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영화인들이 정부의 문화계 탄압과 정부 산하 영화 진흥 기구의 부정·밀실 행정을 규탄하다
2017-01-02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➊ 봉준호(왼쪽에서 여섯 번째)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2년간 영진위가 4억원이 넘는 영화발전기금을 부적절하고 부도덕하게 유용해온 사실에 감독조합 조합원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4억원은 독립영화 한편을 제작할 수도 있는 큰 금액이다. 이번 고발을 계기로 영진위가 영화인들과 영화감독들의 사랑을 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고발 이유를 설명했다.

➋ 12월23일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는 8개 영화인 단체를 대표해 영진위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을 횡령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부산고등지방검찰청을 찾아 고발장을 제출했다.

영화인들이 고발에 나섰다. 12월12일 영화계 7개 단체, 한국독립영화협회(대표 고영재), 한국영화감독조합(대표 봉준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대표 안병호),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대표 안영진), 한국영화제작가협회(대표 이은), 여성영화인모임(대표 채윤희),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대표 김형구)은 각계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동자들에 대한 고발장을 특검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한 특검 조사가 발빠르게 진행 중이다. 또 하나, 12월23일 8개 영화단체(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여성영화인모임,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영화마케팅사협회(대표 신유경))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에 대해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부산고등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영화계가 직접 정부의 문화계 탄압과 정부 산하 영화 진흥 기구의 부정 그리고 밀실 행정을 수사하라고 강력히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영진위의 교묘한 사전검열

12월23일 오전 11시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영화인 8개 단체의 대표자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블랙리스트 주도한 문화 부역자 물러나라!”라는 구호를 시작으로 고발장 제출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열었다. 영화인들은 지난 국정감사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특별감사 결과 영진위 위원장과 사무국장의 업무상 횡령 내용이 밝혀진 만큼 이것을 근거 삼아 영진위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을 형법 제356조 횡령 등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횡령의 구체적인 내용은 ‘예산 근거 없는 관사 임차비 소급 사용, 업무추진비 부적정 사용, 휴대전화 사용료 지급, 지출증빙 없는 여비 수령 등 업무상 횡령’이다. 기자회견 직후,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는 부산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KTX에 올랐다. <씨네21>도 동행했다. 고영재 대표로부터 이번 고발의 의미를 좀더 들을 수 있었다. “문체부 특별감사에서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수사를 시작해 영진위의 문제점들에 대해 검찰에 수사 요청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영화계가 가만있지 않겠다는걸 보여줘야 영진위, 외부 전문가들이라고 하나 검증되지 않은 영진위 9인 위원회, 더 나아가 문체부까지도 정치적 부담을 느낄 것이다.”

