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최승호 감독 인터뷰
2016-10-19
사진 : 백종헌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뉴스타파’에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2>를 만들고 난 뒤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찰나에 유가려씨가 국정원의 협박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밝힌 기자회견 기사를 보게 됐다. 허위자백이 사실이라면 다른 많은 조작사건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취재했다.

-유가려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자백이야기>를 만들기도 했다. <자백>에서 애니메이션을 빼고 인터뷰와 녹취를 활용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백이야기>를 만들었을 때는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이 사건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이 꼭 필요했다. 영화를 만든 시점은 무죄판결이 난 이후였다. 빙산 밑의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례를 비롯해 리얼리티와 공포, 부조리 등을 표현하는데 실사가 더 적합해 보였다.

-추방된 유가려씨는 현재 한국에 올 수 있는 상황인가.

=유가려씨는 지금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화교라서 탈북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추방당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다면 비자가 필요한데, 아마 현 정권하에서는 비자 발급이 힘들 거다.

-수사관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나.

=‘큰삼촌’ 수사관은 다른 사안을 통해 얼굴을 입수해 알 수 있었고 일명 ‘아줌마’ 수사관의 경우, 그날 재판이 밤 12시가 넘어 끝나는 바람에 법원의 다른 문이 다 닫혀 중앙통로로만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끝나고 나오는 사람 중 여성이 한분 있어서 그분이 수사관이겠거니 했다.

-다른 다큐멘터리에 비해 블러 처리가 많다고 느껴졌다. TV 저널리즘의 초상권 규정에 따른 건가.

=해외 방영할 것이 아니라면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들도) 우리가 한 정도는 해야 할 거다. 국정원 직원은 국가안보를 다루는 사람들이라서 얼굴을 완전히 노출시키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그런 일을 더는 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소나 재판을 통해 결정되어야 할 사항이다. 중국 관리들의 경우 몸에 부착하는 카메라로 몰래 촬영했기 때문에 공개하면 유가려씨와 가족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준식씨 친구는 본인이 원했다. 음성을 그대로 내도록 한 것만도 고맙다. 탈북자 사회 내부의 분위기는 국정원의 사고방식과 닮은 부분이 있다. 탈북자들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취약하지 않나. 이용당하는 사람들도 많고.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고. 원래 만날 계획이 있었나.

=집 주소를 알았기 때문에 일본에 다녀온 이후 찾아가려고 했다. 그렇게 했다면 지금처럼 오랫동안 깊이 이야기 나누기는 쉽지 않았겠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인터뷰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는 제지당하면서 물리적인 충돌도 있었는데.

=원세훈씨는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다. 사실상 주범인데, 고등법원 판결때 찾아가면 그 사람의 스타일상 재판 중이라며 부인할 것 같아서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린 거다. 그런데 모르는 척할 줄은 몰랐다. 조직 전체가 중요하게 생각했을 사안에 대해 무책임하게 나와 참담하고 놀랐다. 물론 사과 안 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과한다는 건 자기네들이 책임지는 것이고 권력을 놓는 상황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들이 사과를 거부한다고 해도 그 모습 자체로 국민에게 참고가 되리라 생각해 장면을 넣었다. 이 영화의 의미는 계속해서 책임을 묻는 데 있다. 이들에게 법률적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려울지라도 이를 기록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에 있는 한준식씨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알렸다. 딸에게 위험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꼭 알려야 했나.

=전화 건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준식씨가 정말 북한에 갔었나를 확인하고 싶었다. 국정원이 정말 한준식씨가 간첩이라고 믿었다면 그의 시신을 북한에 넘겨줬어야 맞다. 전쟁 포로도 발굴해서 해당 국가에 넘겨주는데, 간첩이라고 발표해놓고는 추적하지 못하게 이름과 생년월일을 바꿔 은폐한 거다. 만일 통일이 된다면 한준식씨의 딸이 자신의 아버지를 찾을 수 있어야 하기에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딸이 17살 정도인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대학생이었다. 통화할 때 나도 괴로웠지만 보는 사람들도 괴로웠겠지. 그래서 이 장면에 관해 묻곤 하는데 통화 때문에 딸에게 피해가 갈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 정부가 아무리 인권 의식이 없다고 해도 아버지 소식이 듣고 싶어 전화를 받았는데 그걸 문제 삼진 않을 것이다.

-재일동포 유학생이던 김승효씨를 마지막 인터뷰이로 삼은 이유가 있나.

=한준식씨와 김승효 선생 중 마지막으로 누구를 가져갈까 고민했다. 김승효 선생은 40년 전 피해 상황이 지금도 피가 철철 흐르며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크레딧에 흐르는 95건의 조작사건 리스트와 더불어 국민이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깊은 의식을 가질 거라고 내다봤다. 국정원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대한민국 역사의 근원과 맞닿은 뿌리 깊은 사건이라고 인식하길 바랐다. 리스트는 시민단체에서 확보한 자료에 근거를 둔 것이고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전체 간첩사건 중 조작으로 밝혀졌거나 조작이 의심스러운 사건은 얼마나 되나.

