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이있어와 루돌프
“나에게도 스탭들에게도 풀 CG장편영화 제작은 도전이었다. 매일이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길이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느낌이 정말 재미있었다.” 유야마 구니히코 감독은 어떤 비주얼도 참고로 삼지 않고 제로에서부터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싶었다고 한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두 주인공 고양이의 디자인이었다. 사카키바라 모토노리 감독은 “처음에 생각한 루돌프는 심지가 굳고 바른 캐릭터였는데 머리와 눈의 크기 등을 설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2D 디자인 완성 후 CG 작업을 하며 끊임없이 조정을 해나간 결과 지금의 형태가 완성됐다. 특히 검은 고양이라는 게 의외로 어려웠다. 애니메이션으로 표정을 만들어도 실제 조명을 비춰보면 새까맣게 뭉개져서 연기를 할 수 없었다. 표정이 살아나도록 조명 작업을 하는 데 가장 공을 들였다”고 쉽지 않았던 제작과정을 전했다. 많이있어의 경우 개와 싸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힘센 고양이를 표현하기 위해 호랑이 줄무늬를 골랐다고 한다. “무협영화의 주인공, 무뚝뚝하지만 어딘지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카키바라 감독에 따르면 긍지 높고 기품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다. 눈동자와 수염 모양에 특히 신경을 썼다는 후문. 많이있어의 풍성한 감정 표현을 보노라면 “처음 테스트를 했을 때 그 박력과 존재감에 감격했다”는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2. 계절감과 카메라워크
“계절을 신경 쓴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루돌프의 성장담이기 때문이고 하나는 일본의 풍경을 살린 CG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서다.”(사카키바라 모토노리 감독) 할머니 집 정원의 나무들처럼 직관적으로 눈에 띄는 소품들은 물론이고 교무실 앞 화단의 꽃까지 계절에 맞춰 바꾸는 등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썼다. 심지어 생선 가게에 배치된 물고기도 계절에 어울리는 생선으로 배치했다고 한다. 유야마 구니히코 감독은 “성장 과정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계절감을 최대한 살렸다”면서 기후(岐阜)와 도쿄(東京)의 번화가를 직접 돌아다닌 후 콘티를 짰다고 전했다. 또 하나 자랑할 거리는 CG애니메이션이었기에 가능한 자연스러운 카메라워크다. 루돌프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루돌프의 움직임을 따라 실내에서 실외 정원까지 훑듯이 움직인다. 약 2분간 원신 원컷으로 구성된 이 장면은 고양이의 움직임을 사실적이고도 역동적으로 포착한다.
3. 일상적인 세계의 판타지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해 제작진이 잡은 방향은 ‘배경은 현실적으로, 고양이들은 귀엽게’였다. 이를 위해 일본 거리의 생활감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현실감이 필요했지만 동시에 온기도 있었으면 했다. 모든 배경, 소품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변형이 가해졌다. 예를 들면 직선은 최대한 피하고 문 손잡이를 약간 크게 그린다거나 선은 조금씩 비트는 식이다. 조명도 시간대나 계절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두려 했다. 유럽의 거리와 달리 일본의 골목길은 재미있는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장난감 상자 같은 느낌이다. 일본이기에 가능한 풍경의 재미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사카키바라 모토노리 감독) ‘사실적이되 만화적인 생동감이 넘치게’를 모토로 한 거리 디자인은 작품에 현실감을 더하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원작에도 등장하는 고이와와 야나카 주변 상점가를 모델로 한 거리 풍경은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4. 어쨌든 고양이는 귀엽게!
거리 디자인으로 사실감을 확보한 제작진은 고양이에게 온갖 애정과 귀여움을 쏟아부었다. 털의 윤기와 부드러운 빛을 살리기 위해 조명에 특히 신경을 썼고 인형 같으면서도 정말 있을 법한 디자인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패션리더를 자칭하는 수다쟁이 고양이 부치의 경우 처음부터 두 다리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디자인했는데 액션을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윤곽이 드러나는 마른 체형으로 설정했다. 불도그 데빌은 전형적인 디자인을 따랐다. 사카키바라 모토노리 감독에 따르면 “부치의 망상에서 나오는 데빌의 모습은 특수촬영 괴수를 이미지했다”고. 모두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매력 만점 고양이 미샤는 느긋한 청순녀를 모티브로 했다. “귀가 접힌 동그란 얼굴의 고양이를 만들고 싶었다. 몸의 무늬에 음표를 넣어 목의 방울과 매치시켰다는 점이 포인트”라며 일본의 배우이자 가수인 야쿠시마루 히로코를 생각하면서 디자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