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정권과 군의 과시적 스펙터클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2017-01-02
글 : 김성훈
<인천상륙작전>

도쿄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는 북한을 극장국가라 했다. 과시적 스펙터클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정권이라는 뜻이다.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아리랑 대축전 같은 거대 행사나 독재자를 신화로 포장한 선전영화에 집착하는 것도 그래서다. 와다 하루키의 논리에 따르면 ‘북한 역사는 국민의 역사를 가장해 사회에 강요한 국가 역사에 불과’하다. 여기서 북한을 박근혜 정권으로, 아리랑 대축전을 늘품체조로, 선전영화를 CJ의 ‘국뽕’ 광고나 <연평해전>(감독 김학순, 2015),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 2016) 같은 군사안보영화로 바꿔보면 어떤가. 이상한가, 아니면 자연스러운가.

박근혜 정권에서 군은 유독 극장 정치에 집착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한다. 군사안보 전문가인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육·해·공군 본부에서 정훈병과가 팽창하고, 군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현상만 보더라도 군이 위신을 세우고 사회적 기득권을 합리화하는 이미지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군은 실제로 자신을 홍보할 수 있다면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57쪽 박스3 참고). 김종대 의원실이 국방부 및 각군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가 제작될때 KBS는 육군과 업무협약서(2015년 9월15일)를 체결해 군복, 사막 전투복, 전투화, 방탄조끼 등 피복과 물자류를 유상으로 대여받았다. 출연배우와 무술팀은 군가, 응급처치 요령, 래펠, 무전기 사용법을 교육받았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또한 육·해·공군으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 상영이 끝난 지금도 투자 과정에서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영화가 몇 있다. <연평해전>과 <인천상륙작전>, 전쟁 블록버스터 두편이 그것이다.

<연평해전>

<연평해전>의 제작비는 어디에서 왔나

<연평해전>은 5년(2010∼15년)이 넘는 긴 제작 기간만큼 제작 과정에서 말도, 의혹도 많았다. 제작비 구하기에 난항을 겪던 2013년 6월, 당시 최윤희(해사 31기) 해군 참모총장(이후 합동참모의장(이하 합참의장)으로 발탁된다)의 아내 김아무개씨는 1차 촬영이 진행되던 <연평해전> 제작에 뛰어들었다. 대령급 이상의 군 간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해군 바자회를 열어 모금 운동을 했다. 대령급 군간부들은 300만원씩 갹출했다고 한다. 국방부, 해경, 해수부에서 거둬들인 모금액은 10억4천여만원에 이른다(자세한 모금 내역은 57쪽 박스2 참조). 모금액은 6월28일 열린 ‘제2연평해전 전사상자 후원의 밤’에서 김아무개씨를 통해 감독에게 전달됐다. 김종대 의원의 말에 따르면, 김아무개씨는 2013년 8월6∼7일 1박2일로 장성급 부인 등 40여명과 함께 저도(한때 청해대라 불리던 저도는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의 대이은 휴가지)의 휴양시설에 가 영화 제작비 모금을 자축하는 낯뜨거운 춤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연평해전> 개인 투자자 중에는 1500만원을 투자한 무기중개업체 셀렉트론 코리아도 있다. 큰 액수는 아니다. 셀렉트론코리아 대표인 함아무개씨는 최윤희 합참의장 공관에서 합참의장 가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친하게 지내면서 합참의장의 아들에게 2천만원을 제공한 사람이다(그로부터 일주일 뒤 함아무개씨는 최 합참의장에게 준 돈 2천만원 중 1500만원을 되돌려 받았다.-편집자). 최 합참의장과 함씨의 관계는 최 합참의장이 중장 때부터 이어져왔고, 그래서 한가족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함씨는 영국제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을 도입하도록 최 합참의장 부부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로비를 해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종대 의원은 “그가 <연평해전>에 투자한 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이라 할 수 있는 최윤희 합참의장을 보고 한 것이지, <연평해전>을 보고 한 것이 아니”라며 “최 합참의장의 아내인 김아무개씨가 영화 제작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함씨가 그 돈을 왜 냈겠나”라고 말했다(최전 합참의장은 합참의장 재직 시절인 2014년 9월 아들의 사업자금 지원 명목으로 함씨로부터 2천만원을 받고 법정구속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함씨 또한 법정구속됐다.-편집자). 김아무개씨가 김학순 감독의 제작사인 로제타 시네마(현재 대표이사는 김상미. 2016년 9월1일 취임)와 어떤 관계인지 확인된 바 없지만, 해군 참모총장의 아내로서 경솔한 행동을 한 건 분명하다.