영화인들은 전방위적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그에 따른 영화계 탄압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고 김영한 청와대 전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에서 이미 확인됐듯이 세월호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다이빙벨>(2014)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둘러싼 정부 차원의 사찰, 이후 <다이빙벨> 관련 개인, 단체에 영진위의 지원금이 축소된 정황들이 있었다(뒤에 이어지는 시네마달 김일권 대표 인터뷰 기사 참조.-편집자). 고영재 대표는 “한 영진위 직원으로부터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찍혀서 영진위와 공개적인 토론을 못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이런 게 블랙리스트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라고 전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중앙운영위원회가 중심이 돼 영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사례를 정리해 검열 백서로 만들어 발간할 계획이다. 고영재 대표는 “독립영화계 전반에 그간 검열이 진행된 분야, 사안별 카테고리화를 시도 중이다. 개인, 회사나 영화제, 극장 같은 단체별이 될 수도 있다.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2009,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두 차례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제한상영가 등급이 취소되기까지 긴 싸움을 이어갔다.-편집자), <불안한 외출>(2014)처럼 등급과 관련된 문제, 영진위의 지원사업 심사의 심사위원 구성 방식처럼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한 경우 등을 사례별로 모을 예정”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씨네21>은 영진위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블랙리스트에 영화인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상황에 대한 공식 입장을 여러 차례 물었다. 홍보협력팀 측은 “내부의 블랙리스트는 없다. 우리도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봤을 뿐이다. 그런 것을 두고 심사에 사용한 적 없다”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씨네21>은 취재 과정에서 영진위 내부 고발자들과 접촉했고 그들로부터 영진위가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를 사전에 검열했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진위의 한 직원은 “<다이빙벨>과 관련된 영화인이나 회사들이 영진위나 문체부의 지원사업 목록에서 배제된 흔적들이 있다. 그즈음 영진위는 예술영화지원 제도를 (극장의 상영 영화를 미리 지정해 사전 검열이라 비판받고 있는) 유통배급지원사업으로 바꾸기도 했다. 조희문 전 위원장이 심사 과정에 개입해 기관장직에서 해임됐던 사례가 있다보니 직접 개입보다는 애초에 심사위원 구성 자체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에 신경을 더 썼을 것이다. (영진위가 심사위원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규명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재 영진위의 심사위원 구성 방식은 이미 상당한 문제점을 노출해왔다. 별다른 조건 없이 온라인 등록만 하면 심사위원이 될 수 있는 등록제인 데다(영화산업 관련 분야 5년 이상 경력자, 박사학위 소지자, 석사(학사) 이상 소지자로 3년 이상 경력자면 본인이 직접 온라인에 심사위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편집자) 심사위원에 대한 검증 절차도 불투명하다. 내부 제보자에 따르면 “심사위원 풀은 내부 구성원들도 보지 못한다. 감사 부서 외에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그는 또한 “영화발전기금이 어째서 모태펀드로 들어가게 됐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6년 8월, 정부의 벤처투자금인 모태펀드는 국내 유일의 독립영화투자펀드인 대한민국영화전문투자조합1호를 만기 2년을 앞두고 갑작스레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독립영화를 거부해온 현 정부가 자금줄을 끊으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번 고발에 나선 영화인들은 영진위 렌더팜(CG 작업으로 피사체에 움직임, 질감, 라이팅 등을 작업을 거쳐 이미지를 생성하는 작업이다. 뒤에 이어지는 임우정 영진위 노조위원장 인터뷰 기사 참조.-편집자) 사업에 대해서도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영진위의 한 구성원은 “렌더팜 사업은 검찰 조사가 필요하다. (영진위 내부, 영화계도) 모르게 진행된 사업이다. 예산 집행에 까탈스럽다는 기획재정부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렌더팜 사업에 100억원의 예산 증액을 승인했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문체부도 이 사업에 관계돼 있을 것”이라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문체부와 그 산하 기관들 모두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 그때 내부 고발, 제보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문체부·영진위의 내부 고발, 제보가 더 많아지기를

영진위의 폐쇄성도 문제다. 영진위 한 직원은 “위원장과 사무국장의 전횡뿐 아니라 그들에게 부역하며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노회한 구성원들이 더 문제”, “1999년 영화진흥공사에서 영진위로 바뀌며 이뤄진 인적 쇄신 이후 제대로 된 인적 쇄신이 없었다”며 영진위의 보수화된 조직 문화를 지적한다. 내부 견제 시스템도 붕괴됐다. 김세훈 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 체제하에서 위원장, 사무국장 그 아래 5본부체제로 재편하며 사무국에 힘이 집중됐다. “정규직이 99명인데 (팀장급) 간부만 25명이다. 어떤 팀은 팀원이 1명, 2명인 곳도 있다. 현 체제는 노회한 이들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40대 중·후반 직원들에게 팀장직을 줘 조직을 장악한 것”이라는 내부 지적이다. 이쯤 되면 현재의 영진위는 최근 드러난 방대한 국정농단의 축소판이라고 봐야한다. 영화를 만들 시간도 부족한 영화인들이 검찰 고발에까지 나서 영진위와 문체부, 정부를 압박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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