영화의 창

일본 홈드라마 계보도가 존재한다면 후카다 고지의 <하모니움>은 야마다 요지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홈드라마의 정반대 지점에 놓일 만한 영화다. 가족을 통해 인생의 어떤 의미를 찾는 두 선배 감독의 작품과 달리 <하모니움>은 한 외부인이 평범한 가정의 일상에 끼어들어 가정을 파멸시키는 이야기다. 도시오(후루타치 간지)는 철공소를 운영하며 아내(쓰쓰이 마리코),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친구 야사카(아사노 다다노부)가 수감 생활을 끝내고 그를 찾아온다. 도시오는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야사카를 철공소에서 일하게 해주고, 자신의 집에서 잠깐 머물게 한다. 도시오의 아내는 불청객 야사카와의 생활을 불편해하다가,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야사카를 본 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 야사카가 도시오 가족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아갈 때쯤, 어떤 사고가 도시오 가족에게 벌어진다. <하모니움>은 평범한 가족의 일상에서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예민하게 포착한 뒤, 망설이지 않고 가족의 평화를 갈가리 찢어놓는다. 아주 작은 사고가 범죄가 되고, 그 범죄가 도시오 가족의 증오를 키운 뒤, 그 증오가 가족에게 씻기지 않을 죄의식으로 남겨지면서 일상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데, 서사를 전개하는 솜씨가 아주 노련하다. <하모니움>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 김성훈

<알로이스>

<알로이스> Aloys

토비아스 놀레 / 스위스, 프랑스 / 2016년 / 91분 / 플래시 포워드

영화 <타인의 삶> 속 감시하는 자의 고독한 일상과 <수면의 과학> 속 상상의 세계에 기반한 로맨스를 한 군데 모아놓으면 이런 영화가 될까. 알로이스(게오르그 프레드리히)는 불륜 현장을 미행하고 낱낱이 기록하는 사립탐정이다. 어느날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가 깬 그는 누군가가 비디오테이프들을 훔쳐간 사실을 알게 된다. 알로이스의 모든 소지품을 갖고 있다는 낯선 여성 르네는 전화를 통해 게임 하나를 제안한다. 수화기 너머 전하는 자신의 지시를 따르는 일이다. “눈을 감고 벽에 머리를 기대라. 숲을 느껴보아라.” 알로이스의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곳에는 죽은 아버지도 있고 아름다운 르네, 다정한 이웃들도 있다. <알로이스>는 스위스의 신성 토비아스 놀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알로이스의 의뭉스러운 생활을 중점적으로 묘사하는 초반은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무드가 강하다. 현실의 영역을 넘어서는 영화 중반부터는 세상에서 고립된 두 남녀의 재기발랄한 로맨스가 중심이 된다. 현대인의 고독한 생활과 그 내면에 자리한 공생에 대한 바람을 절제된 화면과 균형잡힌 연출 감각으로 표현한 수작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라스팔마스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 김수빈 객원기자

<신 없는 세상>

<신 없는 세상> Godless

라리차 페트로바 / 불가리아, 덴마크, 프랑스 / 2016년 / 99분 / 플래시 포워드

불가리아의 작은 마을, 가나(이레나 이바노바)는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간병한다. 그녀가 이 일로 노리는 건 따로 있다. 저항할 힘 없는 노인들 몰래 그들의 신분증을 훔쳐 암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그 돈으로 가나는 모르핀을 사고 생활을 이어간다. 가나는 애인보다는 동업자에 가까운 알레코와 함께 일상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가난, 중독, 친밀한 관계의 부재 속에서 가나는 새로운 환자 요안을 만난다. 요안은 은퇴한 합창단장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음악을 가르친다. 이상하게도 가나는 그의 음악에 감응을 받고 자신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인지 자문하게 된다. 가나는 어긋나버린 인생을 바로잡고 싶지만 왠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될 뿐이다.

우울하고 스산한 화면 속 날씨만큼이나 가나의 일상에는 생기나 활력의 기운을 찾을 수 없다. 이마 뒤로 쓸어올려 질끈 묶은 머리, 특색 없는 작업복, 말수 적고 퉁명해 보이는 그녀의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힘 없는 노인들 사이에서 가나는 가장 맥 없어 보인다. <신 없는 세상>이라는 제목 그대로 가나는 윤리나 죄의식이 없는, 신의 세계 밖에 방치된 인간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인물과 사물에 근접해 포커스인과 포커스아웃을 오가며 경계를 넘어선 듯한 가나의 상황을 은유해 보여준다. 1.33:1의 화면비에서는 단조로운 가나의 일상과 메마른 풍광이 이어지며 극을 더없이 쓸쓸하게 만든다. 가나가 느끼는 욕구 불만과 그런 가나의 마음을 이용하는 부패한 경찰 등의 출연은 이 황량함을 배가시킨다. 라리차 페트로바 감독의 데뷔작으로 올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 - 정지혜

<아쿠아리우스>

<아쿠아리우스> Aquarius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 브라질 / 2016년 / 145분 / 월드 시네마

아쿠아리우스. 얼핏 수족관을 연상케 하는 이 영화의 제목은 브라질 항구도시 헤시피에 위치한 어느 해변가 빌라의 이름이다. 창문을 열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이곳은 음악평론가 클라라(소니아 브라가)가 일생을 살아온 보금자리다. 아쿠아리우스를 철거해 해변가를 개발하고자 하는 업자들은 빌라의 주민들을 설득해 모두 내보내지만, 클라라는 자신의 사랑과 추억이 담긴 아쿠아리우스를 떠날 마음이 없다. 다급해진 개발업자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클라라에게 은근한 위협을 가하기 시작한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브라질리언 시네마의 주목할 만한 기대주다. 언론사 기자였던 그는 마흔다섯에 첫 장편영화 <네이보링 사운드>(2012)를 완성했는데, 그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헤시피를 배경으로 브라질 사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직면한 불안과 위협을 영민하게 포착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시 헤시피를 영화의 주요 무대로 삼은 <아쿠아리우스> 또한 시공간을 유용하는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개성 있는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안식처를 급습하는 이방인처럼 아쿠아리우스 빌라의 외부에서 내부로 대담하게 이동하는 부감숏, 일종의 타임캡슐처럼 같은 장소의 다른 추억을 상징하는 여러 소품들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브라질 여배우 소니아 브라가(그녀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였다)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뜨겁게 사랑하고,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그만큼 뜨겁게 투쟁하는 클라라는 온전히 소니아 브라가의 헌신으로 완성된 캐릭터다. 더불어 이국적이고 드라마틱한 브라질 뮤직의 정수를 음미할 수 있는 영화. – 장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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