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둘 중 하나다. 아이거나, 어른이지만 역시 아이거나. 신체연령과 관계없이 세계의 질서에 진입하지 못한 무지하고 미성숙한 상태에 있는 이들을 아이들이라 한다면, 팀 버튼에게 아이들이란 정상성의 범주에서 탈주해 비정상의 세계를 활보하는 존재들이다. 죽은 반려견을 되살려낸 <프랑켄위니>(2012)의 빅터, 토끼를 쫓아 이상한 나라로 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의 앨리스(미아 바시코프스카), 양손 대신 가위가 달린 <가위손>(1990)의 에드워드(조니 뎁), 유령을 보는 <비틀쥬스>(1988)의 리디아(위노나 라이더)까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과는 다른 기이한 능력을 지닌 팀 버튼의 아이들은 언제나 현실보다는 비현실,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곳에 서 있으며, 비이성과 광기의 세계를 대변한다. 기존 질서에 포섭되지 않은 그들은 세계와 불화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한바탕 흐려놓거나 꿈과 환상 속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세계는 아이들의 악몽처럼 기형적으로 데포르메된 기괴한 양식으로 나타난다. 악몽의 세계를 관장하는 팀 버튼은 이상한 아이들의 편에서 정상성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제기하며, 비정상의 상태를 적극 옹호한다. “내가 이상한 건가요?” “맞아, 넌 비정상이야, 그런데 비밀을 말해주자면, 멋진 사람들은 다 그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중계하는 아이들
팀 버튼은 자신의 영화 속 아이들과 닮아 있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친구 없는 외톨이였으며, 호러영화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를 숭상하는 괴짜였던 그는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디즈니에 입사해 자전적인 첫 단편애니메이션 <빈센트>(1982)를 만든다. “모든 건 네가 생각해낸 것일 뿐이야. 넌 고통받지도 미치지도 않았어. 넌 그저 어린애란다.” 빈센트의 어머니가 빈센트 프라이스와 추리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를 숭배하며 공포스러운 것들을 상상하는 빈센트에게 건네는 말이다. 어른들의 말대로 공포와 광기, 괴물의 세계는 현실과 괴리된 어린애의 공상일 뿐일까? 그러나 ‘네가 생각해낸 것일 뿐’인 것들은 팀 버튼의 세계에서 그 어떤 것보다 실재한다. 어린애의 공상은 세계를 잠식하고, 그는 그림자에 먹히고 만다.
자폐적인 첫 단편에서 나아가 두 번째 단편 <프랑켄위니>의 빅터와 <비틀쥬스>의 리디아는 영매로서 현실의 세계와 비현실의 세계를 중계한다. 사랑하는 반려견 스파키를 잃은 빅터는 죽은 스파키를 되살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리디아는 유령과 친해져 부모에게 통역을 해준다. 아이들의 상실과 소외는 프랑켄슈타인과 유령을 현실로 불러낸다. 어른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믿는 아이들은 팀 버튼에게 영화라는 환상을 펼쳐내는 영매인 것이다. 영화란 마술은 이미 팀 버튼의 아이들에겐 진짜다. <피위의 대모험>의 언제나 해맑은 피위(폴 루벤스)는 자신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 앞에서 “볼 필요 없어. 이미 난 경험했으니까”라며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극장을 떠난다. 그의 자전거는 다시 괴상한 장난감과 엉뚱한 모험이 가득한 그만의 삶 속으로 향할 것이다.
소환술사이자 영매인 아이들은 때때로 마녀, 괴물 그 자체의 모습으로 영화 속에 나타난다. <슬리피 할로우>(1999)의 소녀 카트리나(크리스티나 리치)는 주술을 사용하는 마녀이고, <가위손>의 소년 에드워드는 양손에 가위가 달린 괴물이다. 그러나 그들은 외로울지언정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과 선의를 지닌 아이들이다. 카트리나는 수사관 크레인에게 사악한 마녀로 의심받지만 실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주술을 사용한 것뿐이고, 에드워드는 양손 대신 위협적인 가위를 휘두르지만 자그마한 호의에도 놀라며 사람들의 정원을 조경하고 머리 스타일을 바꿔주는 일에 기뻐하는 소년이었다. 팀 버튼의 공포의 대상들은 대개 어리숙하고 무해하고, 위험하기보단 장난스러우며,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죽음, 유령, 괴물, 마녀 등 어둠의 소품들은 소심하고 외로운 아이, 죽었지만 여전히 해맑은 강아지 등 소외된 약자의 모습으로 재현되며, 이 아이러니는 안쓰럽고 짠하며 애틋한 사랑스러움마저 자아낸다.
