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렉>은 폴란드의 산악인 예지 쿠쿠치카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가난한 사회주의국가의 노동계급 출신 산악인인 쿠쿠치카는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인물로, 1989년 로체 등반 중 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전설적인 산악인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영웅이었던 쿠쿠치카를 스크린에 재현한 폴란드 출신인 파벨 비소크잔스키 감독은 성실하고 열의 넘치는 인터뷰이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낭보가 들렸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파벨 비소크잔스키 감독의 <유렉>이 국제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수상에 축하를 보내며, 그와 울주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지면에 싣는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서울엔 전작 다큐멘터리 <언젠간 행복할 거야>로 EBS국제다큐영화제(EIDF)에 초청받아 왔었고, <유렉>에 나오는 산악인 허영호를 인터뷰하러 오기도 했었는데, 울주는 처음이다. 영화제에 대한 인상은, 와, 개막식이 스펙터클하고 에너지 넘치더라. 그리고 라인홀트 메스너를 초청하다니! 모든 산악영화제들이 데려오고 싶어 하는 인물인데, 대단한 성공이다. 그가 영화제에서 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웃음)
-폴란드 산악인 예지 쿠쿠치카를 다큐멘터리 소재로 선택했다.
=그는 어릴 적 내 영웅이다. 내가 태어난 1980년대에 폴란드는 사회주의국가였고, 당시 폴란드는 화장실에 휴지도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런 국가에서 산악인으로 히말라야 원정을 기획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나. 어린 시절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콘텐츠를 접할 수 없었던 대신, 전세계적으로 활약한 산악인 쿠쿠치카를 나의 슈퍼히어로로 삼았다. 영화학교 시절부터 그에 대한 영화를 기획했다.
-하지만 <유렉>은 영웅담이 아니다. 그의 이기적 면모를 비롯해 메스너와의 경쟁을 부추기는 언론의 모습 등 부정적인 일면도 숨기지 않는다.
=섣부른 판단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균형이 중요했다. 멋진 등반가의 세계를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론 파트너를 버리고 등반하거나 고도에 집착하기도 하며, 등산할 때 가족은 안중에도 없는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여줬다. 그의 부인 말에 따르면 그에게 중요한 건 그저 산이었다더라. 영웅담을 만들고 싶진 않았지만 마냥 비판적으로만 접근한 것은 아니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답은 정해주지 않으려 했다.
-그에 대한 푸티지들은 어떻게 구했나.
=사실 이번 작품은 수도승의 작업에 가까웠다. (웃음) 이탈리아, 미국, 폴란드, 일본 방송까지 모든 촬영 분량들을 모아서 보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고, 다양한 방송국들의 판권을 해결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엔 극적으로 연출된 장면들 역시 많다. 옛날 필름 분위기를 주려고 연기자들을 섭외해 1980년대 의상을 입게 하고, 8mm 카메라로 찍은 장면들도 꽤 있다. 어떤 게 진짜이고 어떤 게 연출된 것인지 대부분 잘 모르더라.
-쿠쿠치카의 라이벌이자 그에게 “당신은 2인자가 아니고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라인홀트 메스너가 게스트로 와 있다. 그를 여기서 만난 소감이 남다르겠다.
=물론! 그는 살아 있는 전설이고 <유렉>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까. 쿠쿠치카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메스너는 너무 바빠 1시간만 응하기로 했지만 막상 하다보니 4시간을 꼬박 얘기했다. 한국 울주에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신기하고 반갑다. (웃음)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
=그간 다큐멘터리를 찍었지만, 나는 궁극적으로 영화는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유렉>도 극영화적으로 접근한 면이 있고, 좋아하는 감독도 박찬욱과 마틴 스코시즈다. 박찬욱은 스타일과 감각도 뛰어나지만 관계의 역학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감독이다. 다음 작품으로 파푸아뉴기니에서 의료봉사를 한 폴란드 의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그리고 폴란드 작가인 리스자드 카푸친스키를 주인공으로 한 극영화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