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최승호 감독 데뷔 다큐멘터리 <자백>이 지닌 질문의 힘
2016-10-19
글 : 씨네21 취재팀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가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다. 국정원이 내놓은 명백한 증거는 동생의 증언 ‘자백’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의심을 품은 최승호 감독이 움직였고, 2015년 10월 대법원은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이것이 바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이다. 하지만 단지 이 사건 뿐이었을까? <자백>은 최승호 감독이 한국, 중국, 일본, 타이 4개국을 넘나들며 40개월간의 추적 끝에 드러나는 스파이 조작사건의 실체를 취재한 탐사 보도의 결정판이다. 특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거침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렇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다큐멘터리 작품에 수여하는 다큐멘터리상을 비롯해 아시아영화진흥기구에서 시상하는 넷팩(NETPAC)상까지 2개 상을 수상한 <자백>과 만난다. 스토리펀딩에 1만7261명이 참여해 무려 4억3700여만원이 모인 것 또한 이 작품을 향한 신뢰와 기대를 보여준다. 6분30초 동안 흐르는 후원 크레딧 주인공들이 참석한 개봉 전 시사회에서 표지 촬영도 했다. “될성부른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대한민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 하나를 새삼 얻었다”는 영화평론가 김소희가 원고를 쓰고 인터뷰도 했다. 더불어 스토리펀딩 과정에 대한 꼼꼼한 리포트도 더했다. <자백>은 작품 그 자체를 넘어 펀딩 과정까지, 여러모로 지금 한국 사회와 영화계에 의미 있는 성취로 기록될 것이다.

사건은 일어났는데 책임질 사람이 없다. 그 원인마저 밝힐 수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것은 영화 <곡성>의 서사이자 세월호의 서사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사고는 한국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국가적인 재난 앞에서 관련자들은 자신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표면적인 것이 그저 이 사건의 전부인 양 축소하려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지난한 사건을 마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지켜줄 국가란 없다는 섬뜩한 사실을 체감하고 공유했다. <다이빙벨> 등 세월호를 정조준한 몇몇 다큐멘터리들이 앞장서서 뭇매를 맞는 사이, 극영화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월호 사건을 풀이할 채비를 했다. <곡성>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들을 새겨 넣은 뒤 끝끝내 원인을 밝히는 것을 거부하면서 (혹은 신화적인 원인을 제시하면서) 한국 주류영화에서 더이상 인과관계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던졌다. 이것은 주류영화로서의 성취일 수는 있으나, 포스트 세월호 시대(결코 세월호 사건이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영화로 본다면 꺼림칙하다. 그 ‘부재’라는 것은 도리어 지금의 국가 부재 상황을 그대로 묵과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비상사태(예외상태)가 일상적인 것임을 일러준다’고 말한 발터 베냐민은 여기에 더해 일상적인 비상사태의 고리를 끊어낼 역사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 부재 상황’에 대한 직시가 ‘부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과 당위로 옮겨 가지 않게 하기 위해, ‘국가 부재 상태’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에 당도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부재 상황을 더욱 낱낱이 들여다봐야 할 책임이 있다.

“국정원이 (코미디로) 만들어준 것”