=중앙합동신문센터가 생긴 이후는 거의 다 조작됐다고 보면 된다. 기본적으로 탈북자 간첩이 성립되기 힘든 것이, 탈북자 대부분이 엄혹한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탄압당하던 사람들인데 북한에 충성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탈북자들이 중요한 정보를 접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결국 이들이 넘겼다는 정보가 탈북자 신원 정보다. 물론 그조차 사실이 아니긴 하지만 그 명단이 그리 중요할까. 국정원에서 이야기하는 탈북자 간첩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고작 그런 거다.

-마지막 간첩조작의 피해자로 등장하는 홍강철씨 이후 또 다른 간첩사건이나 조작사건은 없었나.

=국정원은 비밀리에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에 더 있을지도 모른다. ‘뉴스타파’에 보도한 ‘거짓말탐지기 속인 여자’사건(진술이 진실로 밝혀졌음에도, 북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받은 거짓말탐지기 패치로 이를 모면했다는 혐의를 씌운 사건)의 경우 유우성씨 사건과 맞물려 잊힐 뻔했다. 그러다 2심 판결일에 한 기자가 우연히 재판에 참석해 3년형을 선고받고 통곡하는 피해자를 본 뒤 이를 기사화했다. 내가 그 기사를 본 뒤 민간 변호사에게 알려주면서 변호가 시작됐다. 이후 재판에서 무혐의 증거를 제출했음에도 대법원은 고등법원에서 재판할 당시 제출하지 않은 증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대부분 그런 식이니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교도소에서 나온 뒤 알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간첩조작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말하고자 한 건 단순히 간첩조작사건이 아니라 국정원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라는 거다. 그들이 간첩조작사건을 벌이는 이유는 국민의 정신을 통제하기 위함이다. 내국민에 대한 정치 사찰이나 댓글 조작을 비롯해 자기네가 바라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일종의 ‘조작 면허’를 가진 집단이 국정원이다. 간첩조작사건은 자기네가 필요한 조직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얼마 전 <검열각하>라는 연극을 보기도 했는데 국정원이야말로 ‘검열각하’다. 모든 논리를 다 만들어내고, 대한민국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희생자를 만들어 저잣거리에 내걸면서 공포를 심고 여론을 조작한다. 단순히 간첩사건만이 아니다.

-TV와 인터넷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영화 제작간에 어떤 차이가 있던가.

=다큐멘터리는 논리나 이성보다는 감정의 흐름에 신경을 써야 한다. <PD수첩>은 막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다보니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지면서 들어가야 한다.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면, 영화는 마지막에 좀더 강한 느낌을 안겨주게 되는 것 같다. 아직도 공부하는 중이다. ‘뉴스타파’는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취재하고 방송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불편한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제대로 된 진실만 찾아낸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파급력이 결국은 전달되지 않겠나 싶다.

-PD 재직 시절부터 지금까지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글쎄, PD로 일할 때부터 해결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열심히 취재해서 방송 하고 이후 실제로 변화되는 것을 느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가장 어려웠던 건 황우석 사건 취재였다.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아 오히려 쉬운데, 대중이 믿는 것과 반대되는 사안을 보도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자백> 스토리펀딩에 1만7261명이 참여해 4억3700여만원이 모였다. 끝없이 흐르는 크레딧 명단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

=후원 크레딧 상영시간만 6분30초 정도다. 후원금액에 따라 추가된 분들까지 하면 실제로는 1만7261명이 더 된다. 행동할 때 실제로 바꿀 수 있다는 의지가 비주얼화된 영상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멀티플렉스 상영도 가능해졌다. CGV와 롯데시네마의 경우 개봉 이후에는 상영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 열어줄지는 지켜봐야 한다. 상영과 관련해 부당한 일이 있으면 <씨네21>에서도 함께 목소리를 내주기를 부탁한다.

-개봉을 앞둔 심정은.

=펀딩을 통해 많은 시민이 호응해줬고 의미와 가치를 높게 평가해줬는데 과연 시장에서도 폭넓은 시민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을지 초미의 긴장 상태로 지켜보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어감이 주는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잘 극복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미 본 사람들은 일단 나름대로 재밌다고 하는데 영화를 선택할 때 다큐멘터리라면 선뜻 손이 안 가는 분위기도 있잖나. 원래 연극을 했고, 드라마 PD를 지망했는데 살다보니 시사·교양쪽으로 와서 쭉 이쪽에 머물게 됐다. 지금 와서 그쪽으로 다시 하는 것보다는 한길을 좀더 명확하게 가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발견해낼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극영화 이상의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주제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은 다른 사안이 있는가.

=초짜 감독이므로 일단은 이 영화를 성공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내부적으로는 100만 관객은 들어야 변화도 생기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한다. 영화 제작에는 자본도 많이 투여돼야 하고 사람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차기작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를 종합적으로 결산해본 뒤 결정 할 생각이다. 수익이 생긴다면 국가폭력 피해자 구제를 위한 민들레 단체에 절반을 기부하고, 나머지는 뉴스타파를 강화하는 데 쓸 것이다. 무엇보다 작품이 의미 있는 흥행을 거둔다면 국정원이 더는 이런 뻔한 장난을 치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다. 당장은 아니라도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법을 바꿔 새로 재구성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관객이, 국정원이든 경찰이든 바꿀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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