영원한 소년성을 간직한 이야기
팀 버튼의 이상한 아이들의 남다른 모습과 능력은 사람들의 오해를 사고 질서를 교란시키지만, 결코 세계를 파괴하거나 절멸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지 않는다. 아이들의 광기와 공상은 정상성을 조롱하고 전복해 보이지만 한 차례의 혼돈을 통해 정화작용을 하며 약간의 긍정적 변화와 함께 질서를 회복 시키곤 한다. <프랑켄위니>의 빅터는 반려견 스파키를 되살려내 혼란을 빚지만, 스파키는 영웅적으로 사람을 구해내 마을 사람들과 공존한다. 빅터는 <유령신부>(2005)에 같은 이름과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기득권의 질서 안으로 편입되기 직전 유령신부에게 끌려가고, 마을은 유령들의 연회로 시끌벅적해진다. 하지만 선한 유령신부는 빅터를 위협하는 적을 제거한 뒤 그를 원래의 신부에게로 돌려보내고, 빅터는 유령 세계와 아름답게 결별하며 결혼에 성공한다. <비틀쥬스>의 리디아는 부모를 싫어하는 딸이자 자살을 꿈꾸는 외톨이였지만 유령 부부라는 친구를 얻은 후 유령과 함께 삶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한다. 한편 <팀 버튼의 화성침공>(1996)에서 쓸모없다는 구박을 받던 너드 소년 리치(루카스 하스)는 화성인을 물리치는 음악을 발견해 세계를 구하고, 무능력한 대통령부부 대신 만사에 시니컬한 그의 딸 태피(내털리 포트먼)가 리치를 치하한다. 해피엔딩과 함께 아이들은 세계를 계승한다. 팀 버튼의 세계에서 이상한 아이들은 세상을 파괴하기보단 궁극적으로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 존재에 가깝다.
유령, 괴물, 이상한 아이들이 선의를 지닌 무해한 존재들이라면, 적은 현실이다. ‘가위손’ 에드워드의 기이한 면을 특별하다며 환대했다가 결국은 혐오스럽다며 다시 추방한 마을 주민들, 유령의 가치마저 돈으로 환산하는 <비틀쥬스>의 속물적인 부모, 화성인이 쳐들어온 마당에 화성인이 머물 숙박사업부터 투자받는 한심한 사업가 등등 현실의 어른들은 우스꽝스럽게 풍자된다. 어른의 시선과 편견, 욕망을 재빠르게 내면화한 아이들에 대해서라면 팀 버튼의 적개심은 더욱 적나라해진다. <프랑켄위니>에서 빅터를 못 살게 굴며 어떻게든 사사건건 경쟁하려는 도시아키, 밥, 에드가, <가위손>에서 에드워드에게 누명을 씌우는 킴의 남자친구 짐(앤서니 마이클 홀) 일당을 비롯해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순수하고 가난한 찰리와 대조되는 욕심 사납고 이기적인 꼬마들 아우구스투스, 바이올렛, 버루카, 마이크가 그 대표적인 예다. 팀 버튼은 그늘 속으로 몸을 숨긴 공상적이고 소심한 너드들을 사랑하는 만큼 세속적인 현실의 아이들을 견디지 못하는 모양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속 어른들의 욕망을 흉내내는 아이들은 가차 없는 희화화와 형벌에 처해지고, 순수함을 간직한 찰리만이 보상을 받는다.
