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아가씨>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12세 관람가 등급에 대하여
2016-11-14
글 : 김나희 (클래식음악평론가)
<가장 따뜻한 색, 블루>

한국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던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프랑스에서는 ‘12세 관람가’를 받았다. <아가씨>는 11월1일 프랑스에서 개봉하여 첫주에만 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한국 청소년들은 보지 못한 한국영화를 프랑스 청소년들은 보게 된 것이다. 과거 <가장 따뜻한 색, 블루>도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적 있는데, 이와 관련해 최근 극우보수 가톨릭주의자들의 단체와 법정 공방이 있었다. 하지만 국가평의회에 따르면, 두 영화의 섹스 신들이 모두 폭력으로부터 해방된 것이고 수준 낮은 눈요깃거리로 묘사하려는 의도를 찾아볼 수 없으며, 나아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조화롭게 부합하고 있어서 청소년들이 보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 부럽기만 한 ‘남의 나라 이야기’에 대해 프랑스 파리에서 피아노·하프시코드·음악사, 법학을 전공한 전 <객석> 파리 통신원이자 클래식음악·무용 칼럼니스트, M&A 컨설턴트이기도 한 김나희 평론가가 글을 보내왔다.

<아가씨> 포스터.

11월1일 프랑스에서 개봉한 <아가씨>가 첫주에만 20만 관객을 동원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 <설국열차> (2013)가 약 100만명의 최대 관객을 동원한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반응이다. 또한 <아가씨>는 프랑스에서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프랑스의 IMDb라고 할 수 있는 ‘allocine’ 사이트에서 별점 5점 만점에 4.4를 기록 중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이라는 특별한 배경, 압도적인 미장센과 함께 2시간25분이 향기롭고 맛있게 지나간다”고 평한 <르몽드> 등 여러 매체에서 극찬과 호평도 쏟아졌다. 무엇보다도 <아가씨>는 프랑스에서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같은 영화가 한국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상영됐지만, 프랑스에서는 12세 관람가를 받은 것이다. 파리와 서울의 위도는 38도로 같은데 제7의 예술을 바라보는 잣대는 유라시아 대륙 이편과 저편에서 이토록 차이가 난다.

한편, <아가씨>와 비교해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 바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일 것이다. 그 영화 역시 프랑스에서는 <아가씨>처럼 12세 관람가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 9월28일, 프랑스 최고행정사법기관인 국가평의회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상영 관람가를 두고 극우보수 가톨릭주의자들의 단체인 ‘Association Promouvoir’(이하 AP)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렸다.

지난 과정을 되짚어보자면, AP는 파리행정법원(1심)에 낸 소송장에서, 프랑스 문화부가 2013년 7월26일 심의위원회를 거쳐 결정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12세 관람가 등급에 “지나치게 사실적인 다수의 섹스 신이 미성년자 관객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며 등급에 항의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9월17일, 1심인 파리행정법원은 원고 AP의 소송을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굴하지 않고 AP는 파리고등행정법원(2심)에 항소했다. 2015년 12월 8일, 파리고등행정법원의 판결문(14PA04253)을 살펴보면, 파리고등행정법원은 AP의 항소에 따라 1심의 판결을 취소하며,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 대한 프랑스 문화부의 등급 재심의를 요청했다. 파리행정법원은 1심에서 AP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이어진 항소로 1심에서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이러한 2심 판결로 인해 재심 요청을 받은 프랑스 문화부는 국가평의회에 항소를 제기했다. 그리하여 끝으로, 최고행정사법기관인 국가평의회(3심)에서는 문화부의 요청에 따라 그간 축적된 자료들을 참고해 판결을 선고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영상물 관련법 211조 1항에 따르면, 모든 영상저작물은 문화부가 심의를 통해 부여한 상영 등급을 따라야 한다. 이 상영 등급은 대개의 경우 그대로 이행되지만, 청소년 보호와 인간 존엄에 관련된 문제가 제기될 경우, 기존에 결정된 상영등급의 적용은 재고되어야 한다. 1990년 2월23일 제정된 법령에 따르면, 프랑스 영화산업에서 영상물 상영등급은 문화부가 지정한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다음과 같이 5등급으로 나뉜다.