해군 바자회가 열렸던 이 기간은 제작사 로제타시네마가 CJ E&M과 배급 협약을 맺은 시기이기도 하다(55쪽 박스1 참고). 2013년 6월12일 CJ E&M 영화사업부문은 <연평해전> 배급협약식을 열고 “정전 60주년이자 한국전쟁 63주년이라 마케팅하기가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연평해전>을 배급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씨네21> 911호 국내뉴스 톱 ‘갑작스럽게 떠맡은 것이 아니다’). 배급협약식 한달 전인 5월21일, 검찰이 CJ그룹을 압수수색하자 그룹 내부에서 위기의식이 고조돼 몸을 사린 결과라는 얘기도 있다. 당시 실무진이 투자에 난색을 표해 배급만 맡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한달 뒤인 7월26일, CJ E&M이 <연평해전>에 70여억원을 투자한다는 기사가 나온다(이 기사는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CJ E&M은 “투자·배급 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배급하기로 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 기사가 나온 2개월이 흐른 9월, 로제타시네마는 별안간 먼저 CJ E&M에 투자·배급을 철회해달라고 요구한다. 투자·배급사가 아닌 제작사가 먼저 투자·배급 철회를 요청하는 건 업계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로제타시네마와 CJ E&M 사이에서 계약상 이견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로제타시네마는 크라우드 펀딩 모금액 8억5천여만원을 제작 지분으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고, CJ E&M은 “시민들이 낸 후원금이니 기부하는 게 맞다”고 제작사의 요청을 거절했다. 또 CJ E&M의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알 수 없는 무리들 사이에서 “CJ가 투자·배급을 한다고 하면서 제작 진행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해 <연평해전>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팽배했던 까닭에 “CJ가 제작을 안 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내심 있었다”고 한다. 그 무리의 정체를 알 순 없지만 당시 CJ E&M과 로제타시네마가 매끄러운 관계가 아니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로제타시네마가 CJ E&M과 결별 수순을 밟고 있었던 9월30일, 국책은행인 IBK 기업은행이 나타나 <연평해전>의 투자주관사를 맡기로 한다(투자 조건에 부합하지 못해 투자 계약은 2014년 7월24일 맺게 된다). CJ E&M 특별세무조사가 실시된 지 나흘이 지난 뒤에 생긴 변화다. IBK 기업은행은 그해 3월 로제타시네마의 대출 신청을 이미 거절한 바 있다. 11월13일에는 NEW가 등장해 <연평해전>의 투자·배급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영화 <변호인> 투자·배급과 관련된 여러 논란과 회사 상장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다음해인 2014년 1월8일 NEW는 로제타시네마와 투자·배급 계약을 체결한다. 여러 회사가 이리저리 얽혀 있는 까닭에 꽤 복잡해 보이지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CJ E&M이 처음에 투자·배급을 거절했다가 촬영이 50% 정도 진행된 <연평해전>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촬영이 끝난 뒤 배급 계약을 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지만 보통 기획 단계나 촬영 전 투자·배급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둘째, IBK 기업은행이 대출을 거절했다가 12억원(은행장 조준희)이라는 거액을 투자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셋째, NEW가 투자·배급을 결정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단순히 기업이 몸을 사려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엔 외부 세력이나 상황이 개입된 흔적이 커 보인다. 그렇다면 그 외부 세력은 대체 누구일까.

<연평해전>이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일까. 국책 기관들이 <인천상륙작전>에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IBK 기업은행은 26억2500만원을, 국책 방송사인 KBS미디어와 KBS콘텐츠특수목적회사는 31억8750만원을, IBK-대성문화콘텐츠강소기업투자조합, 한국투자글로벌콘텐츠투자조합 등 두 모태펀드가 포함된 창투사가 56억원(IBK-대성문화콘텐츠강소기업투자조합의 10억원, 유니온글로벌콘텐츠투자조합의 25억원, 대성상생투자조합의 10억원, TW14호문화콘텐츠투자조합의 5억원, 한국투자글로벌콘텐츠투자조합의 6억원)을이 영화에 댔다(이 밖에도 CJ E&M이 25억8750만원을, 셀트리온이 30억원을, 태원엔터테인먼트가 5억원을 투자했다. 모두 합쳐 175억원이 제작비로 투입됐다). “CJ E&M 투자 실무자는 <인천상륙작전>의 투자·배급을 거절했으나 윗선에서 추진했다”는 설도 있지만, CJ E&M의 한 관계자는 “제작·배급 회의(GLC, Green Light Committee)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진행하자고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도 많았다”고 앞의 설을 일축했다.

<연평해전> 배급협약식.

군사안보영화를 필요로 한 사람들

제작 시기도, 투자 과정도, 소재도 다르지만 <연평해전>과 <인천상륙작전> 두편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군의 지원을 받았고, 모태펀드와 IBK 기업은행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이다(<연평해전>의 경우, IBK 캐피탈(대표 유석하, 담당자 남홍규)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모태펀드와 이 영화들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씨네21> 1086호 한국영화 블랙박스 ‘자본을 통한 검열’에서 언급된 ‘외부전문위원’(정확한 명칭은 ‘외부 전문가 풀’이다)과 전문위원은 모태펀드 투자심사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조만간 자세하게 다룰 계획이다.

모든 독재자는 극장을, 영화를, 스포츠를 좋아했다. 레니 리펜슈탈이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담은 <신념의 승리>(1933)나 베를린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올림피아>(1938) 같은 나치 선전영화를 만든 것을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독재자는 민간 문화가 자발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관제 문화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싶어 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군, 국책 은행, 국책 방송사, 모태펀드가 군사안보영화에 몰려든 건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그저 돈이 될 거라는 비즈니스적 판단때문만이었을까.

사진제공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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