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장르의 숲 – 조현훈, 나비드 마흐무디, 마렌 아데, 핀 에드퀴스트
2016-09-26
글 : 씨네21 취재팀
<꿈의 제인>

<꿈의 제인> Jane

조현훈 / 한국 / 2016년 / 100분 /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제가 처음 배운 말은 거짓말이었데요… 저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예요.’ 소현(이민지)의 내레이션으로 <꿈의 제인>은 시작된다. 이 말은 마치 앞으로 펼쳐질 소현의 미래를 예견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가출한 소현은 자신을 돌봐준 정호가 사라지자 홀로 남는다. 소현은 정호의 애인인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을 우연히 만나 제인이 엄마로 있는 가출팸(가출한 아이들이 가족처럼 함께 사는 공동체)에 들어간다. 제인은 소현에게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사는 이유와 함께 살아갈 때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들려주기도 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소현은 제인에게서 보살핌의 안온함과 어떤 동지애를 느낀다. 하지만 이들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한다. 영화는 특별히 장(章)의 구분을 두지 않았음에도 세개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세 이야기는 서로 연결돼 있다. 소현의 꿈인지 현실인지, 혹은 둘 다 소현이 경험한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벌어진 시간도 순차적이지 않다. 하지만 서사를 따라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 중심에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지만 금방 혼자가 되고 마는 소현이 있다. 소현과 제인은 비슷한 아픔을 겪는다.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도치 않게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의 끝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행복이 아니다. 그 대신 불행의 앞에서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용기에 가까운 온기다. 가출팸의 현실, 세상의 편견과 자연스레 마주하면서. 조현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사회상 짙은 버디 무비로 볼 수 있다. 2016 아시아영화펀드(ACF) 후반작업지원펀드로 제작됐다. – 정지혜

<이별>

<이별> Parting

나비드 마흐무디 / 이란, 아프가니스탄 / 2016년 / 78분 / 뉴커런츠

최근 국제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난민과 불법 이주자다. 해마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지중해, 쿠바, 멕시코 등 세계 곳곳에서 많은 난민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로 인한 불법 이주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친구가 있는 이란으로 밀입국해 여자친구를 데리고 터키로 밀항하려는 불법 이주자 나비의 사연을 생생하게 그린 드라마다. 이란 테헤란. 나비와 페레시테는 연인이다. 페레시테는 5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불안한 정국 때문에 가족과 함께 이란으로 이주했다. 나비가 이란에 밀입국한건 페레시테를 만나 터키로 건너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두 사람은 터키는커녕 이란을 탈출하기조차 쉽지 않다. 터키행 보트까지 실어주는 승용차 안에서 페레시테는 이란 운전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가 하면, 자신의 여자친구를 성추행한 운전사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나비와 페레시테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강제로 내려야 한다. 밀입국자라는 신분 때문에 나비는 교통비를 되돌려받지 못하고, 억울한 심정을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연인은 이란을 탈출할 수 있을까? 터키나 다른 유럽 국가로 가더라도 그곳에서 헤어지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여섯살 때 부모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으로 이주해온 나비드 마흐무디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다. – 김성훈

<토니 에드만>

<토니 에드만> Toni Erdmann

마렌 아데 / 독일 / 2016년 / 162분 / 월드 시네마

영화제에서 가장 보기 드문 장르의 영화는? 그건 바로 코미디다. 웃음의 미덕을 지닌 영화들은 종종 아트하우스 상영작의 진중함과 무게감에 눌려 페스티벌에서 설 자리를 잃곤 했다. 독일의 신예 여성 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에드만>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한편으로, 국제영화제 무대에서 코미디 장르의 권위를 다시금 끌어올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먹한 부녀가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일에 치여 살아가는 딸(산드라 휠러)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자 하는 아버지(피터 시모니셰크)가 있다. 그의 이름은 빈프리트. 아버지는 또 다른 자아인 ‘토니’로 변신해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거나 틀니를 끼고 딸의 주변을 맴돈다. 문제는 이들의 타이밍이 번번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 장소마다 나타나 동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주곤 하는 아버지의 존재는 딸에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이들 부녀의 엇갈리는 소통 방식은 <토니 에드만>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질료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후반 40여분에 있다. 집단 누드 신과 털북숭이 캐릭터의 등장,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가라오케 신(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일단 영화를 보시라)은 눈물을 쏙 빼놓게 웃기다. 종종 웃어야 할지 난감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신예 감독의 독특한 유머 코드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 마렌 아데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려는 커플을 조명한 <에브리원 엘스>로 지난 200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유럽영화계의 라이징 스타다. – 장영엽

<배드 걸>

<배드 걸> Bad Girl

핀 에드퀴스트 / 호주 / 2015년 / 87분 / 플래시 포워드

반항기 가득한 17살 소녀 에이미(사라 웨스트)는 소년원에서 나와 양부모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간다. 이사 첫날부터 에이미는 또다시 가출을 단행한다. 인적 드문 마을에서 에이미는 우연히 또래 소녀 클로이(사마라 위빙)를 만난다. 어쩐지 에이미는 그녀에게 시선이, 마음이 간다. 때마침 클로이가 에이미 집의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둘은 더 가까워진다. 에이미는 진짜 부모를 찾고 싶다. 에이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클로이는 자신이 그 일을 돕겠다고 나선다. 클로이가 에이미를 이끌수록 에이미는 더 위협적인 상황에 빠져든다. 한적한 시골마을, 외딴집,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소녀의 등장과 그 파국. <배드 걸>은 스릴러 장르영화에 충실한 외적 조건들을 설계하고 에이미 가족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 여기에 자신의 태생에 대한 고민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에이미와 또래의 클로이가 벌이는 성적인 시선과 관음이 이 스릴러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영화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에이미의 탈주와 클로이의 광적인 추격으로 이어지며 심리전과 액션극으로까지도 확장된다. 에이미와 클로이를 연기한 사라 웨스트와 사마라 위빙의 연기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더 로드>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의 음악감독 워런 엘리스의 사운드도 귀 기울여보자. –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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