다시 돌아가, 기존 질서에 진입하지 못하고 미성숙한 상태로 머무르며 정상성에서 벗어난 비정상의 상태를 지향하는 이들을 ‘팀 버튼의 아이들’이라고 정의한다면, 어른 역시 자발적 비성년(非成年)으로서 그 범주 안에 머문다. 고아이자, 아이와 어른 사이의 청년 ‘가위손’ 에드워드부터 <슬리피 할로우>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고문했던 끔찍한 기억에 시달리는 수사관 크레인(조니 뎁),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치과의사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와 애증으로 비뚤어진 윌리웡카(조니 뎁)는 천재성을 지녔지만 사회성을 결여한 아이 같은 모습이다. 아버지의 부재와 단절은 세계와의 불화로 이어지고, 고립된 그들은 영원한 소년으로 남는다. 뿐만 아니라 <빅 피쉬>(2003)에서 스스로를 ‘빅 피쉬’라 믿고 환상과 허구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꾼 노인 에드워드(앨버트 피니), 관 속에서 수백년의 세월을 잠든 채 사랑을 잊지 못한 <다크 섀도우>(2012)의 뱀파이어 바나바스 콜린스(조니 뎁) 역시 시간성을 초월해 여전히 소년성을 간직한 인물들이다. 에드워드, 빅터라는 이름의 반복적 사용과 팀 버튼의 페르소나 조니 뎁의 반복적 등장은 그의 이야기 자체가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성을 품고 있으며, 오래 되풀이되며 구전되어온 동화인 양 느껴지게 한다.
환상의 세계를 벗어난 아이들은 어디로 향할까
팀 버튼이 이분해온 세계간의 화해를 시도했던 분수령은 <빅 피쉬>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에드워드와 이야기를 믿지 않는 현실 지향적인 아들이라는 세대간 구도로 구성된 이 영화는, 현실과 환상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가며 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접근한다. 이 작품은 환상이 현실을 압도했던 그의 전작들과 달리 현실 논리가 환상보다 앞서 있지만, 이야기의 힘과 환상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빅 피쉬>에서 고향을 벗어난 에드워드가 처음 당도한 낙원, ‘유령마을’의 소녀 제니는 에드워드가 마을에서 떠나가지 못하도록 구두를 뺏어 높은 곳에 걸어둔다. 제니는 에드워드가 행복한 과거에 영영 머물기 바라는 어린아이이자 미래의 운명을 보여주는 외눈박이 노파이며, 현실 세계에선 에드워드를 짝사랑한 중년의 여인이기도 하다. 노인의 시간은 뒤죽박죽이다. 제니는 에드워드에게 과거, 현재, 미래의 형태로 출현하며 그를 소년으로, 구두 없이도 어디든 갈 수 있는 ‘빅 피쉬’로 머물 수 있도록 한다.
제니처럼 영적인 존재로서의 아이들은 종종 환상적 공간과 시간에 이야기를 정박시킨다. 신작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의 아이들 역시 특정 시공간인 루프 안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간다. 이 세계의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훌쩍 날아가버리지 않기 위해 무거운 납 구두를 신고 줄을 착용하는 소녀 엠마부터 죽은 것을 되살려내는 소년, 불을 만들어내는 소녀, 투명인간 등 기이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상한 아이들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루프 안에서의 삶을 택한다. 그러나 괴물 할로게스트들에게 공격당하기 시작한 이들은 할로게스트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제이콥을 따라 루프 밖으로 나서고, 현실의 위협과 맞서 싸운다. 팀 버튼의 세계에 있어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인 변화다. 여태껏 팀 버튼에게 환상의 영역이란 현실을 침범하고 조롱하며 교란하고, 종국엔 화해해 현실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안온한 도피처이자 둥지였다. <빅 피쉬>의 제니와 <유령신부>의 유령신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자장수는 오르페우스의 죽은 아내 에 우리디케처럼 이곳 아닌 저곳에 속해 있지만 결국 소년과 소녀를 지상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위협에 처한 것은 환상의 세계이며, 그 안에 안전하게 피신해 있던 이상한 아이들은 세계 밖으로, 현실로 뛰쳐나온다. 이상한 아이들은 이제 더이상 세상을 부유해서는 안 된다. 무중력의 대기로 날아가버리지 않기 위해 줄을 단단히 묶고, 납구두를 신고도 현실을 걸어야 한다. 이제 팀 버튼 동화의 다음 페이지는 어디로 향할까. 꿈과 환상의 세계 밖으로 나온 이상한 아이들, 그들의 미래는 아직 미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