세월호 참사 발생 전 최승호 감독은 아마도 그에 앞서 국가 부재 상황을 직감했던 것 같다. 최승호 감독은 MBC PD로 재직하면서 정권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직설적인 작품으로 호평을 얻었다. 그에 못지않게 방송과 관련한 압박을 받으면서 누구보다도 권력의 존재를 실감했을 그였다. 하지만 그가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을 내부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방송한 뒤 받은 해고 통지서에 국가와 권력은 없었다. 다만 그가 내부의 기강을 해친다는 엉뚱한 사유만이 거기에 존재했다. 최 감독이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에 이끌린 것은 아마도 그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 간첩조작사건과 모종의 연관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국정원 간첩 사건은 국정원이 자신들의 시나리오에 맞춰 무고한 이들을 감금하고 고문하며 자백에 이르게 한 뒤 이를 중요한 법적 증거로 제시한다. 법정에서 생략되는 것은 국정원이 자백을 끌어낸 과정과 방식이다. “자백은 강요와 폭행에 의한 것이었다”고 외치고 싶은 개인의 신념은 “허위진술죄가 더 큰 것이다”라는 회유와 협박으로 무너진다. 그러므로 최승호 감독의 의혹 제기에 대해 “법정에서 다 밝히겠다”는 검사의 답은 자신들의 진실은 오직 자신들의 필드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역으로 드러낸다. 숨겨진 진실은 피해자들의 울음, 절규에서만 간간이 묻어나올 뿐이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외면한다면 우리에게 남은 미래는 침묵이거나 혼잣말이다. 한준식씨와 김승효 선생이 이를 보여준다. 대신 자신의 무고함을 밝혀줄 가족이 없는 대다수의 탈북자는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간첩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준식씨의 억울함을 대신 호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원래의 이름과 생년월일조차 삭제당한 채 땅에 묻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74년 학생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평생 정신병증에 시달린 서울대 유학생 출신의 재일동포 김승효 선생의 존재는 그가 무려 40년 전에 겪은 일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말한다. “잊어버리고 싶다는 말이야. 기억하면 가슴이 아파 죽을 지경이야. 그래서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야.” 그의 말은 기억을 지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준다.

반면 폭력을 행사한 누군가는 자신의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억을 부인하고 사실을 묵인한다.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는 우리조차 이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만약 <자백>이 그런 부인의 대답을 듣는 데 그쳤다면 국가의 부재 상황을 지적한 여느 다큐멘터리 중 하나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최승호 감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아니,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다시 다가가 묻는다. 좀처럼 쉽게 포기하거나 절망할 줄 모르는 그의 태도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인권을 유린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백을 종용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적어도 그들이 한 것만큼의 단단함을 가지고 대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최승호 감독의 단단한 성정은 마치 클리셰처럼 보이는 공권력의 망각과 부인이라는 익숙했던 풍경을 뒤바꾼다.

<자백>은 공포, 스릴러, 코미디가 모두 들어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코미디를 꼽겠다. 아마도 블랙코미디라고 해야 더 정확해질 세간의 평가에 대해 최승호 감독은 “국정원이 (코미디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더해 영화에 도사린 기이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낙관주의를 지적하고 싶다. 몇몇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시도를 하기도 전에 이미 패배를 직감한 비관주의가 서려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자백>에서는 정부와 법조계 인물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마이크와 카메라를 든 이는 절망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부지런히 관련자들을 찾아가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다. 최승호 감독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퇴임식에 참석해 “4대강 수심 6m, 대통령님이 지시하셨습니까”라는 돌직구 질문에 더해 던진 외침, “언론인들이 질문을 못하면 국가가 망해요”에 스스로 답하듯 말이다.

공권력이 정말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

<자백>을 보면서 울기보다 웃게 된다면 일차적으로 그 이유는 국정원과 여기를 둘러싼 이들에 대한 실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관객이 그런 현실을 실소하면서 ‘현실은 바뀌지 않을 거야’라고 고개를 저으며 영화관을 떠나는 것을 영화 <자백>은 끝끝내 막아낸다는 점이다. 최승호 감독은 어쩌면 정말로 국정원이, 공권력이, 정부가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는 에너지와 확신을 준다. 그 희망은 누구나 생각했으나 누구도 감히 묻기를 포기했던 질문을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 특정한 인물과 대면해 던질 때 창조된다. 최승호 감독은 카메라와 마이크, 그리고 자신의 두발로 게릴라전을 펼친다. 그리고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질문이다. 그 질문은 너무 투명해서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단순하고도 날카로우며 무거운 그의 질문은 내뱉는 것만으로도 관객에게 에너지를 준다. 끝도 없이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의 무수한 이름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 이름들은 질문의 수호자들이다. 힘주어 말하건대, <자백>으로 우리는 될 성부른 신진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대한민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 하나를 새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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