1. 전체 관람가/ 2. 12세 관람가/ 3. 16세 관람가/ 4. (1975년 12월30일에 제정된 현행법 75-1278의 11조, 12조에 따른) 18세 관람가/ 5. 전체 관람불가상영등급을 결정하는 기준으로는 이유 없는 과도한 성행위 장면과 지나친 폭력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성행위 장면과 폭력 장면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에 얼마나 걸맞은지, 동시에 섹스와 폭력을 담아내는 방식이 적합한지 여부가 등급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파리고등행정법원의 2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매우 사실적’인 방식으로 촬영된 섹스 신을 여럿 포함하고 있다. 이 섹스 신의 미장센이 가지고 있는 매우 사실적이라는 특성 때문에, 파리고등행정법원은 청소년 관객이 이 작품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고, 결국 이 작품에 12세 관람가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 과정에서 판사들에게 제출된 자료들에 따르면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섹스 신은 실제와 매우 유사하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장면들은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섹스 신을 수준 낮은 눈요깃거리(포르노그래피)로 묘사하려는 의도를 찾아볼 수 없다. 나아가 이 장면들은 모두 영화에 녹아들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내러티브와 주인공의 내레이션의 궤적에 들어맞는다.

3시간가량 상영되는 이 작품의 목표라면, 사랑에 빠진 두 젊은 여인을 최대한 자세히 묘사하며 그에 관련된 정확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연인은 서로에게 열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다. 이런 사유로 프랑스 문화부는 12세 관람가 등급 판정을 내렸다. 청소년부터 그들의 부모까지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문화부와 같은 조건에서 2심 파리고등행정법원은 이 작품이 청소년의 민감한 감수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 방점을 찍으며, 문화부가 부여한 12세 관람가 등급은 잘못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2심 판결은 영화의 표현양식을 주제의식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예술작품과 관련한 등급 심의 사건에 부정확한 성격을 더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재심 요청을 받은 문화부가 (다른 이유를 검토할 필요도 없이) 2심 판결 취소를 요구한 것은 그래서다. 결론적으로, 국가평의회는 파리고등행정법원이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 내린 2015년 12월8일의 2심 결과를 취소, 이 사건은 파리고등행정법원으로 환송되었다. 국가평의회의 이러한 결정은 문화부에 고지되는 것은 물론, 소송을 제기한 원고측인 AP에도 전달된다. 또한 판결문 사본은 프랑스 영화진흥위원회 CNC와 배급사 와일드 번치에 송부된다.

이 판결문에는 등급과 관련된 결정에 더해, 소송을 제기한 원고 AP가 총소송비용 4천유로를 지급해야 함이 명시되어 있다. 최고 행정사법기관의 결정답게 판결문의 맨 위에는, ‘프랑스 공화국,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가 적혀 있었다.

주석1. 프랑스 사법제도는 영미법에서와는 달리 사법재판과 행정재판이 철저하게 이분화되어 있으며 개인에게 행정기관이 공적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 행정기관과의 분쟁은 행정법원에서 관할한다. 행정사건은 1심 지방행정법원-2심 고등행정법원-3심 국가평의회를 거친다.

주석2. 1996년 설립된 ‘Association Promouvoir’는 회원 수 400여명의 극우보수 가톨릭주의자들의 단체다. 회원 중에는 전직 유명 법조인 등 사회 유력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건물 외벽에 전시된 사진을 막기 위해 트럭을 동원해 건물을 에워싸는 등, 그들의 기준에 ‘예술이 아닌 것’을 맹렬히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베즈무아: 거친 그녀들>(2000), <켄 파크>(2004), <안티크라이스트>(2009), <쏘우 3D>(2010),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 <님포매니악 볼륨1, 2>(2014) 등을 대상으로 상영 관람가 변경이나 상영 제한, 금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최근 타란티노의 신작 <헤이트풀 8>(2015)을 상영 금지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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